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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쾌락주의자, 마광수의 뇌구조는?

My Text/Book

by 아나키안 2014.02.2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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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마광수의 뇌구조: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 수업』, 오늘의책, 2011.
 
지고지순한 쾌락주의자 ‘광마(狂馬)’와의 인연
 
전남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어느 날 아침 만원버스를 타고 등교 하는데 당시 유명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과 관련해 온갖 비난들이 쏟아지는 것을 듣게 됐다. 매일매일 등교할 때마다 진행자의 변함없는 목소리와 CF를 질리게 듣던 때라 무관심하게 흘러 넘길 수 있었으나, 그날따라 지나치게 흥분된 억양으로 <즐거운 사라>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주는 친절함을 베푸는 바람에 혈기불끈한 나는 귀가 솔깃했다.

 

오묘한 우연일까? 더더욱 재미있고 신기한 사실은 버스가 모 대학교 앞 정류장에 섰는데 웬 예쁜 여대생 누님이 <즐거운 사라>를 교재마냥 가슴에 품은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책 제목이 <즐거운 사랑>처럼 보였다. 아무튼 그 순간부터 라디오 진행자는 무성영화의 변사, 차창 밖 풍경은 3D 스크린, 고등학교 앞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여정은 나만의 야한 상상극장이 돼버렸다.
 
이듬해 개인사정으로 인해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핑계 삼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원비를 삥땅치며 전국을 무작정 여행하거나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인문사회분야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주변에서 맨투맨종합영어나 성문영어, 수학의 정석 또는 9급 공무원 수험서 등을 볼 때, 대학진학에 전혀 뜻이 없던 나는 마광수의 <권태>를 비롯한 그의 주옥같은 텍스트를 탐독했다.(마광수 작품만 탐독한 건 아니지만…) 이후 운 좋게도 다른 대학 정외과에 입학해 국문과 수업을 청강하는 과정에서 마광수 교수의 학위논문 주제가 ‘윤동주’라는 색다른 사실도 알게 됐고, 도서관 서고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섹스한다. 그래야만 존재한다”

 

<마광수의 뇌구조>는 비평집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와 소설 <귀족> 이후 간만에 읽은 책이지만, 독자로서 거의 20년 넘게 봐왔기 때문일까? 솔직히 지겨운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구절이 이 책에서 나왔는지 저 책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각각 비슷한 문장이 있었는지 헷갈리고 그 나물에 그 밥, 그 변태에 그 섹스 같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지고지순한 유미적 쾌락주의자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
 
책 제목에서 보여주듯 세계관, 여성관, 섹스관, 문학관(예술관) 등의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본인의 구체적 성향을 밝히고 있고, 문학인으로서 또는 지식인으로서의 솔직한 자기 진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면, 광마 선생은 “이 세상은 섹스로 이뤄져 있다”고 정의한다. 물과 섹스는 왠지 공통 속성이 있는 듯 하다. 우리네 삶의 기저에는 ‘섹스’(성욕)라는 거대한 수맥, 예술적 화두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성기 중심의 성담론을(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의학적(정신분석학)으로 다뤘다면, 광마 선생은 성기를 포함한 다양한 패턴의 성희(성적유희 또는 놀이)를 예술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한국사회에서 성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선각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낫다”

 

“인간 별거 아니다. 다른 동물처럼 태어나서 섹스하고 죽는다. 그것이 전부다” [본문19~20페이지]

 

“일을 하지 않아 고운 손보다 노동으로 단련된 투박한 손이 더 아름답다는 식으로 궤변을 떨지 마라.

노동은 고귀하지 않다.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127페이지]

 
한 사람의 성향을 명쾌하게 개념화 하기란 쉽지 않지만, 광마 선생은 본인의 이데올로기를 ‘유미적 쾌락주의에 바탕을 둔 복지지상주의’라고 천명했다. 쉽게 말하면 고루고루 각자 자유롭게 관능적 쾌락에 빠질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는 것! 예술가로서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척도는 그 만의 섹슈얼리티다. 그리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존중 받는 문화 민주주의 사회, 다양성이 보장되는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광마의 다양한 면면들

 

이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기존 도덕과 종교, 봉건적 윤리와 기득권의 위선에 도전하는 섹시한 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한결같이 펼쳐온 혁신적인 성담론은 그를 건전한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망나니, 탕아로 낙인찍히게 했다. 한마디로 왕따, 비주류, 역겨운 퇴폐분자… 등 뭐 이런 식이다.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한국사회의 못 말리는 이중성.  [69페이지]

 

 텐프로 호화 룸살롱이 넘치고 낙태율은 높다.

하지만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없다. 아주 아이러니하다.   [70페이지]

 

 우리나라는 피임교육은 안 시키고 순결교육만 시킨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매한 짓이다. [145페이지]

 

한 사람이 미치면 정신병 환자가 되고, 다수가 미치면 종교적 신앙이 된다.  [150페이지]

 

금욕주의와 정 반대편에 서있다는 점에서 광마 선생은 반종교주의자다. 또, 개인의 쾌락추구가 권력으로부터 결코 침탈돼선 안 된다는 점에 미루어 자유주의자 또는 개인주의자다. 에피쿠로스와는 달리 육체적 쾌락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 즉 마음이나 정신을 육체 작용의 부수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철저한 유물론자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육체주의자다. 무엇보다 순수한 자연미 보다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을(화장, 성형, 네일아트 등), 삽입중심의 섹스보다는 페티시(fetish) 문화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변태며 당연히 성(性) 개방주의자다. 기득권, 특히 한국 엘리트 계층의 위선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반엘리트주의자에 가깝다.
 

