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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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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09.03.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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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전쟁과 평화', 김영사, 2009.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정치적 리더십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 시도가 돋보였다. 또한 북한 핵무기 문제를 해석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이 북핵을 반대하는 근본원인이 일본의 재무장에 있다는 시각도 눈에 띈다.


특히 김정일 이후 후계체제를 예측하며 北권력핵심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중심으로 김정일의 세 아들 김정남, 정철, 정운 간의 권력 구도 분석과 향후 시나리오 전망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에 있어 저자가 내세운,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2가지 옵션 △북핵을 인정하는 대신 비확산에 치중하는 것 △북미간의 일괄타결 방식 등은 현실적 측면에서 약간 단순한 제시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반도가 영구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해선 북한과 중국의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과 동북아 다자간 안보체제를 보다 구체화 시켜야한다는 것은 규범론적 측면에서 지극히 바람직한 논리겠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선 매우 멀게만 느껴지는 청사진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자유주의 사상 유입에 따라 北내부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방어심리, 국내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중국의 보이지 않는 견제(예: 신의주 경제특구) 등으로 북한이 개방의 길로 가는 것도 힘들고 요원한 현시점이다. 더구나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 길로 가는 데에는 예상치 못한 민중 혁명이나 급변사태에 의한 독일식 흡수통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상당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남북한 간의 평화구축과 동북아 안정화를 통해 한민족이 번영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장미빛 청사진은 독자로 하여금 설렘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까칠하고 의구심 많은 독자들에겐 콧웃음 치게 할 소지도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한반도 장미빛 청사진은 빛바랜 사진이 돼버렸다.


북한·통일 문제는 규범론적(당위적), 전략적인(총론적인)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냉혹한 국제 현실을 좌우하는 건 치밀하고 변화무쌍한 전술(각론)이다. 당장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와 미사일 발사에 쩔쩔매는 상황은 남한의 무능한 외교력과 對북한 전술의 한계를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정부에서 나오는 말은 "올바르지 않다",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식의 상투적이고 규범론적인 대북한 훈계일 뿐이다.


'전쟁과 평화'는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북한학 개론서인 것은 확실하지만 전문가들에겐 그다지 큰 메리트가 없는 이론서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북한과 미국 간의 특사 파견과 실무급 논의를 통해 북한이 핵 포기, 핵사찰 수용, NPT복귀 등을 실행하고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 구현, 北안전보장 및 경제지원하는 일괄타결 방식은 학부생들도 다 알고 주장하는 대안이다.


문제는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大목표를 위한 여러 단계(수단)들이 또 하나의 목표라는 것. 그 작은 목표들을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전술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동북공정이 결코 역사왜곡 차원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 북한이 중국에 편입되는 게 남한에게도 이롭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 등이 결코 북한과 관련없는 이슈는 아니다.


북한이 외교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하며 중점을 두고 있는 상대는 오직 미국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또한 북한과 미국이 일괄타결 방식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세부 사안에 있어서 강대국인 일본을 비롯해 UN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관망하거나 침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원하는 것, 일본이 내심 바라고 있는 것, 중국이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 러시아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이 잘되길 바라며 두 손 놓고 있는 현 정부의 작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복잡한 국제관계를 간과한 채 단순한 논리로 북한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한물 간 냉전구도와 저능아적인 국내 정치 논리로 대북정책을 구사하거나, 강대국 입김에 주체성 없이 흔들거리는 작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위기는 언제나 악순환을 반복하는 프로쿠루테스의 침대가 될 것 같다.

전쟁과 평화 - 6점
장성민 지음/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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