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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착각했던 영화 ‘버드맨’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5. 2. 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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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환상을 창조하고, 환상은 또 다른 현실의 문을 연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봤다. 단지 포스터만 보고 SF영화인줄 알았다. 과거에 슈퍼 히어로(버드맨)였던 (늙은) 아저씨가 다시 환골탈태해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세상을 구하는 스토리로 착각했다. 심지어 영화 초반부까지도 그렇게 생각했고, 엠마 스톤이 (역겨운) 김치냄새를 들먹이며 짜증을 낼 때도 “호~ 김치라는 단어도 나오네” 하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유일한 SF장면은 후반부, 주인공 리건 톰슨(배우: 마이클 키튼)의 환상 속에서 짧고 굵게 보여줄 뿐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조리 올라간 후 생각해보니, 리건 톰슨의 삶 자체가 어쩌면 SF(공상과학)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인생은 예상할 수 없고,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을 뿐더러 상상 외의 기막힌 사건들이 현실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에 SF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버드맨>은 과거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히어로 영화에서 ‘버드맨’을 연기해 전성기를 누린 배우 리건 톰슨의 이야기다. 한물간 슈퍼스타들이 그러하듯 톰슨은 똥배가 튀어나오고 주름이 자글자글할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개나 소나 다 하는 SNS계정 하나 없는 전형적인 꼰대의 표본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톰슨이 브로드웨이 연극판에서 재기하는 역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영화 속 무대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카메라 장난질에 있어 보인다. 원 컷이 아닌 듯 하면도 원 컷 같고, 시간적으로 그다지 긴 롱테이크 촬영이 아닌 것 같은데 스크린 속 몽타주들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끊임없이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버드맨>의 범상치 않은 카메라 기법 덕분에 관객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창조된 공간을 접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숏의 결합으로 인해 배우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함께 호흡하게 된다. 


주인공 톰슨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의 손에 이끌려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비트를 온 몸으로 느끼며 긴 복도를 뒤따라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 상판대기 바로 앞에서 침 튀기며 쏟아져 나오는 긴 대사를 들어야만 한다. <버드맨>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얼핏 보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쫒기는 듯한 강박증을 보이고 실존 배우들을 조롱하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현학적인 예술담론을 천연덕스레 주고받는다.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무엇보다 버드맨의 독특성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점에 있어 보인다. 물론 두 눈 부릅뜨고 보면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수야 있겠지만 스토리의 맥락을 이해하고 주인공의 정서를 공감하는 데에 그러한 분별력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현실이 환상(꿈)을 만들고, 환상은 또 다른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톰슨은 연극 무대에서 사실주의를 극대화시키는 행동을 극적으로 선보인다. 영화 속 까칠한 평론가 할머니는 진짜 피를 보여준 톰슨의 무대를 극찬한다. 


뜬금없이 버드맨을 보며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가 연상됐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 유쾌하오.」로 시작하는 <날개>의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버드맨 (2015)

Birdman 
7.5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출연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19 분 |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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