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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해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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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4. 8. 1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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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적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전무후무한 세계최강국 ‘아메리카합중국(미국)’의 국방정책 수립에 있어 이론적 초석을 다졌던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 그가 저술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마한의 격언은 이미 수세기 전부터 역사가 증명해왔다. 어찌됐든 근대 제국주의와 해군력을 강조한 마한의 군사철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구 열강들이 힘을 과시하는 제국주의의 초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해적, 특히 카리브 해적들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스페인의 식민지 패권을 빼앗고 나눠먹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즉 당시 해적의 역사는 유럽의 식민지 개척사와 괘를 같이 하고 있다. 또한, 유럽열강들, 특히 미국의 해군력이 강력해질수록 풀뿌리(?) 해적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그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검은 수염’이라고 불렸던 악명 높은 해적 에드워드 티치(왼쪽)는 끝내 노스캐롤라이나의 오크라코크 섬에서 영국 왕립 해군의 해적 사냥 부대에게 포위당했다. [본문 7페이지]


‘해적의 역사’ 통해 세계사 지류를 조망


브렌다 랄프 루이스(Brenda Ralph Lewis·영국)가 집필한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해적의 역사』는 세계사의 변두리에 자리 잡은 ‘아웃사이더’이자 민중사에서조차 배제당한 군상들, ‘해적(海賊, pirate)’을 테마로 한 독특한 역사책이다. 


‘해적의 역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다의 강도 ‘해적’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시대별·지역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해적들의 행태가 국제정치·경제구조의 변동을 파악하고 평화와 혼돈시대를 가늠하는 제3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의 화려한 해적사(海賊史)뿐만 아니라 비록 지엽적인 시각일망정 극동아시아의 해적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어 세계사의 흐름을 색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해적이…


‘바다에서 벌이는 노략질’ 즉 해적질(piracy)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어쩌면 바다의 교통수단 ‘배’가 발명됐을 때부터 해적은 이미 잉태 됐는지도 모르겠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로마시대에도 해적질은 성행했다. 책에 따르면, 해적질을 기록한 최초의 증거는 기원전 13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케나톤(Akhenaten, 기원전 1362~1332년) 파라오의 재위기간에 새겨진 점토판에는 해적선이 북아프리카 해변을 습격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바이킹들은 탐험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바이킹들이 타던 대형 선박은 20세기에 새롭게 다시 태어나, 수세기 전에 그랬듯이 현대의 항해자들로 하여금 대서양을 건너고 강을 항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본문 9페이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안선을 싸고돌며(coast hugging) 진행됐던 해적질은 8세기 바이킹의 듣도 보지도 못한 항해술로 인해 새로운 지평을 맞이했다. 이들은 해안선이 아닌 드넓은 대양에서 곧장 육지로 오는 담대한 항해를 선보였다. 별자리를 통해 대양을 누비는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의 출현은 당시 영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바이킹에 이어 15세기 지중해는 이슬람 세력 ‘바르바리 해적’의 무대가 됐다. 1492년 스페인 통일의 첫걸음을 디딘 아라곤의 페르디난드(Ferdinand) 왕과 아내인 카스티야의 이샤벨라(Isabella) 여왕은 무려 8세기동안 스페인을 지배해 온 무슬림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후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쫓겨난 이들 무어인들은 기독교 선박들을 대상으로 지하드(성전)를 위장한 노략질을 펼쳤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의 지중해 장악은 18세기말~19세기초 미합중국의 위풍당당한 장갑함이 출현하면서 종말을 고했다.

저자는 이외에 극동아시아의 해적들도 설명한다. 역대 동아시아 해적 중 단연 으뜸은 왜구! 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한반도를 괴롭힌 일본 해적(왜구)들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원(몽골)-고려연합의 일본 정벌과 가미카제(신의 바람) 탄생에 얽힌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정치권력(막부)의 중앙집권화 정도와 왜구의 활동은 반비례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에야스(1543~1616)가 도쿠가와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면서 왜구의 노략질은 쇠퇴기를 맞이했다.


해적의 민주주의


“1720년에 바솔로뮤 로버츠(1682~1722년), 혹은 1724년에 존 필립스 선장(Captin John Phillips)이 작성한 당시의 해적 행동 규칙은 평등주의적 사상을 내세웠다” [본문 89페이지]

반인륜·비도덕적이며 포악·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해적과 평등주의는 쉽게 매칭이 안 된다. 하지만 저자는 “평등주의는 당시 현실에 비춰 보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해적선에 승선한 선원(해적)들은 (노략질로 얻은 재물을) 균등하게 배분 받았다. 전투로 다친 자들에겐 보너스까지 지급됐으며, 선원들은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능력 없는 선장을 끌어내리고 다른 선원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또한 주요 사안은 투표로 공평하게 결정했다.


