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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폭력 바이러스, ‘애프터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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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 2. 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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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 루시아 (Después de Lucía/After Lucia, 2012, 멕시코)

감독: 미첼 프랑코 (Michel Franco)


하이에나는 상처 입은 짐승을 지나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본의 아니게 폭력을 담론으로 하는 우울한 영화를 자주 보게 된다. 계층별, 연령별, 사회구성체에 따라 폭력의 양상은 다양하나 대체적으로 폭력이 ‘가해자-피해자’라는 일방향성을 보이거나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영화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것 같다.


<애프터 루시아, After Lucia>는 제목에서부터 폭력의 악순환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After'라는 단어는 종결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라’(테사 라 Tessa Ia)라는 소녀가 학교 시스템 내에서 성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과 폭력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제도권 주체들(학교, 경찰)마저 암암리에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잔인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 시작부터 관객은 어둡고 불편한 자동차 뒷좌석에 갇혀 배우들이 밖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숨죽여 봐야하는 답답함을 느낀다. 딸 ‘알레한드라’의 실종에 경찰서를 찾은 ‘로베르토’(헤르난 멘도자 Hernan Mendoza)가 오히려 심문을 당하거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던 그가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보험회사 직원을 상대하는 장면 등은 관객까지 덩달아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다. 


보험회사에서 나와 운전 중 갑작스레 끼어든 운전자와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 평범한 일상에서 폭력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전이되고, 돌고 도는 순환성을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폭력의 악순환 속에 내던져진 존재들이 체득한 폭력습관을 더 이상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당화시키는 자기기만의 수렁에 빠진다는 것. 


사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집단따돌림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짓기는 애매보호하다. 별 문제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에 속된 말로 기스(흠)가 나면 하루아침에 동네북이 된다. 우리는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웬만하면 흠(상처)을 치료하기보단 숨기려고 한다. 자의든 타의든 흠을 내보이는 순간 나는 왕따가 될 확률이 매우 높고, 순식간에 헤어나올 수 없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하이에나 떼는 상처 입은 짐승을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로베르토가 딸의 집단따돌림 원인을 제공한 부잣집 남학생을 납치해 손발을 묶어 먼 바다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나지만, 그 누구도 이를 통쾌한 결말로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답답한 시작, 우울한 롱테이크 속에 간혹 터지는 슬픔의 메아리, 개운치 않은 결말, 그리고 애프터 <애프터 루시아>…


과연 나는 누군가의 흠을 어루만지기는커녕 잔혹한 군중 심리에 편승해 그의 상처가 덧나게 하는 비겁함을 저지르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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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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