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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라 쓰고 ‘자유’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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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5.1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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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김성국 외, 이학사, 2013.


고정된 틀이 없는 아나키즘, 그 정체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부정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이자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쿠닌의 극언이야말로 아나키즘의 지향점을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형체 없는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 아나키즘(anarchism)도 실상은 고정된 틀이 없다. 교조주의적 사상은 반드시 현실의 그물에 걸리는 모순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자유’와 ‘평등’, ‘경쟁’과 ‘협동’의 두 축을 어떻게 조율하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적 아나키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참고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에서 사회적 아나키즘이 가장 왼쪽(급진)에 있다는 건 정치학적 상식. 일본식 번역으로 인해 무정부, 반국가론으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권력·지배의 속성을 갖는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막가파(?) 사상이 아나키즘이다.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칭한 최초의 인물,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사진=위키피디아]


근대 아나키즘의 선구자라 평가받는 프루동이 “재산(소유)은 도적질이다(Property is Theft)”라고 말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과도한 편중과 축적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요소를 지향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사회주의적 요소라는 것은 정부의 통제·관리에 의한 국가사회주의 형태보다는 스페인의 생산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공동체’처럼 주민이 직접참여·운영하는 풀뿌리 경제시스템, 자주적 협동조합 형태 등을 의미한다. 프루동과 더불어 아나키즘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mutual aid)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은 프티 부르주아적 발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유물사관처럼 정제된 이론이나 고정된 틀이 없다는 것이 아나키즘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과거 제1차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1864~1876)에서 마르크스와 바쿠닌이 대립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국가 및 계급 해체를 위한 중간단계인 국가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바쿠닌은 특정계급에 의한 독재, 중앙집권적 공산주의를 강력 반대했으며, 노동자뿐만 아니라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의 非노동자, 아웃사이더도 혁명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즘의 기본 상징색은 검정색(검은 깃발, black flag)이다. 이외의 대표적 상징물로 왼쪽부터 circle-A,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Anarcho-syndicalist flag). circle-A는 “Anarchy is Order”(아나키는 질서다)라는 프루동의 슬로건에서 유래됐다. 특히 펑크락 등의 대중음악가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자주 애용하기도 한다.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Red-and-black flag)은 스페인내전(Spanish Civil War, 1936~1939)에서 처음 사용됐고, 파업, 사보타주(태업, sabotage), 급진적 조합주의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black cat, wild cat, sabot-cat) 깃발도 종종 등장한다. 최근에는 “선장 없이도 항해할 수 있다” 또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선장을 수시로 뽑는다” 등의 의미에서 해적깃발(Jolly Roger, Pirate flag)도 유럽의 시위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다. 대체적으로 장난끼 넘치면서 자유로운 상징체계를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나키즘은 경제적으론 평등성을 지향하지만, 정치적으론 자유(또는 자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게 중심에 따라 사회적, 개인적 아나키즘 외에도  아나르코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자 조합 운동), 에코 아나키즘, 문화 아나키즘, 생활양식(lifestyle) 아나키즘, 아나르코 페미니즘, 심지어 톨스토이 사상에 기반한 기독교적 아나키즘 등 무지 많다. 대체로 혁신적인 의미의 단어에 아나키(anarchy)란 꼬리표만 붙이면 될 정도다. 거의 모든 진보적 개념과의 접붙이기를 통한, 잡종교배가 무궁무진한 슈퍼 유전자가 아나키즘이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나키즘이 그만큼 다양성이 존재하는, 폭이 넓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성격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을 소시민(프티 부르주아)적 낭만에 빠진 감성주의자, 공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소규모 자치공동체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자유연합체)인 것 같다. 박홍규 교수의 말처럼 ‘자유’, ‘자치’, ‘자연’이라는 3대 요소가 그 핵심이다. 자치라는 말 속에는 현재의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라는 의미보다는 직접민주정치·직접행동 개념이 농후하다. 지금의 지방자치 역시 대의제의 축소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우(衆愚)가 아닌 중우(衆優)정치


이 책에서 어리석은 민중이라는 의미의 중우(衆愚)에서 직업정치인보다 더 현명한 다수 시민들의 중우(衆優)정치로의 전환을 제시하며,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강동권(한국아나키즘학회장)의 <아나키스트 정치구상>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이른바 ‘아나키스트 정치’를 위한 3단계 로드맵 구상은 대단히 혁명적인 상상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기반을 인터넷 정보기술에 두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IT기술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제한 자유롭고 평등한 지는 따져볼 일일 것 같다. 


