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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의 해괴한 사무라이 로망, '47 로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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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 3. 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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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47 로닌(47 Ronin, 2013, 미국)

○감독 : 칼 린쉬(Carl Rinsch)

할복을 죽음의 미학으로 봐야 하나?

굳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몇 가지 아이콘들 중에 그들의 마인드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할복(切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상반된 평가를 떠나서 최근에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원작소설: 타키구치 야스히로 ‘이문낭인기’>, 야마모토 히로후미 교수가 쓴 <할복>이라는 책 등 할복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 같다. 칼 린쉬 감독의 <47 로닌> 역시 스토리는 로닌(낭인)들의 뜨껍고 통쾌한 복수혈전이나, 핵심 이데올로기는 깨끗한 무사도로 인식되고 있는 ‘할복’이다.

할복을 동양의 대표적인 죽음의 미학으로 칭송하는 자들도 심심찮게 보지만 개인적으론 미학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개소리로 간주한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협객 ‘예양'이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쓸잘데기 없는 소리를 외치는 바람에 협객은 주군을 위해 죽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어이없는 개똥철학이 수천 년 이어온 듯하다.

협객도 협객 나름이다 


형가(荊軻)는 안중근 의사도 칭송한 협객 중 협객이다. 폭정을 일삼는 미친 독재자 진시황을 죽이려 구중궁궐로 혈혈단신 들어갔던 형가와 멀쩡한 나라를 침입하며 몹쓸 짓을 일삼는 군국주의의 개(犬侍=개사무라이)들은 구별해야 하고, 그 속에 내재된 미학도 엄밀히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역사에 중국의 다양한 낭만협객처럼 제대로 된 사무라이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농민들을 위해 산적들과 싸운 <7인의 사무라이>는 픽션이 아닌가? 또한, 모든 협객이 형가와 같은 낭만협객이 아니듯이 모든 로닌(낭인)이 협객인 것도 아니다. 명성황후를 토막된 인간백정들도 있다.

막상 생각하니 두 개의 칼로 싸우는 이도류(二刀流)의 대표검객으로 칼싸움을 엄청나게 잘했다는 미야모토 무사시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자가 없다. 물론 나는 무사시도 협객으로 보지 않지만, 말이 좋아 주군이지 오야붕을 모시는 야쿠자나 사무라이나 별반 다르게 뵈지 않는다. 일본 영화계는 그렇다 치고 이러한 사무라이 야만문화에 매혹돼 각종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며 미화하는 할리우드도 당최 이해 못하겠다. <47 로닌>도 이러한 관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삼류 사무라이물에 불과하다.


벚꽃 속 당혹스러운 피의 미학

18세기 초 낭인 47명이 주군의 원수를 갚은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47 로닌>은 할복이라는 일본 문화를 몹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서 할복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게 있어서는 불편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판타지·액션 시대극이었다.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력을 낭비시켰다는 평가마저 들 정도로 형편없는 플롯과 촬영기술에 다소 실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스티븐 시걸처럼 서구 사람들은 일본 사무라이 문화에 대해 대책없는 로망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一命, HARA-KIRI: Death of a Samurai, 2011)>


47명의 로닌들이 벚꽃 휘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상의를 훌러덩 벗어 제치고 단도로 복부를 과감히 가르는 피의 미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미국에서 흥행에 참패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47 로닌>에 비해 미이케 다카시의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은 할복 자체 보다는 할복 이면에 숨어있는 무사의 명예, 무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대립시켜 이른바 변증법적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할복 문화는 끊임없이 진화중

할복문화가 막부의 쇼군, 번의 다이묘(大明)들이 마구 뒤섞여 온갖 권력쟁탈전을 벌이던 일본 봉건시대에서나 활개 치던 박제화 된 골동품 문화는 결코 아닌 것 같다. 근현대에 들어와선 무사·군인들만이 아니라 문학가를 포함한 예술가, 정치인, 지식인 등 온갖 계층들이 할복을 논했을 뿐만 아니라 미시마 유키오 같은 작가는 황군(皇軍)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몸소 선보이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메이지 시대 이후 제도로서 할복은 사라졌지만 할복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생각하는 남녀노소들의 꾸준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고 그 사상 역시 온전히 남아 있다. 그냥 남아 있다 못해 더욱 확대·포장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생명희생을 강요하며 보편적 윤리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 할복은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와 그가 소속된 조직(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확실히 표명할 수 있는, 비장한 결의를 표현하는 수단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선 후자의 기능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도 분신자살이라는 할복과 비슷한 자결 문화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분신자살은 근대 산업화 이후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계층이 정치·경제적 권력자들에게 항거하는 극단적인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지배계급이 주동하는 할복과는 개념이 상당히 다른 듯하다. 더구나 분신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라고 여기며 이를 방치한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분노를 표하지만, 생존이 아닌 명예 수호 등의 수단으로 자행되는 할복을 접한 이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할복: 일본인은 어떻게 책임지는가>, 야마모토 히로후미 지음, 이원우 옮김, 논형, 2013년.


야마모토 히로후미 교수는 자결방법의 일종인 할복이 “무사가 죄를 보상하고 잘못을 사죄하고, 수치를 면하고 벗에게 속죄하거나 혹은 자기의 성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무사에게 어울리는 세련된 자살’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무사도란 죽는 것이다”라는 해괴망측한 명제를 더욱 발전시켜 가미가제 특공대까지 확대된 할복 문화가 군국주의와 상당부분 내통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로닌 정치인들’

일본 무로마치 시대(1138~1573), 도쿠가와 시대(1603~1867)에 주군이 없는 사무라이들을 지칭하는 로닌(낭인 浪人)은 문학적 소재로 종종 사용되는 단골손님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노동하지 않고(일부는 노동자로 전환하지만), 무위도식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룸펜 프롤레타리아라는 당치도 않은 자본주의 내의 계급으로 비교하는 이유는 그 중에는 반체체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들도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사무라이 잔챙이들이 상당기간 활동하다가 1873년 사무라이 특권이 폐지되면서 로닌과 할복도 사라지게 됐지만, 평화헌법 이래로 주군을 잃은 일본 사무라이 정치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광폭한 로닌이 아닐까하는 우려도 생긴다. 목적의식을 잃어버려 정치판을 헤매고 있는 로닌들이 자기존재의 의미를 되찾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정치 로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천황을 주군으로 모시고 과거 영광을 재현하는 군국주의의 부활이 아니겠는가.


['47 로닌' 예고편]


['할복 : 사무라이의 죽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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