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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비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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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1.2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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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글)·킴(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역, 길찾기, 2013. 


소외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그림편지 

 

단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단 한 소절의 노랫가락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과 감격을 경험할 수 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단 한 권의 만화책이 삶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어떤 인생이든 말 못할 사연과 깊은 회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인생들 중에서 우리에게 진실로 감동을 주는 삶은 무엇일까?

 

각종 매체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다뤄지는 감동 인생은 온갖 시련을 겪고 그 분야에 우뚝 서게 된 인물의 성공 스토리가 대부분. 적자생존의 논리가 판치는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정글 속에서 경쟁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린 ‘지존’에게 우리는 한없는 존경을 보내며, 승리자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성공CEO들을 인터뷰하고 그 영웅담을 다루는 잡지만 수십여 개, 자서전 전문작가를 통해 별 감동도 없는 인생을 화려하게 포장하기도 하고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긁어모으기도 한다. 

 

흔히 세계 5대 자서전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루소의 <고백록>,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를 꼽는다. 덴마크의 비평가, 게오르그 브란데스(1842~1927)는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기존의 자서전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크로포트킨)는 자신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일이 없는 혁명가였다… 이 사람은 단순함 그 자체였다. 그는 성격 면에서 어느 나라의 자유의 전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보다 청렴하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한다.(『크로포트킨 자서전』 서문에서, 김유곤 옮김, 우물이 있는 집) 

 

굳이 아나키스트(anarchist)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던 크로포트킨의 자서전까지 거론하는 이유는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읽다 보면, 마치 크로포트킨 자서전 <어느 혁명가의 회상>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뜨거운 감동이 가슴 속에 저며 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은 주인공인 안토니오의 아들이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킴(KIM, Joaquim Aubert i Puig-Arnau)이 그림을 그린 만화책이다. 

 

작가 안토니오는 아나키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과 직접 쓴 글들을 토대로 그의 90년 인생을 기술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아버지의 1인칭 시점으로, 즉 아버지와 하나의 존재가 돼 이야기를 리얼하게 풀어냈다. 작가 안토니오는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작품 안에서 보는 것들이 완전히 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진실이자,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아버지와 나는 작품 안에서 그리고 실존적으로도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갔다”고 설명한다. 


혹자는 비아냥조로 ‘대부분의 자서전은 비(非)자서전’이라고 비판한다. 자서전에 삶의 온갖 치부는 감춘 채, 말하고 싶은 것만 자랑조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는 스페인의 굴곡진 현대사 한 가운데를 훑고 지나간 주인공의 삶이 여과장치 없이 생생한 그림으로 펼쳐지며, 독자는 시간을 거슬러 만화책 프레임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주인공 안토니오(작가의 아버지)는 스페인 북동부의 아라곤 지방 사라고사 주의 페나플로라는 지역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대아들로 태어났다. 페나플로[Peña(바위)+Flor(꽃)]라는 뜻과는 달리 그의 고향은 아름다운 꽃은 피지 않는 척박하고 농부들의 편협한 이기심과 욕망만이 자라는, 바위만이 무성한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결국 희망 없는 고향을 등지고 도시 ‘사라고사’로 홀로 도망치지만 그를 맞이하는 것은 제2공화국 스페인의 혼돈 정국. 

 

농촌 생활만큼이나 고된 노동과 착취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하숙집에 함께 거주하는 ‘루시오 아로요’라는 아나키스트로부터 아나키즘을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파시즘 정당 ‘팔랑헤’를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집권하자 이에 대항해 범진보진영 연합인 인민전선(사회당·아나키스트·공화파·공산당 등)이 1936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인공은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만, 기쁨도 잠시 아프리카 모로코로 좌천됐던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이 파시스트 및 보수정당과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스페인은 내전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안토니오는 팔랑헤 당원들의 권력남용(독재)과 비인간적인 횡포를 몸소 겪고 나서 ‘피의 혁명보다는 착한 화합이 더 좋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180도 바꾸며 한층 열성적인 아나키스트로 변모한다. 본의 아니게 프랑코파 군대에 끌려가지만 구사일생 탈출해 아나키스트 의용군에 합세해 수많은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의용군 진영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진영과 합쳐지면서 군대식 체계로 개편이 되지만 프랑코의 강력한 군대로부터 패배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프랑스 국경까지 밀리게 된다. 


갖은 고생 끝에 프랑스 난민 수용소에서 탈출해 어느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지만 프랑스는 독일나치에게 점령을 당하고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 안토니오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다. 이후 파리가 해방되고 독일군이 물러나면서 마르세유에서 옛 동료였던 파블로와 사업을 시작하지만, 온갖 부정과 비리, 욕망과 타락의 협주곡이 빚어내는 배신과 불행의 악순환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돈’과 ‘권력’에 굴복하는 옛 동료들의 변절 과정을 지켜보는 안토니오 역시 패배감과 함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젠 아내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년을 양로원에서 보내게 된 안토니오는 어느새 90세 노인이 되고, 어릴 적 꿈꿔왔던 비상,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실존적 선택은 자유를 향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영혼의 ‘최후의 날갯짓’이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권위적이고 오만한 민주주의가 휘두르는 횡포 속에서 이상사회를 꿈꾸던 사람들이 사상과 자존을 어떻게 내팽개치게 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돈은 인간의 사랑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진다.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인생은 돈이나 권력을 쟁취한 이들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 보다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해 영혼을 불사른 삶이다. 비록 그것이 실패한 삶이 되었을 지라도… 그리고 그러한 삶을 공유함으로써 흘리는 감동의 눈물은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작품에 주목하는 세상의 반응과 이 작품으로 형성된 유대의식이다. 조밀하게 엮인 그물과도 같은 그 유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서 서로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본문 214페이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등장하는 배경은 스페인이지만 한국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아픔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반제국주의 투쟁, 이데올로기 대립, 한국전쟁, 군사독재, 학살, 이상사회를 꿈꾸는 숭고한 열정들의 죽음, 그리고 죽음보다 우울한 짙은 패배감… 


이 책은 소외된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패배자들에게 헌정하는 위로의 선물이자, 힘이 닿는 그 순간까지 다시 한 번 비상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희망의 그림편지이다.


=관련글=


 [아나키즘] 크로포트킨에 관하여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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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2 08:02 신고
    표지만 보고는 무거운 정치 소설일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래픽 노블이었군요 ^^ 요즘 스페인내전이 많이 궁금했는데 꼭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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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2 13:39 신고

      만화책이란 표현보다 그래픽 노블이란 용어를 쓰니 한층 전문가의 향기가 나군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