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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에 대한 성찰, 일렉트릭시티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 8. 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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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의 일렉트릭시티 (2014)

Electric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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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트러셀
출연
톰 행크스, 진 트리플혼, 홀랜드 테일러
정보
액션 | 미국 | 80 분 |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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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그림찾기 같은 애니메이션


새로운 디스토피아 ‘일렉트릭시티’에는 특이한 것들이 몇 개 발견된다. 


일단, 감독을 맡은 톰 행크스의 목소리가 애니메이션에서 흘려 나오는 게 신기하다. 또한, 각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작품이기도 했다. 스토리 자체가 난해한 작품이라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해석이 가능한, 무난한 상징체계를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닌 듯하다. 언뜻 보기에는 심플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숨겨진 물건을 발견할 것만 같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작품이었다. 


기존 작품에서 그려진 미래사회의 암울한 디스토피아와는 달리 일렉트릭시티에는 SF 요소가 별로 없다. 오히려 아날로그적 미장센이 주류를 이룬다. 배경만 봐선 전혀 디스토피아 같지 않고 중남미지역이나 저개발국가의 어느 평화로운 소도시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른바 ‘종말 이후’(3차 세계대전으로 추측) 석유나 핵연료는 완전 고갈됐다. 분산된 도시들은 소량의 전기로 운영되는 소규모 폐쇄사회다. 


미래 모계사회, 여성들의 과두정치?


영화 초반, 감옥에 수감된 죄수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전기를 생산하는 장면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발달된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문명사회가 아닌 오히려 과학기술 수준이 퇴보된 후진사회를 의미하고 있다. 특히 뜨개질 하는 여성들(할머니들)이 일렉트릭시티를 지배하고 있는 건 이색적이다. 더구나 1인독재도 아니고 여성들의 과두정치다. 

이들 여성 지배계층이 대리자(첩보요원)들에게 일렉트릭시티를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하라고 명령하는 것에 미루어 일렉트릭시티는 ‘폐쇄적인 모계사회’를 구축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여기서 폐쇄적이란 의미는 작품 속에 나오듯이 통신, 무역, 여행 등이 금지된 상태를 말한다. 특히, 통신규제는 곧 언로(言路)의 통제를 의미하며, 언로통제는 의사전달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함을 뜻한다. 


또, 일렉트릭시티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자원’을 통제하는 사회이며, 심지어 임신·출산까지 통제하는 극단적인 공동체 사회로 묘사된다. 전기(자원)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 도시, 공동체들 간의 연결이 단절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일렉트릭시티는 안티-노마드(nomad) 사회다. 


통신발달=소통증진?


야후(Yahoo) 시리즈에서 출발해서일까? 일렉트릭시티는 전기(자원)를 통제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결론은 ‘통신’에 방점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과학기술, 특히 통신수단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인간들이 자유로워지기 보다는 오히려 통신으로부터 통제당하는 현실은 간과하지 않았는가? 통신수단의 발달이 곧 소통의 원활함을 촉진하는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전체적으로 일렉트릭시티는 모순된 것들이 더러 있고,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들도 많다. 모계사회, 소규모 사회라면 오히려 자유로워야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는 점, 그러면서도 통제사회 치곤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다는 점, 문명의 진보가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재촉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자유를 더욱 신장시키는 것인지, 경계를 넘어선 통신과 무역의 발달이 진보된 사회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파국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지…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과 이를 통제하는 자들 간에 선과 악을 구분 짓기 힘들었다는 점. 어쩌면 진정한 디스토피아는 정의와 불의를 명확히 구별하기 힘든 사회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선과 악의 기로에서 윤리덕 갈등이 존재하는 법, 갈등 없는 선택과 해결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갈등 자체마저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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