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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영어』… “나는 한국어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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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7.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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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영어: 한국인은 왜 영어를 숭배하는가』,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4.


“한국에서 영어는 국가적 종교이긴 하되, 그 정체는 내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복신앙이었던 셈이다.”[157페이지]


“모든 이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거듭된 선전은 상류층이 미국말 배우기에 쓸 시간과 돈이 모자라는 하류층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이데올로기라는 측면도 있다…”[184페이지]


대학생 시절 NL운동권 선배 왈 “미 제국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일제식민시대 통치술에 이용당하는 것과 똑같다.” 즉, 미 제국주의 시대에 길들여져 영어를 배우는 것은 과거 친일파들이 하는 작태와 비슷하다는 것. 근데 그 선배는 지금 강남에서 살고 있으며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말보로 담배 피웠다고 귀싸대기 맞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영어 제국주의 논리는 차라리 상식처럼 들릴 정도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영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유층·빈곤층 할 것 없이 권력을 넘어 종교수준에 이르렀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영어 가능자와 불가능자. 대체로 영어 가능자는 상부계급, 불가능자는 하부계급에 속한다. 영어 가능자는 엘리트층, 불가능자는 비엘리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영역에서 큰 소리 치는 웬만한 리더들은 대부분 영·미권 유학파들인 것도 사실.


언어도 넓게 보면 문화에 속한다.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배운다는 순진한 발상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아주 옛날에는 중국, 근세에 들어와선 일본, 해방정국 이후론 영어가 대세가 됐다. 또다시 어떤 언어로 바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뜬다고 말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국어가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들 간 경쟁 속에서 차별화 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들 중에 영어실력이 가장 효과적이며 그 서열도 계량화하기 쉽다. 토익 점수대로 분류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어학연수, 심지어 혓바닥 수술, 토익 대리시험 꼼수, 외국인 강사들의 천국이란 비아냥… 이유야 어찌됐든 영어 불가능자는 루저(loser)로 취급받는 잔혹한 세상이 됐다. 


뭔가 획기적이고 쾌도난마의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저자가 제시하는 마지막 답변은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는 다소 맥 빠진 주문. 그냥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자는 것과 다름없다. 학벌, 지연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영어 광풍에 대처하는 합리적인 해결책이란 애당초 없다는 논리처럼 들린다. 어쩌면 대학서열화의 중심축, 서울대를 해체하는 것이 훨씬 쉬울 지도 모르겠다. 


외국이라곤 독일과 중국 한 번 갔다 온 게 전부이며, 밥벌이 하며 영어를 써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음에도 영어는 스트레스이자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짐짝처럼 느껴진다. 배워도 스트레스, 안 배워도 스트레스라면 그냥 안배우고 돈 안 쓰고 대충 스트레스 받는 게 편안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대로 쓰는 것도 나는 가끔 힘들다. 거기다가 사투리까지 쓴다고 비웃음 당하기 일쑤다.


반면, 복거일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영어공용화’를 통해 가진 자든 못가진 자든 영어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하자며, 그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나름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나는 반대일세다. 국민 모두 영어를 잘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영어 잘한다고 국민들이 현재보다 행복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영어를 대체하는 또다른 강력한 차별화 수단이 나올 것이 뻔하다.


영어를 잘해야 잘 살 수 있는 나라보다 영어를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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