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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셔’, 강렬한 헤비메탈에 눈물을 흘리다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1.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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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셔(Hesher, 2010)

감독: 스펜서 수세르(Spencer Susser)

 

그때 그 시절 헤비메탈은 슬펐다

 

영화 헤셔(Hesher)’를 보면서 느닷없이 7여 년 전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시민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전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돈 좀 부쳐줄 수 있냐?”…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5년 넘게 사귀었던 그녀의 애칭은 꼬맹이’. 꼬맹이에게 못된 짓(!)을 많이도 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불러준 통장으로 30만원을 입금했다. 한 달 후 또 전화가 왔다. “노량진에서 잠깐 볼 수 있냐?”…

 

기억 저 편에 있는 꼬맹이를 다시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내 다리는 어느새 1호선 노량진역을 향하고 있었다. 우중충하고 왠지 슬럼가 분위기의 노량진 골목길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원래 부산에서 무지 잘 사는 졸부 집안의 둘째 딸이었다. 아버지가 섣부른 사업투자(투기)로 쫄딱 망하고, 꼬맹이마저 노량진 쪽방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고 있었다. 꼬맹이는 노량진 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남자친구도 있다며, 둘 다 형편이 비슷해 현실적으로 그다지 큰 도움은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뒤 고시생들을 위한 잡다한 생필품을 한 보따리 사서 꼬맹이가 사는 곳까지 데려다 줬다. 쪽방 입구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꼬맹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해 별다른 대응책을 못 찾던 나는 지갑에 있는 현금을 다 털어 흐느끼던 꼬맹이 손에 쥐어주고 엉겁결에 도망쳤다.

 

그날 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mp3 플레이어에 저장된 헤비메탈을 틀었다. 폭발적인 비트와 강렬한 샤우팅이 고막을 강타하고, 현란한 일렉트로닉 기타의 몸부림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헤비메탈을 들으며 울어보긴,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미친놈처럼 울어보긴 그때가 처음. 사랑에 중독됐던 옛 추억이 비수처럼 가슴을 저미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때 그 시절 헤비메탈은 너무 슬펐다.

 

이후 2010년 어머니가 신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지난해 늦은 나이에 신문사를 대책 없이 때려 치우고, 몇 달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이 이상하게 안나왔다.

 

헤비메탈 사운드에 외계인처럼 등장한 헤셔 


영화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몇 달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T.J(아역: Devin Brochu)는 학교에서 괴롭힘까지 당하는 고립무원의 신세. 심지어 아버지는 의욕상실, 우울증에 걸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시체마냥 자빠져 있기만 하고, 연로한 할머니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우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 가족 앞에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머리를 풀어헤친 망나니가 뜬금없이 강렬하고 짧은 헤비메탈 비트를 배경음악 삼아 T.J 집안으로 쳐들어온다.

 

헤셔’(배우: Joseph Gordon-Levitt)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망나니는 팬티 하나 달랑 걸치고 T.J의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쳐먹고, 차고에 허락 없이 기생하며 기타를 쳐대고, T.J를 괴롭히는 못된 녀석의 자동차에 불을 싸질러 날려버리고, T.J가 짝사랑하는 마트 아르바이트 누나랑(배우 Natalie Portman) 섹스를 하고... 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헤셔의 존재감은 갑작스레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T.J에게 상처를 주고, 아버지에게 종종 욕을 얻어먹었지만 할머니와 소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헤셔는 고주망태가 되어 캔맥주 하나 손에 쥔 채 장례식장에 난입해 거침없이 추도사를 내뱉는데, 그 내용이 심히 눈물 나올 정도로 웃기고 감동적이다.

 

사고로 불알(고환) 한 쪽을 잃어 깊은 상실감(!)에 빠졌지만, 어느 날 불알이 없는 곳을 무심코 쳐다봤다가 멀쩡한 한 쪽이 있다는 감격스러운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 ‘그것이 신이든 악마이든 나에게 불알 한 쪽과 멀쩡한 거시기를 아직 남겨주셨다는 희망의 재발견!

 

더러운 현실에서도, 진절머리 나는 운명 속에서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거리낌 없이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즐길 줄 아는 멘탈, '자유로운 정신'을 어느 순간엔가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랄 같은 그 모든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 날려 버리는 강렬한 헤비메탈처럼, 아무리 강력한 불행이 도전해 오더라도 자신 만의 샤우팅으로 충분히 KO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걸까?

 

그리고... 지금 내게 남아 있는 불알(희망)은...?

 


<인상 깊은 대사>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을 겪어야 하지? 나 같은 거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알 거야, 아줌마(마트 아르바이트 누나) 바로 옆에 내가 앉아 있으니까

 

“당신은 아내를 잃었고, 너는 엄마를 잃었다. 나는 불알 한쪽을 잃었다. 빌어먹을!”

 

<헤셔 ending OST / Metallica : Motorbreath (앨범 Kill 'Em All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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