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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길 중에 그 ‘길 위에서’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2.2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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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 위에서(2012)

감독: 이창재


공감 자극하는 신입 구도자들의 번뇌


불교 소재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1993)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길 위에서>라는 다큐멘터리는 ‘백흥암’이라는 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 유학생 출신 ‘상욱 스님’,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린 나이에 불제자 입문)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선우 스님’, 언뜻 4차원 마인드를 갖고 있을 것 같은 쾌활한 ‘민재 행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사찰의 소박한 선(線)과 자연의 담백한 색(色)이 조화를 이뤄 한국적인 영상 미학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특히, 신입 구도자들의 번뇌가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生)의 의미를 찾는 이들로부터 동질감 또는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썩 좋지 않은 발음으로 투박하게 들리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귀에 조금 거슬렸다. 물론 듣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성우 목소리를 쓰거나, 처음부터 자막처리 하는 게 다큐로서 더 낫지 않았을까.



종교는 감성’이 반영된 ‘판타지’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에 불교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자주 봤던 이유는 ‘서유기’처럼 불타는 감성과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판타지적 요소 때문이었다. 물론, 도교나 무속신앙에도 특유의 판타지가 있다. 신적인 존재들(염라대왕, 사천왕, 옥황상제, 용왕, 삼신, 야차…등등)은 단지 배경적 요소에 머물고, 주체적 인간들의 치열한 투쟁과 방황이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떠돌며 수행하는 스님들의 ‘만행(萬行)’이 낭만적 요소로 다가왔다.


한때 종교인들이 지식인으로서, 또는 권력자로서 굴림하는 정교일치 시절이 있었다. 더욱이 왕(王)이 신(神)의 대리인으로 행세함에 따라 교리가 곧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시대변화에 따라 종교의 효능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인간 감성(感性)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즉, 합리적 이성(理性)이 절대 아니다. 마치 쇼펜하우어가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이라고 주장했듯이, 존재들의 의지(욕망)가 반영된 세계(이상향, 판타지)는 어쩌면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들의 수만큼 무지 많지 않을까.


완전과 불완전 사이에서 벌이는 줄타기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쉽게 말해 내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종교계에 과감히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실체와 대면했을 때 겪는 필연적 좌절은 굳이 머리를 빡빡이로 밀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거라고 본다. 신(절대성, 이데아)과 인간(불완전, 혼돈) 사이에서 벌이는 위태롭고, 자학행위에 가까운 줄타기는 <길 위에서>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종교 지도자들이 일상에서 힘들게 사는 중생들의 고민을 덜어준다는 핑계로 벌이는 설교나 야단법석(野壇法席: 불교용어로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을 선거 유세장에서 들을 수 있는 정치인들의 구라만큼 혐오한다. ~인척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득도한 척, 고상한 척, 세상만사 다 아는 척, 고차원 정신의 소유자인 척, 척척척…


도(道, 구원)라는 궁극의 경지, 그 정체가 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그것으로 향하는 수많은 여정(노선, 길, 수단) 중 하나를 선택한 이들 중에 유독 사원에 갇힌 자들만이 진정한 구도자는 아닐 것이다. 속세를 떠나 심산유곡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면, 영혼마저 찢어죽이는 지옥 같은 속세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범인(凡人)들도 용맹한 구도자가 아닌가. 어차피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즐거움은 양쪽 다 존재한다.


※ 인상 깊은 대사


민재 행자: “절(저를) 찾고 싶어서 절에 온 거죠~”


※ 관련 포스팅 : 2009/11/08 - [My Text/Book] -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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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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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01 22:22 신고
    저는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에 만들어진 책으로 접했는데, 어지간한 기회로는 절대 접하지 못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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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02 09:19 신고
      책으로도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