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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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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06.03.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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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오늘의책, 2005.


마광수, 운명론의 정체를 섹시하게 까발린다


마광수의 솔직한 색욕(!)과 박학다식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 


"기득권층에겐 천부의 권력이나 의지의 승리요 민중들에겐 오직 운명이나 팔자일뿐이었던 도덕과 권력의 음험한 야합의 결과물인 '피지배층 길들이 수법'으로서의 운명론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 듯. 


동서고금를 넘나들고 정치, 사회, 철학, 종교 분야를 자유자재로 애무하는 마광수의 저돌적고 섹시한 텍스트들이 머릿 속에서 고리타분한 도덕과 윤리로 가득찬 불쌍한 중생들을 대오각성케 해주는, 불후의 색경(色經)이라 할 만하다.


마광수 교수가 유럽 특히, 북유럽 같이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고 정치문화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았다면 결코 지금처럼 유명인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광수라는 인물이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로 작용한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봉건윤리에 얽매여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다지 섹시, 터프하게 보이지 않는 외모와는 달리, 그 어떤 시련과 중상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색정, 변태(?) 코드에 맞춘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그 어떤 진보적 인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투쟁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강준만 교수의 말처럼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다 동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시대를 앞선 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마광수 교수가 시종일관 내세우는 화두는 자유다. 국가권력이나 기득권이 민중의 자유 향유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그것 자체를 잊게 하도록 만드는 데에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기제는 성억압, 운명결정론이라고 마광수는 보는 것 같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식욕(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충족된 사회는 결국 성욕(놀이문화) 충족을 위한 몸부림을 거치게 마련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올바른 수단을 갖지 못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지극히 수구 봉건윤리에 길들어진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지극히 순결하고 완전무결의 윤리의식을 내세우면서 음지에서는 온갖 추잡한 악질 변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매스꺼운 이중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중적 도덕주의와 율법주의를 무기로 민중들의 진솔한 쾌락 추구권을 박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의 교활한 속물 근성이 이 사회를 가학(세디즘)과 자학(마조히즘)으로 가득찬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철학의 제1원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육체적 쾌락을 존중할 줄 아는 야(野)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야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전투적인 열혈 색마, 마광수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인상깊은 구절


수구적 봉건 윤리는 권력과 야합하여 자유보다 통제가 아름답고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며 쾌락보다 금욕이 의미있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윽박지른다. (4페이지)


나는 민주냐 반민주냐, 또는 자유냐 굴종이냐의 문제는 결국 운명론에 대한 승복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내가 당한 반지성적 테러 행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20페이지)


말하자면 유대민족 특유의 선민의식과 로마제국에 대한 적개심이 한데 뭉쳐 '요한계시록'투의 종말론이 나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56페이지)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사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긴머리털로 발을 닦아주었다. 관능적 페티시로서의 '긴머리카락'이 갖는 고혹적인 염정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진솔한 페팅 장면이다. (63페이지)


이 시조는 곧장 '소 치는 아이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로 이어져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 갈려 하느니'로 끝난다 자기는 늦도록 방안 이불 속에서 누워 뭉그적거리면서 어린 종에게만 빨리 일어나 밭을 갈라고 다그치는 모습은 조선조 유생들의 뻔뻔스런 민중 폄하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09페이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계산(또는 포부)은 반드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결국 그를 커다란 절망감과 무력감이 구렁텅이 속에 몰아넣고 만다. (203페이지)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우산을 쓰니까 비가 온다. (214페이지)


학교교육(특히 군대식 기숙학교)이 정착되고 나서부터 학교는 오직 인내력을 배양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226페이지)


성적욕구를 도덕적 명예욕과 신앙욕 등으로 대체시켜야만 하는 사회는 오히려 병든 사회고 왜곡된 사회다. (249페이지)


지금까지 당연시된 운명적 결정론은 오직 민중을 권력에 순응하는 연약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기득권자들의 심리적 전술에 불과했다. (343페이지)


운명은 야하다 (3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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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8 21:40 신고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 속으로는 속물근성..
    그렇다고 온전히 감추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강준만 교이 머지 않아 시대를 앞선 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고
    하셨다는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