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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기제를 완벽 표현한 ‘은밀한 가족’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5.0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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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밀한 가족(Miss Violence, 2013, 그리스)

감독: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Alexandros Avranas)


체제 붕괴의 탁월한 비유… ‘도미노 이론’


11번째 생일을 맞이한 소녀가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느닷없는 자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견고해 보이는 가족 시스템(체제)을 일거에 무너트리는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리는 극한의 자극제는 처음과 마지막 장면뿐이다.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이 넘어질 때 잠시 놀라지만 이후 지루하고 연쇄적인 붕괴장면을 멍때리며 목격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도미노 조각마저 선혈이 낭자하며 자빠졌을 때 이것이 도미노 현상이었음을 확인한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 붕괴와 변화가 인근 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되듯이 ‘폭력을 통한 억압의 기제’를 단단히 구축한 조직 시스템도 작은 조각 하나로 인해 엄청난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 다만 정치에서의 도미노 현상은 (긍정 또는 부정적인) 체제변화로 이행되지만, <은밀한 가족>은 이행의 수준이 아니라 비극적 종말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더 우울하다.


스크린에서 낯설지 않은 김기덕의 향기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던 베니스 영화제는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은밀한 가족, Miss Violence>에 은사자상의 영예를 수여했다. 신예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의 이름을 국제 영화계에 널리 각인시키는 작품이 됐다. 또한 작품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테미스 파누(Themis Panou)는 남우주연상(Volpi Cup)을 수상했다.

흔히 않은 그리스 영화에서 굳이 김기덕 감독을 거론하는 이유는 작품에 묻어나는 비유와 상징에서 왠지 모르게 김기덕 작품과 유사한 향기가 풍길 정도로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밀한 가족>은 김기덕류와는 사뭇 다르게 시종일관 숨 막힐 정도의 절제력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김기덕 작품은 관객을 인공호흡 시켜야 할 만큼, 질식시킬 정도로 무자비하지는 않다.


폭력과 억압 속에도 웃어야 살 수 있는 존재들


요컨대,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 감독의 과도할 정도의 일관된 절제가 오히려 관객들을 지치게 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할리우드의 오버액션 및 리액션에 길들어진 상태에서 담백하면서도 미세한 떨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리스 배우들의 독특한 연기력에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테미스 파누의 명연기만큼이나 맏딸 엘레니 역을 맡은 엘레니 로시누(Eleni Roussinou)의 모나리자 뺨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가정이라는 편안한 구속을 선택한 사람의 억지스러운 미소로 보였다. 반면에 아버지가 죽은 모습을 내려다 볼 때의 다소 활기찬 미소는 광인 또는 악마의 소리 없는 환희처럼 느껴질 정도로 소름 끼쳤다. 


전혀 기쁘지 않으면서도 자기기만 속에서 웃어야 살 수 있는 독재와 억압, 광기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서서히 미칠 수밖에 없는 부조리의 일상을 <은밀한 가족>은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한 가족>은 몹시 불편하고 불쾌한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의 해법 찾기를 우리 역시 포기하며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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