한편, 아나키즘은 서구사상일까?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등 일제 식민시대에 아나키즘으로 전향한 민족지도자들의 사례를 들며, 사대부 계급의 우월성을 인정치 않고 평등성을 강조한 양명학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동양의 개혁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창했던 ‘대동사회’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에 기반한 사회는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사상이 아니라 동양 고대사회에서 여러 지식인이 이상으로 삼았던 사회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서양에서 이론화되면서 아나키즘이란 용어로 정리됐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이며 사회주의 혁명가, 독립투사, 아나키스트였던 김산(金山, 본명: 장지락). 일제 식민시대 상당수 지식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아나키즘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이외에도 권위에 대한 저항, 생태주의적 세계관, 무집착의 논리 등으로 불교와 아나키즘 간에도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개인적으론 지배층의 통치 헤게모니 역할을 맡았던 유교 이념 중 하나인 양명학이나 노장사상, 불교보다는 허례허식과 계급, 사욕(재산축적)을 타파하고 겸애를 주장한 묵자 사상이야말로 아나키즘에 한층 더 가까워 보인다. 묵가는 공자사상에 반발해 하층민을 주체로 하는 정의론와 행복론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사상 조류에서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은 적자생존이 아닌 상호부조라는 원리에 의해 인류가 진보(진화)한다는 아나키즘이었고, 본능적으로도 끌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을 꿈꾸자!  


이문창(자유공동체운동자연합 준비위원장)은 남북통일을 민족의 의미보다는 “민중 삶의 자유를 탈환하는 과정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민중 스스로 삶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유공동체 운동과 통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자유공동체 통일은 정치지도자들에 의한,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부터 위로, 주변에서 중앙으로’의 통일전략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자유공동체·자유연합에 중추적 매개자로서 세계 170여개국에 산재한 700여만의 해외동포들과 국내 다문화구성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러한 자유공동체 운동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에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창언(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은 “아나키즘 차원의 민주성은 관리가 아닌 자율적 참여와 소통을 지향하며 소수성의 보장을 중시한다”며,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키 위해 전략적 계획,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국가정책의 변화, 국제협력을 위한 공동행동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김성균(성결대 지역사회과학부 겸임교수)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성향이 다분히 아나키즘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주관리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문화 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871년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 파리코뮌은 그동안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록 국가권력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지만 국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 역사적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출처: 위키피디아]


또, 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은 지역공동체와 생태계를 살리는 ‘지역통화’의 역할을, 정중규(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는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립생활운동과 아나키즘으로의 확대 당위성을, 이소영(고려대 연구교수)은 전반적인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 그 삶을 통해 아이들을 키워가는 에코토피아 실천사례들을 제시한다. 임해수(한국염소협회장)는 정부주도의 협동조합보다는 농협을 해체하고 농민조합원을 해방시켜 자유, 자주, 자치적 농민연합공동체 협동조합의 탄생과 아나키즘적 협동조합공동체 운동방향을 제안한다. 김민정(환경사회학회 총무이사)은 낭만적이거나 유토피아적 방식만으로는 원하는 대안사회를 실현할 수 없다며, 오히려 “중앙 집중적인 민중권력”이라는 이색적인 제안을 시도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상계의 흔한 논리적 사고법이 돼버린 헤겔식 변증법을 차용한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양한 변증법적 결과가 혹시 아나키즘이 아닐까? 사회구성체 논쟁에 따른, 민족 또는 계급에 의존하는 NL-PD의 고정된 패러다임은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역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생활문화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나키즘은 아닐까? 진정한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소유하고 속박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데올로기,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아나키즘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상징한다. 감성과 낭만이 죽어버린 현실에서 오히려 불가능을 꿈꾸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 10점
김성국 외 지음/이학사
※아나키즘 관련 서적

※관련 포스팅:

2005/12/09 - [My Text/Book] - 반역아 미하일 바쿠닌/ E.H.카

2005/11/30 - [My Text/Book] -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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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4 00:16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환단고기같은 미친 위서를 더 믿고 따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