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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로 채울 수밖에 없는 공허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2.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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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 2003, 미국)

감독: 짐 자무쉬(Jim Jarmusch)

 

스크린서 풍기는 진한 커피향과 메케한 담배연기


영화 <천국보다 낯선>으로 유명한 짐 자무쉬 작품들의 기저에 깔린 공통 분모는 아마도 현대사회의 ‘소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흑백으로 도배된 화면에서 진한 커피향과 메케한 담배연기가 진동하는 영화, <커피와 담배>는 전혀 다른 11가지 대화(단편 segment)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짐 자무쉬가 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작업해온 단편들의 완성체라고 할 수 있다.


△ “커피는 건강에 좋죠”라는 로베르토와 “자기 전에 커피를 많이 마시면 꿈꾸는 속도가 빨라지죠”라고 말하는 스티븐이 선보인 엉터리 선문답과 엉성한 슬랩스틱은 <커피와 담배>의 압권이었다.


등장 캐릭터들은 본인의 진짜 이름(유명배우, 뮤지션 등)으로 연기하는데 진짜 캐릭터가 그러한지 아리송할 정도로 본인의 역할을 실감나게 소화한다.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들이 전개하는 독립된 에피소드, 그들의 커피 테이블에 은근슬쩍 끼여 앉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들의 연기는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그들의 대화 내용과 지질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행동에서 유명 아티스트라는 부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압권은 역시 첫 번째 에피소드 <자네 여기 웬일인가? Strange To Meet You>, 실업자 로베르토(Roberto Benigni)와 스티븐(Steven Wright)은 매우 허름한 찻집에서 수전증에 걸린 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설탕을 통째로 대충 쏟아 부우며 연신 진한 커피를 홀짝인다. 커피와 담배가 심신에 매우 유익(!)하다는 어이없는 예찬론과 어설픈 슬랩스틱, 스티븐의 치과 약속을 대신 가겠다는 로베르토의 작태는 허무개그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기 여배우와 히피성향이 강한 사촌이라는 1인 2역을 선보인 케이트 블란쳇의 놀라운 연기는 정말 인상 깊었다.


세 번째 단편 <캘리포니아 어딘가 Somewhere In California>에서 담배를 끊었다며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의지박약자라고 힐난하는 톰(Tom Waits)과 이기(Iggy Pop)는 “우리는 끊었으니 한 대 정도 피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연기를 내뿜는다. 201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바 있는 톰과 펑크락의 대부로 인정받는 이기가 사소한 주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굳이 짜맞추자면 11개 단편에 등장하는 이들은 직업, 연령, 성격, 외모 등이 모두 다르지만 왠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빈 구석... 고독과 불안을 커피와 담배로 상징되는 권태로움 또는 나른함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7번째 단편 <사촌 Cousins>에서 1인 2역을 선보인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의 쿨한 성격 뒤에 숨은 자기과시와 박탈감, 알프레드 몰리나(Alfred Molina)와 스티브 쿠건(Steve Coogan)을 먼 사촌으로 설정한 9번째 단편 <사촌 맞아? Cousins?>에서 자아도취에 쉽게 빠지면서도 타인의 접근은 경계하고, 이해타산에는 심히 민감한 스티브 쿠건의 다중적인 태도, 10번째 단편 <흥분 Delirium>에서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주전자 채 마셔대는 빌 머레이(Bill Murray)가 대체의학을 배우는 RZA에게 치료법을 자문하는 장면 등에 이른바 현대인의 고질적인 정신병리증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고질적인 증세란 아마도 후기 산업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 피할 수 없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소외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

 

※ 인상 깊은 대사


쉘리(케이트 블란쳇) : “좀 우습지 않아? 돈 없을 때는 비싸서 못 사고, 반대로 돈 있을 땐 공짜로 들어오고… 왠지 거꾸로 된 것 같지 않아?”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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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4 20:36 신고
    좀 우습지 않아?
    돈 없을 때는 비싸서 못 사고,
    반대로 돈 있을 땐 공짜로 들어오고…
    왠지 거꾸로 된 것 같지 않아?”

    정말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세상인가 봅니다.
    뭐든 있는 사람에게로 몰려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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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4 22:13 신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을 보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생활비 비중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나오는데,
      그러한 악순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