빵에 대한 통제가 물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섹스에 대한 통제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생략)… 종교, 도덕, 윤리 등 각종 사회 규범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섹스에 대한 금기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에 대한 구별이 있다. [143페이지]

 

광마 선생은 비관보다는 맹목적 낙관주의가 오히려 인생을 더 고달프게 한다며, 필연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통과 있는 그대로 대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리얼리스트이며, 합리적인 허무주의자다. 
 
마광수는 OO이다?!

 

지식인이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솔직하게 표현할 때,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은 총칼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146페이지]

 

‘자유’ 앞에는 장사(壯士) 없다.  [195페이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219페이지]

 

광마 선생은 고정된 틀로는 분석할 수 없는 존재다. 유연성 있는 패러다임으로 그의 실체를 그때그때 조망해야 한다. 모든 걸 각설하고 광마 선생은 정직한 지식인이다. 진짜 용기는 솔직함에 있기에 그는 용감한 예술인이다. 그가 줄곧 부르짖었던 수많은 단어들을 문학의 맷돌로 갈아서 ZIP프로그램으로 압축한다면 아마도 ‘자유’가 아닐까. 이왕이면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운 자유, 본능(쾌락)에 충실한 자유의 추구 말이다. 

 

어떠한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DNA에 각인된 쾌락에의 열정을 당당히 예술작품으로(관능적 판타지) 승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그는 본의 아니게(!) 용맹한 지식인, 선구적 예술인이 돼버렸다.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인 ‘예술’의 고귀함을 촌티 나는 똥고집으로 분탕질 한 위대한 한국사회의 폐쇄성 덕분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세 살 버릇 여든 가듯이 광마의 논스톱 쾌락주의는 아마도 숨이 끊길 때까지 질주할 것 같다. 이 책 목차 앞 <서시>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말벌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머리를 수레바퀴 밑에 집어넣어버린 뱀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서글픈 존재로서의 자신을 한탄하며 “과연 나는 말벌과 함께 죽는 뱀의 우렁찬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사실, 광마 선생의 글이 무조건적인 진리는 아니며 절대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장르를 떠나 모든 예술은 불변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을 통해 삶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광마 선생은 수레바퀴에 머리를 집어넣은 다혈질 뱀의 극단적인 용기를 보여주기 보다는 편견과 오만으로 일관해 온 거대한 이무기 대가리를 무차별 공격하는 섹시한 땡벌이 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 마광수 공식사이트 http://www.makwangsoo.com

※ 관련 포스팅

2008/10/21 - [My Text/Book] - 마광수, '귀족'

2008/08/05 - [My Text/Book] -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2008/06/17 - [My Text/Book] -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2006/03/16 - [My Text/Book] - 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2005/11/29 - [My Text/Book] - 마광수,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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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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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07:18 신고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죠.
    어쩌면 고상한 분(?)들에게는 여전히 그는 이단아요, 비주류겠지만요.
    사실 저도 당시의 평가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자신할 수 없었는데...덕분에 좀 더 심도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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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09:03 신고
      기회가 된다면 광마 선생님과 술 한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올 지 모르겠습니다. 면전에서 섹시한 가르침을 받고 싶군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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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12:29
    후후. 완전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솔직히 그동안 세간에서 '변태' 딱지를 붙이곤 하는 걸 보면서 쉽게 그의 글에 손이 가진 않았지요. 그런데 포스팅을 읽으며 님이 본문에서 말하셨듯 강력한 '자유'주의자이며 정직한 지식인이자 예술인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순수한 자연미 보다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을(화장, 성형, 네일아트 등), 삽입중심의 섹스보다는 페티시(fetish) 문화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변태며 당연히 성(性) 개방주의자다."라는 점에선 약간 의아하면서도 잘 모르겠기도 합니다. 좀더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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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13:26 신고
      호! 엄숙한 사원처럼 조용하던 블로그에 이런 활기가 생길 줄이야...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단순히 신체 일부 부위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저차원(?) 페티시가 아닌 인위적인 가공물(긴손톱, 높은 하이힐 등)들을 통해 자기만의 페티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서로 즐긴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변태라고 생각합니다만... 성개방주의는 사회 전반적인 성문화를 보다 열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 안해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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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17:35 신고
    마광수 교수님는 사드를 연상케 하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을
    점잖은(?) 분들이 지적질을 해대는 바람에 더 부각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또 그 이면에는 교수사회에서의 세력다툼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교수사회에 편입되지 않는 아웃사이더로서 겪어야 하는 대가라는 생각도 든답니다.
    마교수님 뇌구조, 여느 남자들하고 다를 것 없지 않을까요?
    단, 완전하게 그 바닥까지 환하게 비춰낸다는 전제에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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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21:23 신고
      순혈주의, 패거리 문화는 대학사회 뿐만 아니라
      진보-보수, 연령, 계층을 넘어서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고질병이 아닐까요...
      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러한 패거리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능동적으로 거부했던 지식인이 겪어야 하는 대가였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좋은 저녁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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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21:22 신고
    지금도 비주류이고 아마 앞으로도 비주류의 스탠스를 자의반 타의반 유지하게 될 마광수 교수의 문학세계지만 '정직한 지식인'이라는 아나키안 님의 견해에는 동의합니다 ^^

    대학 사회나 문학계에 모두 다양성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독특한 캐릭터 하나 쯤은 있는게 좋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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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6 21:35 신고
      헛! 안녕하세요~
      무슨 일을 하든, 누구든 솔직할 수 있다는 건
      현실적으로 정말 쉽지 않은 듯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
      편안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