카리브 해적들, 토사구팽은 숙명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손쓸 수 없는 질병들이 수백만 인구의 생존을 위협했던 시대였으므로, 당시에는 삶 자체가 무자비했다. 그런 조건들과, 사람들에게 질서를 강요했던 가혹한 처벌들은 사람들을 야만스럽게 만들었다……이처럼 가혹한 세상이었으니 사회에서 가장 황폐한 지역 출신인 해적들은 해적에 가담하는 것을 그 고된 삶에서 벗어나는 길로 여겼다.” [89페이지] 


‘모이면 도적이요, 흩어지면 백성’이라는 말도 있듯 산적이나 해적이나 존재 본질은 같은 듯하다. 물론 해적이 언제나 정부의 반대편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대륙을 개척하고 약탈한 식민지(스페인 점령지) 자원을 본국으로 부리나케 나르던 시절,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의 유럽 열강들은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해적들에게 적국 선박을 나포할 수 있는 면허장을 발급해주며 교묘히 해적들을 이용했다. 

스페인과 오랜 경쟁관계였던 프랑스는 해적들이 스페인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도록 적극 장려할 정도였다. 노략질한 것들을 상당 부분 정부에 바치면 사나포선(privateer, 적의 배를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한 사유 선박), 전부 독차지하면 해적선이라 할 수 있다. 카리브 해에서 해적들이 번창한 근본은 역시 열강들의 식민화 정책에 기인한다. 대니얼 디포의 모험소설 『로빈슨 크루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J. M. 배리(James Matthew Barrie)의 『피터팬』 등은 식민정책의 그늘에서 서식한 해적들과 관련 인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마치 『수호지』의 108두령들이 외적(요나라)을 무찌를 수 있도록 국가(송나라)를 도왔음에도 나중에 배신(토사구팽)을 당하듯, 카리브 해를 배경으로 하는 ‘해적질의 황금시대’는 1730년 전후로 급격한 쇠락기에 접어든다. 자국의 무역항로를 보호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선 열강들이 해적 소탕작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모험과 자유의 나날, 해적의 계율이 약속하는 민주주의적 권리들, 그리고 ‘달콤한 무역’이 낳은 엄청난 부와 같은 좋은 시절은 정말이지 영영 가버렸다…” [191페이지]

▲해적 깃발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소위 졸리 로저라고 불리는 ‘두개골과 엇갈린 뼈’ 깃발이 가장 유명하다. 캘리코 잭 래컴이 올렸던 이 깃빌에는 뼈 대신 검이 엇갈려 놓여 있다.[본문 182페이지]


해적,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카리브 섬들의 해안들은 아직도 해적 전설과 민담의 중심지로 남아있다. 카리브에서 명성과 부를 축적한 남자들, 즉 헨리 모건이나 공포의 반미치광이인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같은 이들은 대양의 엄청난 보물과 모험, 그리고 비록 수명은 짧을지언정 일상에서 벗어난 매력적인 인생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했다” [137페이지]


히스파니올라 북서 해안에 자리 잡은 해적들의 안식처이자 카리브 해적들의 수도 ‘토르투가’, 동쪽의 또 다른 토르투가로 불렸던 ‘마다카스카르’는 그야말로 무정부의 안식처, 해적공화국이었다. “검은 깃발을 올리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무모하고 잔인한 바다 도적, 해적의 낭만시대는 제국주의로 대체됐다.


물론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맞이한 지금도 해적은 존재한다. 말라카 해협, 싱가포르 해협 방향에 자리한 필립 해협, 특히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바다로 나선 소말리아 해적에 이르기까지 해적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다만 그 양상이 변했을 뿐이다. 현대 해적은 과거 해적과는 달리 민주적이진 않은 듯하다. 앙상하고 초라한 이들 가난한 해적들의 배후에는 국제범죄조직이 웅크리고 있다. 조직구조와 활동이 어떻게 변형됐든 해적은 여전히 세계의 바다를 괴롭히고 있다.  


“정직한 노동을 하면 소득은 박하고 임금은 낮고, 일은 고되다.… 반면 이 일에는 풍족함과 포만이 있고, 즐거움과 편안함이, 자유와 힘이 있다.… 아니, 나는 즐겁고 짧은 삶을 목표로 삼겠다.” [전설의 해적 ‘블랙 바트’(Black Bart, 바솔로뮤 로버츠), 본문 92페이지]


세상의 부조리와 분배의 불균형이 극단으로 치닫고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가 그 지배구조에 절망을 느낄 때, 검은 깃발 또는 해골 깃발(Jolly Roger)을 펼쳐든 해적은 또다시 우리 곁에 출몰할 것이다.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해적의 역사 - 10점
브렌다 랄프 루이스 지음, 김지선 옮김/북앤월드(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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