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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세상과 정의로운 폭력… ‘더 이퀄라이저’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4. 12. 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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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퀄라이저 (2015)

The Equalizer 
7.9
감독
안톤 후쿠아
출연
덴젤 워싱턴,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마튼 초카스, 데이빗 하버, 헤일리 베넷
정보
액션, 스릴러 | 미국 | 132 분 | 2015-01-29
글쓴이 평점  

최근 봤던 액션 스릴러 중 단연 최고의 작품.


줄거리만 들으면 자칫 시시콜콜한 할리우드판 ‘아저씨’로 오해할 소지도 있다. 하지만 극도의 긴장감과 폭발하는 액션, 그러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는 세련된 절제력은 ‘더 이퀄라이저’가 결코 허접한 액션물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CF영상에 버금가는 감각적이고 압축된 표현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전개는 전적으로 독창적인 연출력의 결과이다. ‘더 이퀄라이저’는 이른바 각(앵글)을 아는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이다. 무엇보다 덴젤 워싱턴(로버트 맥콜 역)의 무게감 있는 연기력은 작품의 정점을 찍는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평가된다. 

‘더 이퀄라이저’를 뤽 베송의 ‘레옹’(Leon, 1994)과 비교할 때,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처럼 ‘테리’(클로이 모레츠)도 상처받은 존재라는 점에선 일맥상통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테리는 마틸다만큼 순진무구 또는 순수함을 의미하진 않는 듯하다. 콜걸로 일하는 테리는 악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진 약한 존재를 상징할 뿐이다. 


물론, 영화에서 테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장강도 앞에 속수무책인 마트 여종업원, 마피아 앞에서 죽음의 공포에 치를 떠는 테리 동료, 등쳐먹는 부패한 형사에게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힘없는 자영업자… 등 영화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맹수 앞에 노출된 정글 속 초식동물보다 비참한 모습으로 숨죽이며 살아간다.

전직 특수요원 로버트 맥콜은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의 질서를 파괴 또는 조정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폭력’에 대한 담론을 진중하게 던지고 있다. 인자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로버트의 얼굴은 폭력을 휘두를 때 미동조차 하지 않는 냉혹한 응징자로 그려진다. 고통과 슬픔 앞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덴젤 워싱턴의 깊이 있는 연기는 ‘분노의 응결체’를 보는 듯하다. 


반면, 무참히 악당들을 죽이는 와중에도 로버트는 항상 시간을 체크하고 확인하는 편집증적 자세를 보인다. 아마도 시간 내에 작전을 완수해야 하는 옛 직업의 습관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해야 하고 무질서를 조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강박증세의 다른 형태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살벌한 마피아로 등장하는 마튼 초카스와 덴젤 워싱턴의 싸움은 물과 불의 대결마냥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그 숨 막히는 싸움 속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는 로망일 수 있다. 두 존재의 대결은 아노미와 질서, 폭력과 평화, 불안과 안정, 불의와 정의… 등의 대치로 해석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이러한 정직한 도식이나 이분법이 꼭 들어맞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레옹(장 르노)과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에서 차태식(원빈)이 소녀와 시종일관 함께하며, 스토리 전개과정에서 소녀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것에 비해 ‘더 이퀄라이저’에서 소녀는 로버트가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내는 뇌관역할을 할 뿐이다. 이후엔 무대에서 퇴장했다가 결말 부분에서 겨우 등장한다. 로버트가 아저씨처럼 수호천사의 역할이 아니라는 의미다. 


로버트의 폭력은 어쩌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정의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 이퀄라이저’는 세상 앞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힘없는 군상들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스터베이션마저 없다면 분노조절장애에 빠지거나 심각한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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