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래비티’가 그렇게 감동이었어?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 3. 18. 20:35

본문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 미국)
○감독: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굳이 찬양할 정도까지야...

홍보를 하지 않아도 대성공을 거뒀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바타>와 비교하며 막말을 토해내는 <그래비티>야말로 홍보 덕분에 성공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작품이다. ‘찬사’를 넘어 ‘찬양’에 이른 영화, <그래비티>를 까는 건 자칫 객기 부리는 똘아이 취급을 당하거나 영화도 볼 줄 모르는 무식한 놈으로 욕먹을 공산이 크다. 영화잡지에 기고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비평이라는 점에서 미리 양해를….

관점과 감동의 미묘한 차이겠지만, 그래비티를 다큐의 시선에서 보면 사실상 허점투성이고, 드라마라는 예술적 형식으로 봤을 땐 클라이맥스가 살짝 부족해 보였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감동 때문이 아니었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각도의 무원칙성 변주 때문이었다. 각본에 원인이 있었다기 보단 감히 연출력과 연기력의 부족함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촌스러움으로 다가온 연출력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경력까지 있는 산드라 블록 누님에겐 미안하고 송구스럽지만 그녀를 스타의 반열에 올린, ‘키아누 리브스’와 열연했던 <스피드> 이후로 그녀의 연기력은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했다고 감히 또 평가한다. 몸짓을 포함한 표정, 감정 전달력 등 전반적인 연기력은 평범한 개그맨, 엔터테이너 수준이다. 그래비티의 첫 번째 실수는 여주인공의 잘못된 캐스팅이고, 세련되게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촬영 각도가 오히려 촌스러움을 유발했다고 또다시 감히 주장하고 싶다.

인물의 위치와 카메라 위치 사이의 불일치를 고의적으로 강조하는 끝없는 변주는 로베르 브레송 할아버지가 수시로 써먹은 약방의 감초임에도 브레송의 끊어진 공간은 자연스러운 운율로 다가오지만 알폰소 쿠아론의 롱샷과 과도하고 빈번한 클로즈업은 오히려 어색한 엇박자로 다가왔다. 난잡한 숏들과 질서 잡지 못한 혼돈의 몽타주만이 우주 공간에 이리 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오직 리듬 있는 운율성은 위성 파편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때 스피커에서 함께 불어오는 배경음악뿐이었다.


물론, 리얼리즘 강박관념은 아니다

우주배낭 추진력 만으로 우주정거장을 따라잡는 괴력을 발휘하고, 말도 안 되는 우주 화재장면의 묘사, 우주복 안의 얼굴표정이 투명하게 보이는 설정 등을 사례로 들어가며 좀스럽게 가짜라고 말하는 리얼리즘 강박관념을 표출하고 싶지도 않다. 미적 자율성 관점이나 효과적인 심리전달이라는 측면에서, 플롯에 기여할 수 있는 영화 효과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너그러이 용인한다.

인간의 실존감을 제대로 구현했나?

사실, 그래비티에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념, 이데올로기는 스크린에 투영된 스톤 박사의 존재가 단지 ‘개인’이라는 개체가 아닌 ‘인간’(소우주)이라는 세계를 의미하는, 실존을 대표하는 상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이 애당초 없었다면 아이맥스로 실감하는 그랜드캐니언 모험을 즐기는 것이 낫다.

 

지구에서 점점 멀어지며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훌륭한 컨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공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에서의 사투가 처절하게 보이는 것은 분명했으나 눈부시도록 고독해보이거나 실존적 성찰을 할 정도로 진중해보이지도 않았다. 이 역시 연기력 때문이고, 자연스럽지 못했던 장면전환, 의미없는 곳을 확대하며 시선을 낭비하는 클로즈업에도 원인이 있다.

스톤 박사가 삶의 충동에서 죽음의 충동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느닷없이 유령 같은 조지 클루니가 우주선 안으로 침범하는 장면은 나를 어이없는 블랙홀의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블랙코미디였다. 그럴바에야 감정의 흐름상 차라리 딸의 환영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조지 클루니를 우주 쓰레기로 버리기 아까워 다시 소환해 재활용하는 경제적 효율성을 발현했을 뿐이다. 


그린란드 이누이트 사람들과 통신하는 장면(개인적으로 조나스 쿠아론의 단편 <아니가크>의 간접 CF로 간주)도 눈물 날 정도로 감동스럽진 못했다. 역시 헛발질 연기력 때문이다. 극적으로 대기권에 진입하며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산드라 블록이 보여준 애매한 연기는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감동적 요소마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허무한 똥볼차기로 느껴졌다.  

멀미나는 놀이기구를 또 타?

△ 던칸 존스 감독의 <더 문>에 비하면 그래비티는 플롯의 빈약함은 물론, 감각적 비주얼을 통한 치밀한 심리묘사에도 한계를 노출했다.

 

사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 감상한 SF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던칸 존스 감독의 <더 문>(Moon, 2009, 영국)이었다. 미래의 달 기지와 현재의 우주정거장이라는 점에서 시간, 공간 배경이 사뭇 다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엇비슷하다. 실존적 성찰이 진하게 녹아있는 <더 문>이 오히려 리얼하게 느껴질 정도다.

 

SF와 스릴러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주 끝까지 메아리치는 휴머니즘의 진한 감동, 적절한 타이밍에서 진실을 보여주는 카메라 프레임과 반전의 플롯… <더 문>에 비하면 <그래비티>는 현란한 기술만큼이나 예술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다시 보는 이들도 많다고 하는데 나는 굳이 두 번까지는 관람하고 싶진 않았다. 멀미나는 놀이기구를 또다시 탈 필요까지야...

앙드레 말로가 “관객들은 연극배우를 잘 알진 못하지만, 클로즈업 덕분에 (무비)스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래비티는 할리우드 스타 산드라 블록을 더욱 잘 알도록 기여했다는 것이 나의 마지막 한 줄 평이다.


[그래비티 예고편]

 

[Moon 예고편]

태그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