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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에 깃든 자유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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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4.0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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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3(개정판).

이젠 마르크스 보다는 소로우의 자유정신이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가 거의 언제나 불편한 존재이고,
모든 정부가 때로는 불편한 존재이다” (본문 17페이지)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책만 읽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백면서생(白面書生)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이른바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이다. 소로우가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6년 넘게 인두세 납부를 거부함에 따라 29살에 경험한 하루 동안의 수감생활은 <시민의 불복종>(원제: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이란 걸작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30대 후반에 출간한 <월든>에는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정신이 담겨있다면, <시민불복종>에는 소로우의 정치철학, 특히 부조리한 권력에 대처하는 자유시민의 자세가 깃들어 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월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행복론, Eudaimonia)이라면, <시민불복종>은 플라톤의 <국가론>과 견줄 수 있다.

칼 마르크스보다 1년(1817년) 먼저 태어나 45세에 미국 메사추세츠 콩코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눈을 감은 소로우의 정신이 톨스토이와 간디를 거쳐 21세기 지금에 와서야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자유정신과 환경의식이 너무나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월든>에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하고 자족적인 삶,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면, <시민의 불복종>은 그러한 삶을 방해하고 억압된 삶을 강요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이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해 법은 존재하는가?


소로우 스스로 “나는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듯, 시민들의 의견이 겸허히 수용되고 성찰의 과정을 거쳐 실천되는 보다 합리적인 ‘정치구조와 과정’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21페이지)는 언급은 사회계약론에 기반하고 있는 근대 국가론과 법치주의와는 그다지 어울리는 말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당시 부조리한 법률시스템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법률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를 지적했다는 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비도적적인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멕시코)을 침략하는 범죄행위를 일삼는 연방정부를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그는 국민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을 뿐더러 마치 기계마냥 국가를 위해 육신을 바쳐야 한다고 강요하는 주객전도의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하며 ‘혁명의 권리’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선거(투표)에 대해서도 몹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투표는 모두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놀이와 같다.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30페이지) “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42페이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David Henry Thoreau, 1817년 7월 12일~1862년 5월 6일)

 

건방진 정부와 침묵하는 시민들에게 고한다


소로우는 인민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엘리트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비록 소수일지라도 양심적이고 현명한 자들이 “전체를 발효시키는 효모” 역할을 할 수 있음도 시사한다. 이러한 계몽철학은 <월든>에서 마을에 다리 하나 건설하는 것보다 도서관, 학교를 짓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강조하는, “그 비용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보다 어두운 무지의 심연 위에 구름다리 하나라도 놓도록 하자”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부도덕한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인가 아니면 이를 부정하고 명령(법)을 어기는 것이 도덕적인가? 소로우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악법도 법’이라는 대명제는 소로우에겐 전혀 영양가 없는 헛소리인 것이다. 소로우가 제시하는 해법은 부도덕하고 건방진 정부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침묵은 때론 비겁한 동조와 같다. “정부의 성격과 처사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충성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정부의 가장 성실한 후원자들이고 따라서 개혁에 가장 심각한 장애가 될 경우가 많다”(35페이지)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37페이지)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선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이 감옥인 것이다”(42페이지)
“국민이 충성을 거부하고 공무원이 자기 자리를 내놓을 때 혁명은 완수되는 것이다”(43페이지)
“정부에 복종할 경우, 나는 자신의 가치가 전에 비해 떨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47페이지)


소로우의 글을 읽노라면 ‘천부적인 최후의 저항권’(직접행동)이란 개념이 생각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심히 뻘줌하게 만든 디오게네스의 견유학파도 연상된다. 참고로 디오게네스 철학을 근대 아나키즘의 원류로 보는 이가 많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51페이지)라는 부분은 그냥 아나키즘이라고 간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가능한가?


그렇다고 소로우가 공동체 시스템을 무시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원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질 나쁜 피통치자가 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58페이지) 이는 그의 공동체관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준거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로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엄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68페이지) 이러한 소로우의 철학(국가론)에 비추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고 개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대답 역시 각자의 몫이다.

이 책에는 <시민의 불복종> 외에도 자연예찬론이라 할 수 있는 에세이 <가을의 빛깔들>과 <야생사과>, 소로우 일기에서 발췌한 글 <돼지 잡아들이기>,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이 보너스로 들어있다. 강경한 어조의 <시민의 불복종>에 비해 이들 에세이는 너무나 부드럽고 유려해 청년 소로우의 문학적 감수성을 실감할 수 있다. 마치 콩코드 지역 어느 한적한 숲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감각적이고 섬세한 그 만의 문장을 즐길 수 있다. 


시민의 불복종 - 10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은행나무


관련 포스팅: 2014/01/15 - [My Text/Book] - 최초의 녹색서적, ‘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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