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찾는 루소의 여정

My Text/Book

by 아나키안 2014.08.22 02:02

본문


맹자와 묵자를 닮은 ‘루소’의 사상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140페이지)


고대 중국에 성선설의 맹자와 성악설의 순자가 있다면 유럽에는 사회계약론의 지평을 연 토마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가 있는 듯하다. 이러한 기계적인 도식이 그들의 구체적 사상과 꼭 들어맞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맹자가 ‘측은지심’을 통해 인성론을 설파했듯이 루소는 ‘연민’을 통해 인간 본연의 미덕을 논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소유제를 시초로 불평등한 구조(법·제도)에 기반하고 있는 인간의 문명을 비판한 루소의 철학은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고 예악(禮樂)을 비판한 묵자의 사상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꽤 있어 보였다. 미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는 “루소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 최초의 인물이요, 민중을 위해 말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고 찬사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프랑스 대혁명에 철학적 영감을 제공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6.28~1778.7.2)의 대표 저서이다. 루소는 1749년 디종(Dijon) 아카데미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주제의 논문공모에 <학예론>을 제출해 무명서생에서 일약 저명한 비판자로 등장했다. 학문과 예술의 여러 분야가 인간의 악덕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자질마저 악화시킨다는 루소의 주장은 당대 계몽주의 시대의 패러다임을 공격하는 (지적)테러와 다름없었다.


역사철학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학예론>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역시 ‘인간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디종 아카데미가 기획한 현상 논문에 응모하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그리고 1755년 암스테르담에서 공식 출간됐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란?


이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해 자연적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버리는가 하면, 소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활한 횡령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그 후 온 인류를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과 예속과 비참에 복종시킨 것이다. (116페이지)


옮긴이의 말처럼 18세기 말엽부터 경제와 사회가 정치보다 더 중시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루소는 ‘정치’를 인간의 사회적 삶의 핵심적인 결정적 요소로 파악한 최후의 사상가일 수도 있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알기 위해선 인간자체(인성론)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존재의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개념이 바로 그 유명한 ‘자연상태’이다. 물론 루소가 바라본 인간문명의 모습은 강자의 폭력과 약자의 억압상태가 점철된 불평등한 세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실증적으로 고찰이 가능한 먼 과거가 아닌 가상세계이다. 루소가 상상한 원초적 자연상태의 인간은 “고독하고 무사태평하고 평화로우며, 건강하고 튼튼하며, 자연의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생각도 정열도 없고, 예측도 기억도 없는 동물”이다.(150페이지) 루소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인간에게 선악이란 애당초 존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홉스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란 현상은 루소의 ‘자연상태’에서는 없다. 루소는 토마스 홉스가 말하는 만인투쟁은 ‘소유’라는 제도가 등장한 이후라고 분석한다. 즉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우며 행복한 존재이다.


인간 문명의 마지막 단계, 주인-노예


이러한 모든 변천 가운데서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가 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3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상태는 첫 번째 시대에 의해,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두 번째 시대에 의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세 번째 시대에 의해 성립되었다.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로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 정부 권력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정당한 제도에 가깝게 만들 때까지는 모든 단계가 거기로 귀착된다.(131페이지)


하지만 여러 환경변화로 자연상태의 인간들은 조금씩 공동체(사회)를 이루면서 상호 간에 비교의식(우열의식)이 높아지고, 특히 소유욕이라는 욕망이 더해지면서 인간 불평등의 싹이 자라게 됐다. 소유욕은 야금술, 농업기술 등을 발전시켰지만 생산수단의 사유화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더욱 종속적으로 만들었다. 이는 개인의 가치가 ‘존재’에서 ‘소유’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른바 홉스식의 만인의 투쟁상태가 도래하고 부자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이로써 부자들의 특권은 더욱 확고해지고 불평등은 제도적 가치로 전환된다. 가난한 자들은 영원한 노동과 예속으로 몰리고, 소유와 권력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특히, 법과 제도는 구체적인 정부형태(군주·귀족·민주제)로 확대된다. 차츰 사회 내의 인간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공고화되고, 애당초 합의에 의해 정립된 제도는 자의적인 권력으로 탈바꿈된다. 이 상태를 루소는 “가장 힘센 사람이 지배하는 새로운 자연상태의 정립”이라고 표현한다. 순수성에 기반한 자연상태가 아닌 과도한 타락과 불평등에 뿌리를 둔 자연상태인 것이다. 


18세기에는 바스티유, 21세기에는 어디로?


그렇다면 이러한 불행한 문명에서 탈출하거나 이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까? 옮긴이는 루소는 원시적인 사회형태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러한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 답은 <에밀>, <사회계약론> 등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1789년 프랑스인들이 루소의 사상에서 혁명의 메시지를 읽었듯이…


18세기 루소의 사상은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 수준을 넘어 절대진리로 받아들여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사적소유가 극단에 이르고 불평등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이른바 ‘새로운 자연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전제군주정의 압제에 시달린 민중들이 폭정을 상징하는 바스티유를 습격 점거했다면, 신자유주의의 노예상태에 지칠 대로 지친 21세기 시민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책 속으로(인상 깊은 문장)


일단 지배 받는 데 익숙해진 국민은 지배자 없이 지낼 수 없게 되지요. (17페이지)


이 같은 특질(감성적 존재)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적어도 동물은 인간에 의해 불필요하게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9페이지)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95페이지)


나는 노예가 된 인민이 쇠사슬에 매인 채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식을 끊임없이 찬양하며, 비참하기 그지없는 예속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22페이지)


군주가 백성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이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백성을 살려두는 것이 은총을 베푸는 것이 되었다. (123페이지)


자유는 그들이 인간이라는 자격으로 자연에게서 받은 선물이므로, 어느 부모도 자식들에게서 이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126페이지)


이(미개인)와 반대로 문명인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때때로 살아있는 상태에 놓여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138페이지)


인간 불평등 기원론 - 10점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책세상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