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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혼돈, 『밤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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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4.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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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세종서적, 2011.


“내 서고는 무지한 사람의 재산이지만, 무지한 것들을 모아놓은 곳은 아니다”
: 이탈리아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나만의 도서관’이 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도서관의 형태나 특성도 천차만별일 것 같다. 무려 3만권 이상의 책을 보유한 개인 도서관을 가진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이른바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공간 ‘도서관’에 관한 에세이다.

망구엘은 개인 도서관을 꾸몄던 사람들의 다채로운 에피소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대영박물관 도서관 같은 공공도서관, 책(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상상 속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책으로 둘러싸인 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서관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당신이 꿈꾸는 도서관은?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망구엘의 다양한 텍스트를 읽으며 그동안 어렴풋이 생각했던 나만의 이상적인 도서관을 그려봤다. 훌륭한 책과 책장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인테리어다. 책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서고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미술관 전시실을 걷거나 어느 유적지를 유랑하는 느낌마저 든다. <밤의 도서관>에 나오는 바르셀로나 카탈루냐도서관이나 버킹엄 궁전의 왕의 도서관처럼 널찍하고 높은 원형구조보다는 복잡한 미로 구조에 낮은 천장의 서고가 더 맘에 든다. 원형이나 방사형으로 쭉 뻗은 도서관은 판옵티콘(Panopticon)에서 감시받는 것 같아 왠지 부담스럽다.

“아침의 도서관이 세상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고 이를 당연히 바라는 공간이라면, 밤의 도서관은 세상의 본질로 흥미진진한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22페이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도서관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는 도서관이 내가 상상하는 도서관과 가장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무덤처럼 어둡지만 모든 근심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 내가 그리는 도서관의 기본 골격이다. 무덤처럼 어두컴컴한 뮤지엄(박물관·미술관)과 도서관은 일란성 쌍둥이다.

도서관의 역사에는 정치권력(왕조사), 전쟁사, 철학사·문예사조, 종교사 등 인류사의 모든 요소들이 골고루 혼합(mix)되어 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망구엘이 풀어헤친, 도서관과 연관된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접하노라면 약간의 현기증마저 나타나며 조금은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열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도서관의 역사와 재미있는 일화들을 풀어냈지만, 그가 태어났던 아르헨티나와 유명 독서가로서 본격 활동한 유럽 중심으로 전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 듯하다.

"독서는 터치(touch)다?!"


“인쇄물은 그 자체로 독서의 공간이 되며,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색상 및 전체적인 구조가 독서가의 손에서 특별한 의미를 얻는 물리적인 풍경을 창조해내기도 한다.”(84페이지)

망구엘이 던진 첫 번째 주제는 신화 속에 나타난 무한성·보편성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바벨탑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내재된 인류의 불멸을 향한 환상은 현재의 테크놀로지, 웹(web)으로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가 모니터를 읽는 행위와 완벽하게 똑같을 수는 없다”(89페이지) 즉 인터넷, 전자도서관 등의 사이버 세상은 종이책과 도서관을 보완할 수는 있으나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는 게 망구엘의 지론이다. “종이가 없는 미래 사회는 역사가 없는 사회이다. 웹에 존재하는 것은 한결 같이 동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235페이지)

듣는 것 보다는 보는 것이, 보는 것보다 만지는 행위(touch)가 더 원초적이며 자연스럽다. 책은 읽고 만질 수 있으며, 고유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다. 자고로 책은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다. 미로 같은 도서관에서 헤매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자각하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내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연 속의 진귀한 보물찾기는 웹에서 즐길 수 없다. 설령 책과 똑같은 텍스트가 웹에 있어도 스크롤압박 때문에 진득하게 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자책 단말기나 스마트폰 역시 크게 다를바 없다. 아직까진 종이책만큼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 단정할 순 없지만 웹은 결코 책과 같아질 수 없을 것이다.

“책은 공간에 특별한 정체성, 경우에 따라서는 책 주인의 정체성까지 부여한다”(143페이지)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영혼의 행복)를 갈망한다”(196페이지)

편식하지 않는 다독(多讀)하는 독서가는 예외일 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내게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의 서고에 들어가 보면 된다. 서고가 없더라도 책꽂이에 놓여있는 다수의 책들을 보노라면 평소 그가 좋아하는 주제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정치성향, 인생철학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원하는 대로 읽어라"


망구엘은 콜롬비아 산간벽지 주민들의 독서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당나귀 도서관’(Biblioburro)을 예로 들며, “개인적으로 우리가 누구라는 의식에,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집단의 일원 즉 시민이라는 의식이 더해질 때, 우리 삶은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글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도서관에 꽂힌 책들이다”고 말한다. 책이 우리를 악(惡)에서 보호해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 깨달음의 가능성 등 무수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

“(남들은 도서관이라 부르는) 우주……”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망구엘은 개인 도서관 출입문에 ‘원하는 대로 읽어라’라고 써두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도서관이 고통스런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의 공간이고,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더욱 넓게 키워주는 스승이며,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유토피아다. 도서관의 역할이 그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평등 이념이 실현되는 유일한 성소이며 앞으로도 그러기를 소망한다.

밤의 도서관 - 10점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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