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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피의 만우절’… “지금 장난해?”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5.02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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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의 만우절(Los inocentes/Bloody April Fools, 2013, 스페인)

○감독: 로라 가르시아, 마크 마르티네즈, 카를로스 알론소 등 12명

고리타분한 공포 문법… 허무한 부조리의 결말

웬 B급 공포영화에 감독들이 이리 많나 했더니 스페인 필름아카데미 소속의 감독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만 봤을 땐 쓸데없이 너무 많은 감독들이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협업으로 만든 작품치고는 신선한 기운은 별로 없고 공포물의 전형적인 문법을 답습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나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스페인어 제목 ‘Los inocentes’는 ‘결백한 자들’, ‘천진난만한 아이들’ 뭐 그런 뜻인 것 같고, 날(day=día)이라는 명사를 덧붙이면 스페인 만우절(Día de los Inocentes)이 된다. 스페인 만우절은 4월 1일이 아니라 12월 28일이다. 로마제국이 유대의 왕으로 임명한 헤로데(헤롯) 1세가 아기예수를 없애려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유대인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죄를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무참히 죽였기에 ‘결백한 성인들의 날’(Día de los Santos Inocentes)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요컨대 ‘los inocentes’라는 제목과 모티브는 가톨릭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에서 나름대로 다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내용을 대략 간추리면, 1998년 만우절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평소 왕따 취급당하는 남학생에게 장난을 치는데, 본의 아니게 보일러실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게 만든다. 15년 후 한 무리의 학생들이 사건이 일어났던, 흉가로 변해버린 ‘12언덕 호스텔’이라는 곳에서 도둑 숙박을 하는데 연쇄적으로 한 명씩 잔인하게 죽어나간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다.


학생들이 호스텔에 가기 전에 일용할 술을 사고자 잠시 들린 주유소 매장에서 스쳐 지나간 정체 모를 어둠 속 중년 사나이가 범인일 것이라는 미끼를 슬그머니 던져놓고는, 정작 범인은 15년 전에 죽은 학생의 어머니이자 주유소 여주인이라는 상투적인 플롯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죽고, 장난치는 놈은 끝까지 산다.

범인으로 밝혀진 아줌마께서 “니들이 장난 쳤듯이 나도 장난쳤을 뿐”이라는 대사가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포물이라기 보다는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강력한 공포, 심장이 쫄깃해지는 스릴을 선사할 것이라는 홍보 카피에 속았다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출연했던 생기발랄한 배우들 얼굴을 봐서 참는다.

대부분 공포물에서 상습적으로 그렇듯이 항상 촐싹거리며 짓궂게 장난치는 놈이 시범케이스로 일찍 사망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타락한 놈, 욕정에 불타는 연놈들이 다음 순번을 차지한다. 그리고 의외로 존재성 없었던 놈이 꽤 오래 버티다가 허무하게 골로 간다.

다만, <피의 만우절>이 대단히 획기적인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좋은 놈, 선량한 연놈들까지 모조리 사망케 하는 과감성을 발휘했고, 정작 미친 범인은 멍청한 경찰의 오인사격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생존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를 결말로 제시했다는 것! 이 영화 주제는 “어딜 가든 멍청하고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놈들이 항상 일을 망쳐놓는다”가 아닐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을 내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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