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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정, 자본주의 세계에서 양산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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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5.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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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정 (2014)

A Touch of Sin 
8
감독
지아 장커
출연
강무, 왕보강, 자오 타오, 나람산, 장가역
정보
드라마 | 중국, 일본 | 130 분 | 20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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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놓인 지아장커와 중화인민공화국


하늘이 정한 순리나 운명, 천주정(天注定).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모순도 하늘이 정한 운명인가? 또는 자본 자체가 하늘, 신(神)이 돼버렸나? 아니면 이러한 악순환을 깨부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명(天命)인가? 


<천주정>은 국가권력과 대자본이 결합해 민중의 생활양식을 통제·관리하는 국가자본주의의 불공정한 작태를 풍자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반드시 관료비리, 정경유착 같은 총체적인 부정부패와 노동착취, 지역공동체 및 환경 파괴, 빈부격차 심화, 인권침해 등이 수반된다. 중국식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가 이러한 부작용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국가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중국영화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지아장커(賈樟柯) 감독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진 애매한 경계에 있는 듯하다. 중국 독립영화계 ‘지하전영’(地下電影)의 대표감독, 반체제 또는 비판주의 성향, 비장르영화, 이데올로그 또는 작가주의… 뜬구름 잡는 잡다한 수식어에 매몰되느니 작품 자체의 상징성이나 메시지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아장커는 아직 자기세계 완성에 도달한 예술가는 아니며, 그 노정(路程)에 있는 감독으로 판단한다. 물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롭다. 

지아장커만 경계에 있는 게 아니다. 그가 고발하는 중국사회 또한 경계에 놓여있다. 중국사회주의가 러시아처럼 자본주의의 부분집합이 돼버렸다고 확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특유의 ‘정치구조와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철옹성으로 보인다. 중국정치를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으나 정치 리더들의 대체적인 행태를 볼 때 마피아 같은 러시아, 깡패스런 북한, 국제적 호구 한국, 아직도 막부논리가 통용되는 일본정치보다는 그나마 나아 보일 정도다. 


한편, 자본주의 악폐는 영화 속 중국에서만 발생하는 불상사는 아니다.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오만방자한 자세는 이 영화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우리 역시 신자유주의 폭풍 속에서 죽살이 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아장커 작품들의 일반적인 특성으로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잠식되면서 공동체 의식과 인간존엄성이 말살되는 중국사회의 현실은 <천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이전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자극적이고 감각적이며 노골적이라는 점, 은유적 화법보다는 몹시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일탈의 군상으로 가득 찬 대륙, 양산박은 어디에…


<천주정>은 중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4개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첫 번째 스토리는 부정부패를 고발하려다 실패한 뒤 수십 명을 총으로 쏴 죽인 산시(山西) 출신의 후원하이(胡文海) 사건, 두 번째는 충칭에 소재한 은행에서 강도·살인 행각을 벌이다가 검거돼 사살당한 저우커화(周克华) 사건, 세 번째는 후베이성 바둥(巴東)현의 당 간부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으나 이후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풀려난 호텔 여종업원 덩위자오(鄧玉嬌) 사건, 마지막은 대만 OEM업체 폭스콘 공장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근로자 투신자살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의 후원하이(胡文海)와 비슷한 이름으로 등장하는 따하이(大海, 배우=姜武)가 엽총으로 부패한 촌장과 사장을 죽이기 직전, 거리에서 마을 사람들이 경극(진극·晋劇)을 관람하는데 그 내용이 다름 아닌 수호지 108 영웅호걸 중 하나인 임충이 간적 고구를 처단하는 이야기다. 양산박 산적들이 썩어빠진 관료들과 타락한 귀족들이 활개 치는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일탈했듯이 <천주정> 4명의 인물들도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 세계에서 일탈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에선 양산박 같은 해방구조차 없다. 결국 그 일탈은 복수와 살인, 강도, 자살로 귀착된다.


네 죄를 알렸다? 인민의 응답은…


감독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를 진행하며 과거 홍콩영화 전성기에 제작됐던 작품들을 넌지시 보여준다. 이는 과거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중국인들이 그렇게도 동경했던 홍콩영화와 화려한 자본주의가 실제론 허상이었음을 인식케 하는 통렬한 미장센이다. 

예전에 성룡 영화와 관련해 얘기한 적도 있지만 홍콩영화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버렸고, 중국 인민은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잔인한 소외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영화에서 룸살롱 여직원들이 인민군복을 입고 혁명가를 부르는, 코스플레이 행진을 하며 접대를 해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중국사회주의가 봉착한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쓰디쓴 풍자다.


사우나 여직원으로 일하다가 남자 고객을 죽인 샤오위(배우=자오타오·趙濤)가 우리나라 춘향전과 비슷한 스토리의 경극 <옥당춘·玉堂春>을 노천극장에서 구경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아장커가 <천주정>을 통해 자본주의 세상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외침처럼 느껴진다. 

변사또 같은 판사가 여주인공, 소삼(蘇三)에게 “네 죄를 잘 알렸다?”라고 호통 치는데 카메라는 불현듯 구경하는 마을사람들을 정지된 화면마냥 와이드 하이앵글로 잡는다. 또다시 “네 죄를 알렸다?”가 그들을 향해 울려 퍼진다. 마치 자본주의의 성(性)스러운 명령에 불복종하는 불온한 인민들에게 호통치는 비열하고 변태적인 자본권력의 불쾌한 메아리처럼… 이에 대한 응답, 인민의 목소리야말로 하늘이 정한 운명, 진정한 천명(天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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