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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유럽 부흥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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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08.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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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은 만능키가 아닐 터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진보·보수 불문하고 정치·언론인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 계통 종사자라면 누구나 약방의 감초처럼 애용하는 멘트 중 하나가 E. H. 카(Edward Hallett Carr) 강연을 내용을 엮은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 나오는 위 명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다보면 E. H. 카는 시종일관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객관적 편찬)과 해석(주관적 산물인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반합의 변증법이 흑백논리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자신의 주장을 보다 합리적으로 펼치는 데에 유용한 방법이긴 하지만 결과론에 따라선 양비론, 회색분자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


역사에 대한 접근, ‘이성’과 ‘직관’의 혼돈

 

저자는 역사 연구(해석)에 있어서 원인·결과분석의 합리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가 사례(자동차 사고)로 제시하면서 주장하는 귀납법적 사고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평범한 원인분석법은 아닐까. 이러한 직관성을 굳이 이성(理性)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해석하고 대입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역사가는 ‘왜?’라고 물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디로?’라고 묻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물론 ‘왜’는 원인과 결과를, ‘어디로’는 당연히 진보된 미래를 지향한다. 스스로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는 그는 미래를 향한 ‘진보의 가능성’에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아비규환과 냉전을 지나면서 세계패권은 미국에게 이전됐다. 서유럽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 이 시대(50~60년대) ‘역사의 종말’은 후쿠야마식의 종말이 아닌 아마도 ‘유럽의 종말(몰락)’로 이해될 것이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의 개념, 역사가의 연구자세(역사철학)와 방법론(해석)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실체(의도)는 유럽의 패전국이든 승전국이든 풀이 죽은 유럽 지성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긍정(낙관)의 메시지가 다분히 내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


우물 안 개구리 마인드를 벗어나 큰 통찰력으로 세계사를 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역시 그 기반은 유럽지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영국의 역사학자 액튼경(Lord Acton)을 비롯해 헤겔, 마르크스, 데카르트, 루소, 프로이드 등이 남긴 족적을 좇으며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한다. 더욱이 영어권 지식인들이 이성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하며 보다 확고한 이성관을 정립할 것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대체 누구의 역사를 의미하며, 그가 강조하는 이성은 무엇을 획득하기 위한 이성인지 불명확하다. 더욱이 ‘넓어지는 지평선’을 향하는 진보를 신념으로 내세우면서 그 진보의 구체적 형태는 물론 방향성도 부재하다. 수사(修辭)에 능한 외교관 또는 얄팍한 언론인 출신들이 상습적으로 내뱉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주장일지는 모르지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기 전에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춘추필법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인상 깊은 구절: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하게 하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역사의 이중 기능인 것이다. (87페이지)


미래를 향한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잃은 사회는 과거에 자신들이 이룩한 진보에도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208페이지)


역사란 무엇인가 - 6점
E.H.카아 지음, 박성수 옮김/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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