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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배송 받은 책, 『편의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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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2.1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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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민음사, 2014.

 

편의점을 인문사회학 관점에서 해부

 

소매유통 채널 가운데 하나라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인문사회학의 다양한 관점에서 편의점 문제를 분석한 『편의점 사회학』을 읽기 위해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 결제했고, 집에서 7분 거리인 편의점 ‘GS25’에서 배송 받았다. 편의를 제공하는 진실로 실용적인 후기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프랜차이즈 불공정피해,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왜곡된 갑-을 관계 등에 비추어 아마도 편의점(convenience store) 제반 시스템을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편의점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신종 ‘도시통치 인프라’로서 거시적으로 해석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정복한 유통 게릴라

 

1920년대 후반, 식료품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된 미국 제빙회사 ‘사우스랜드’(Southland Ice Company, 7-Eleven)로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프랜차이즈 형태의 편의점은 1969년 일본과 1979년 대만에 이어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 5월, 대한민국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에 상륙했다.

 

1987년 야간 네온사인 재허용,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1998년 심야영업규제 폐지,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출범한 WTO와 신자유주의 확산 등 국내외적 제반 환경은 수도권은 물론 울릉도, 마라도, 백령도, 학교, 병원, 군부대 피엑스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이 짧은 시간에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장악하게 된 배경이다.

 

만능복합 생활거점, 원스톱 유비쿼터스 공간의 이면

 

저자는 편의점 특유의 존재양식으로 ‘현지화된 세계주의’(rooted globalism)에 기반한 끝없는 ‘무한변신’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편의점은 단순 구멍가게가 아닌 복합생활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수천 가지 상품으로 식료품, 생활잡화뿐만 아니라 가정용 전자제품, 휴대폰, 심지어 수입자동차와 요트까지 카탈로그를 통해 판매한다. 무엇보다 현지화 전략으로 혼종 편의점 형태(hybrid convenience store, 간이식당, 간이주점 등)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자체 브랜드(private label)까지 내놓고 있다. 

 

편의점은 모바일 네트워크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시 기반 시설 혹은 신종 도시 인프라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109페이지

 

상품판매 기능 외에도 우편·택배, 금융(공과금 납부, ATM, 환전 등), 문화(서적, 티켓판매, 무가지 M25 발행, 지에스 TV 등 자체 미디어 개발), 공공기능(어린이 안전지킴이, 독거노인 보호관리 등을 위해 공공기관과 제휴) 등 웬만한 생활서비스는 모조리 흡수하는 블랙홀이 돼가고 있다.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현대인들에게 어떤 정체성과 지향점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편의점은 ‘도시의 성좌’와 다름 없다.

 

하지만 ‘신유목 사회’, ‘글로컬리제이션’이라는 흐름에서 현대인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편의점의 순기능 이면에는 대기업 독점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외에도 포스(POS) 시스템(판매시점 정보관리)에 의해 정보수집, 저장, 분류, 분석하는 빅데이터 소유, 볼록거울과 CCTV로 대표되는 비대칭 감시 시스템,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와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의 기본권 문제 등은 편의점을 민주적 사회공동체 또는 사회적 경제의 일원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게 하는 요소다.

 

△편의점 빅3 : 『편의점 사회학』에 따르면 씨유, 지에스25, 세븐일레븐의 점포 점유율이 2012년 현재 90.7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자료출처: 한국편의점협회, 『편의점 운영 동향 2013』)

 

“세븐일레븐은 롯데, 지에스25는 지에스, 미니스톱은 대상그룹이 20퍼센트에서 98퍼센트까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편의점 점유율 업계 1위인 씨유는 보광그룹이 지분 3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보광은 1999년에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회사다… 우리나라 편의점은 넓은 의미에서 삼성, 엘지, 롯데 등 대기업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 본문 136페이지

 

사회양극화를 진단하는 리트머스시험지

 

초창기 서구식 문화공간에 대한 동경을 십분 활용해 급성장해 온 편의점의 주고객이 중산층보다는 20~30대 젊은층, 샐러리맨 위주라는 점에서 저자는 편의점을 통해 사회 양극화의 중요한 단서를 모색한다.

 

“오늘날 편의점은 한국의 20~30대 젊은이들이 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다음, 담배나 술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장소로 정착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 ; 본문 131페이지

 

“하류인생, 잉여인간, 찌질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우리 사회의 낙오자나 희생자들이 편의점에 의지하는 정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본문 134페이지

 

편의점은 치킨집과 더불어 특별한 기술이 없는 조기은퇴자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미 비대화된 시장에서의 각자도생 경쟁, 불평등한 갑-을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가맹의 덫’을 극복하고 만족스런 수익을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하회하면서도 남아도는 아르바이트 인력들이 겪는 고통은 노동을 넘어 인권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사안이다.

 

저자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오늘날 편의점이 불안하고 부정의한 양극화 시대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모종의 버팀목이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우리가 피부로 쉽게 느끼는 편의점의 긍정성뿐만 아니라 은폐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정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점, 우리 삶의 질 향상과 도시 공동체의 재건이라 관점에서 편의점의 실체를 인문사회학적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편의점 사회학』은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요컨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파편화된 개인들이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자부심을 지켜나가야만 사회 전체의 새로운 희망과 비전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편의점 사회학』은 강조하고 있다.

 

※ 인상 깊은 구절

 

무엇보다 사람들이 편의점 특유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친밀한 인간 관계가 아니라 무심한 대면이다. 따라서 “구멍가게는 동네사람들이 모이고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사랑방이지만 편의점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 익명의 공간”으로 남아 있을 공산이 높다. ; 본문 119페이지

     

가정백반  / 신달자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
가정백반은 내 집에 없고
상가 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
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
집에는 가정이 없나?
혼자 먹는 가정백반
남원집 옆 24시 편의점에서도 파나?
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
기웃기웃 가정집으로 돌아가는데

     

대모산이 엄마처럼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 
                                                            ; 본문 135페이지

     

이른바 촛불시위 때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편의점의 배후가 거대한 자본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을 미처 상기하지 못한다. ; 본문 158페이지

 

편의점 사회학 - 8점
전상인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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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 [My Text/Book] - 무용지물 경제학

2006/03/13 - [My Text/Book] - 김민수, 실업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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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6 09:14 신고
    오!~ 이런 책이 있었군요.
    재미있겠어요.

    오랜만에 도서관 나들이를 한 번 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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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21:41 신고
    일본에서 출간된 어느 책에는 "당신이 힘들거나 괴로울 때, 또 슬플 때 옆에 있어 주길 바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요?"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놀랍게도 편의점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편의점엔 24시간 중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편의점 김밥이 최고의 메뉴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네요..
    • 프로필 사진
      2014.02.18 22:09 신고
      아..그렇군요. 책 내용을 보니 일본 편의점도 우리처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더욱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장소로 인식되는 듯 합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아요.
      "편의점에선 왠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불빛은 언제나 안도감을 준다...."
      깨끗한 편의점 분위기와 추리닝을 입고 가도 반겨주는 에티켓이 편의점을 부담 없는 친구로 인식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