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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죽음

My Text/Essay

by 아나키안 2006. 3. 1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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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귀가길

 

집에 가는 길에 차도 옆을 아장아장 걸어가는 조만한 얼룩무늬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너무 귀여워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고양이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미소 짓게 하는 도시의 게릴라 같다는 생각도 잠시, 불쑥 튀어나온 중국집 오토바이가 고양이를 무참히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고양이는 비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앙증맞은 앞발을 허공에 쳐들더니 이내 힘이 빠지며 숨을 놓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배달원 자신이 고양이를 치어 죽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황급히 사라져버렸다는 것. 더구나 행인들 그 누구도 바로 앞 어두컴컴한 곳에서 벌어진 참사를 알지 못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스쳐 지나갔다.

 

악마보다 잔인한 이 도시는 고양이에게 눈물 흘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 잔인한 생지옥이다. 나는 고양이의 죽음에 가증스런 눈물 한 방울 떨궈 줄 감성조차 없는 썩은 좀비가 되어 버렸고, 고작 한다는 것이 금연 10개월 만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이 내 행동의 전부였다.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고양이 예찬 시를 썼던 보들레르가 이 상황을 보았다면 절규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현란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붉은 십자가가 나로 하여금 허무의 늪에 더욱 깊게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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