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화 ‘루시’, 하이데거와 이기적 유전자를 발견하다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09.06 23:57

본문


뤽 베송의 건방진 프레젠테이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루시>는 뤽 베송의 예술철학이 농축돼 있는 걸작이다. 물론, 걸작과 졸작의 평가는 각자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으며, <루시>는 영화의 전형(내러티브=이야기)을 파괴한 막가파 작품으로 보일 소지도 있다. 다른 각도로 본다면 다큐, 비디오아트, 액션, SF와 스릴러, 느와르 등의 잡다한 장르가 거칠게 통섭하는, 뤽 베송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소개하는 작품이다. 또한, <제5원소>에 비해 <루시>는 관객을 그다지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작품이다.


뤽 베송 작품의 대체적인 특징은 ‘창조적 파괴’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루시>는 마치 뤽 베송이 “나의 예술세계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며 직접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건방지고 괘씸한 영화다. ‘창조적 파괴’ 정신을 오해하게 되면 잘 나가다가 막판에 분탕질 하는, 어이없는 갱판짓으로 보일 수 있다. 잘 그려놓은 캔버스를 난도질 하는 환쟁이나, 잘 구워진 그릇을 산산이 깨부수는 미친 도공처럼… 참고로 한국의 감독 중에 창조적 파괴를 일삼는 자는 김기덕이 있다.



“존재는 시간 속에만 주어져 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대작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의 핵심 명제는 “존재는 시간 속에만 주어져 있다”는 것. 뤽 베송의 <루시>에는 이와 똑같은 대사가 루시(스칼렛 요한슨)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시간을 벗어난 존재란 존재할 수 없다!” 현존재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가 속해 있는 삶의 세계에 내던져진 ‘세계 내 존재’라는 실존철학이 영화 <루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때문에 <루시>는 상당히 철학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난해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별 생각 없이 액션과 비주얼을 즐기고자 했다면 무진장 따분해질 수 있는 영화다. 아무튼 <루시>는 관객을 뤽 베송의 개똥철학 세계에 내던지는 발칙한 영화다.


하이데거는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떠맡아 주체성을 갖고, 응전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체성은 니체의 ‘초인’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영화 주인공 ‘루시’는 세계에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이면서도, 뇌의 사용량을 100% 끌어올려 초인에 이르는 ‘실존적 주체’로 그려진다. 실존적 주체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투쟁하며, 완성을 지향하는 존재다. 실존의 처절한 부대낌에 신(神)이란 허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영화 <루시>는 무신론자의 작품이다. 나를 찾는 실존주의적 여정 속에 신이란 허상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루시>는 지적설계론(신이 우주를 창조)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작품일 수 있다. 뤽 베송이 생각하는 우주는 빅터 J. 스텐저의 <신 없는 우주>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거부할 수 있는 ‘뇌’ = ‘자유의지’


한편, 루시에 담겨진 실존성과 합리주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코드를 차용하고 있다. 요컨대,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영화 속에 응축돼 있다. <루시>에서 ‘노먼’이라는 교수를 통해서 세포분열 이야기가 나온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즉 자기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기계(운반자, 세포)를 스스로 축조한다고 설명한다. 번식이든 그 무엇의 수단을 통해서든 이기적 유전자는 영원하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이다.”, “보편적 사랑이나 종 전체의 번영과 같은 것은 진화적으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도킨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뇌는 우리 유전자의 명령에 반항할 수 있을 만큼 유전자로부터 떨어져 있고 독립적이다. 우리가 피임법을 사용하는 것도 작은 반역이다. 우리가 큰 규모의 반역 역시 꾀하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숙명적 사실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동의) 가치, 또는 다양한 창조적 행위를 구현할 수 있다.


주인공 루시야말로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반역하며, 뇌의 기능(자유의지)을 100% 구현하는 최고의 반란자다. 그 반역행위를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떠맡아 유전자의 명령(유전자 결정론)을 뛰어넘어 초인의 경지까지 확장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하는 실존적 도전이다. ‘나’라는 존재는 유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찮은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생(生)을 개척하는 ‘삶의 지배자’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 세상에 내던져진 나, 과연 나는 유전자의 노예인가, 진화하는 실존적 주체인가? 뤽 베송의 <루시>는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고편]


루시 (2014)

Lucy 
7.2
감독
뤽 베송
출연
스칼렛 요한슨, 최민식, 모건 프리먼
정보
액션 | 미국, 프랑스 | 90 분 | 2014-09-03
글쓴이 평점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