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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판옵티콘, ‘프라이버시’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5. 1. 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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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홀’의 재발견


개인적으로, 에릭 바나(Eric Bana)가 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결정적인 발판을 제공한 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다지 비중 있는 배역은 아니었지만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소유한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존재감은 <트로이>에서 제대로 발휘됐고, 외유내강의 훈남 캐릭터로 자리 잡은 듯하다.



영화 <프라이버시>에서 폭탄테러 용의자를 변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 에릭 바나(마틴 역)의 굵직한 연기만큼이나 눈에 띈 부분은 그동안 대부분의 작품에서 조연으로만 활약한 레베카 홀(Rebecca Hall)의 재발견일지도 모르겠다. 



올리버 파커 감독의 <도리안 그레이>에서 레베카 홀의 깊이 있는 눈빛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프라이버시>에서 맡은 특별변호인(클로디아 역) 역할은 맞춤옷처럼 아주 잘 맞은 배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리한 눈빛과 지적인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그녀의 표정이 진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어긋나는 공익과 권력의 투명성


<프라이버시>는 런던 버로우 마켓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의 본질적 책임이 영국 정보기관인 MI5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 진실을 덮기 위해 정보기관이 변호인들은 물론 용의자로 체포된 터키인마저 제거하는 비열한 작태를 고발하고 있다. 


특히,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CCTV 등의 보안시스템이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죄인처럼 감시하는 디지털 ‘판옵티콘’과 다름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원제 <closed circuit, 폐쇄회로·CCTV>가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영국 정보기관의 부조리는 테러용의자를 변호하는 이들마저 살해하고자 하는 정보요원이 내뱉는 말에서 절정에 이른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너희들이 안락하게 살며 게으름도 필 수 있는 건 음지에서 더러운 일들을 개처럼 도맡아 하는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 


진실을 파헤치는 자들을 제거하고 정부의 실수를 덮는 게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는 정보기관의 견강부회 논리는 전체 국가기관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듯하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고 평가받는 영국비밀정보부의 추악한 행태가 영국에만 적용되겠는가. <프라이버시>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겐 대선 댓글사건이라는 논픽션이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가들의 헌법에도 이러한 조항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공익을 위해서라면 투명성은 때에 따라 무시할 수 있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공공의 선을 위해 투명성이 무시되기 보단 권력자, 또는 정부기관이라는 존재 자체를 위해 투명성이 무시되고 소수의 인권이 짓밟힌 적이 더 많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닌 애국애족이라는 명분으로 ‘국가를 위한 국민’이라는 논리가 너무 자주 통용되는 현실이 이제는 신물 날 때가 되지 않았나. 



프라이버시 (2014)

Closed Circuit 
6.9
감독
존 크로울리
출연
에릭 바나, 레베카 홀, 시아란 힌즈, 짐 브로드벤트, 리즈 아메드
정보
스릴러 | 영국, 미국 | 96 분 |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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