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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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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05.11.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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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메를로-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 공산주의문제에 대한 에세이, 문학과 지성사, 2004.


스탈린의 정적(政敵) '부하린'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온 일명 '모스크바 재판'을 혁명적 폭력이라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퐁티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시스템을 비판한 쾨슬러의 장편소설 '한낮의 어둠'에 대한 반박일 수도 있다.


퐁티는 공산주의 체제를 외재적 관점이 아니라 내재적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듯 하다. 최종적으로 저자는 '인간적인 미래를 위해서 폭력 그 자체가 지양될 수 있는 (혁명적)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인간이 인간에 대해 최고의 존재가 되는 미래의 지평'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40년대말 프랑스 좌파 지식인의 입장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퐁티는 소련의 사주로 인해 발생한 북한의 남침 사건을 기해 기존의 입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전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실존주의 철학가 샤르트르와 퐁티가 이념적으로 결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 대한 윤리적 비판으로써 "폭력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한물 간 공익광고를 되새기게 한다. 책 제목처럼 휴머니즘을 위한 폭력이라는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 책에서 퐁티는 당연히 존재한다는 입장이며 그 정당성을 역사의 "우연성'과 "합리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부하린이 반혁명 분자로 낙인 찍힌 것은 그 사람이 본디 반혁명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반혁명적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책임으로서 부하린이 숙청당했다는 것이다.


퐁티는 언제나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선택에 대한 정치가의 운명과 책임을 거론한다. 전략 전술을 교묘히 결합하는 것이 혁명가 또는 정치가의 모습이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은 피할 수 없다는 것! "폭력은 실천 속에 있는 칸트"라는 헤겔의 외침이 들리는듯 하다.


우파적 마키아벨리든 좌파적 마키아밸리든 폭력을 아전인수격으로 용인하고자 하는 혁명가들의 노련한 정치 테크닉은 결과적으로 스탈린 집단 수용소,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초래했다.


정치에 절대선은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선을 위한 폭력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절대를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권력은 절대권력을 지향하고 그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 모든 폭력은 인간 대화의 단절이요 소통의 실패이다.


★인상깊은 구절


진정한 도덕이란 도덕을 비웃는 것이라고 배웠다. (p. 53)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분개에 의해서 혁명적이 된다. 과학은 이후에 비어있는 저항을 채워주고 명확히 해준다. (p. 57)


레닌은 당이 프롤레타리아 뒤에 있어서도 옆에 있어서도 안되며 앞서 있어야만 하는데 딱 한발짝 앞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p. 123)


카우츠키가 말하길, 러시아는 후진국 나라로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너무 일찍 왔다. 즉 역사를 강요하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를 폭력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는 길 위에 놓아두는 것보다 혁명이 성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기관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기관차를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강력하게 대답한다. 말에 오르기 전에 말을 알아야 한다면 결코 오르지 못할 것이다. 볼세비키의 근본적인 편견은 말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말 위에 올라탔을 때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p. 127)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철학문제가 인간문제를 경제문제로 환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문제 속에서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문제의 정확한 등가물과 가시적 형상물을 찾는데 있다. (p. 139)


그러나 모든 혁명들을 합치다 하더라도 제국들 하에서 흘렸던 만큼의 피를 뿌리지는 않았다. (p. 144)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에 대해 폭력을 자제하는 것은 그들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p. 146)


레닌은 "어떤 사람도 공산주의의 최종 국면을 약속할 수 없다"고 하였다. (p. 161)


계몽의 시대는 개인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켰다. 그 수술의 상처들은 조금도 치유되지 않았다. 모든 살아있는 영혼에는 공허함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는 타는 갈증이 있다. (p. 194)


혁명은 성취되면서 그 자체를 배반하고 손상시킨다. 혁명은 운동으로서 진실이고 정권으로서는 거짓인 것이다...혁명은 그것이 영구적이지 않은 한 제논의 패러독스와도 같은 것이다. 수학적인 화살과 같이 혁명은 결코 의도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며, 정권을 이룩하지 못한다. (p. 234)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해독제는 그것이 해독하려는 원래의 독약보다 더 해로운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p. 234)


휴머니즘과 폭력 - 6점
메를로 퐁티 지음, 박현모.유영산.이병택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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