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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리블러… 다중인격? 때론 변명으로 들릴 뿐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5. 3. 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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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려”

“혼란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도 못하는 질서를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개념…”


더 스크리블러(The Scribbler)는 요즘 TV드라마에서도 유행하는 다중인격체를 다루고 있다. 의학용어로는 ‘해리장애’로 불리는 것 같다. 영화에서 주인공 ‘수키’(배우: 케이티 캐시디)는 ‘다중인격장애’ 또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이다. 한마디로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또는 너무 잘 아는) 내가 너무 많은’ 존재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때때로 인위적으로 수많은 나를 창조하기도 한다. 내 속에 몇 명이 있든 나와 동떨어진 존재는 결코 없으며, 차라리 내 의식(욕망)의 조종을 받는 ‘아바타’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가식적인 다중인격은 영화 <프라이멀 피어>에서 아론 스탬플러(배우: 에드워드 노튼)가 모범적으로 보여줬다. 가끔은 다중인격이 나의 악행이나 실수를 변호하는 면죄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아(ego) 속 욕망(id)을 발현한 본질적 인격체를 가짜라고 우기는 가증스런 자들이 종종 뉴스 사건사고에 등장한다. 술 취했기 때문에, 부조리한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그 녀석이 인격모독해서, 상대방이 먼저 자극해서… 내 안에 있지 않은, 가상의 내가 저지른 행위라는 것이다.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수키는 “가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먼저 아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한 면에서 나는 다중인격장애가 우울증만큼 흔한 증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각자 내면에 잠든 욕망을 그 누구보다 잘 체득하고 있다. 


수키는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자기기만’ 속에서 살아야 편하기 때문에 스스로 속고 속이는 악순환이 지속될 뿐이다. 진짜 나를 찾고자 한다면, 나의 욕망 앞에 솔직해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아무튼 영화에서 케이티 캐시디(Katie Cassidy)의 거친 섹시함이 돋보였다. 의사가 건넨 전기충격기로 자아를 하나씩 죽이는 수키의 그로테스크한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정신병자들의 아파트(주니퍼 타워) 또한 캐릭터들의 의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미장센이었다.



다만, 진짜 나를 찾으면 니체의 초인처럼 잠들어 있는 무의식과 잠재능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SF적 메시지는 너무 이상적인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가 어설픈 <판타스틱 4> 또는 <더 엑스맨>으로 전락한 것 같아 당혹스럽기도 했다. 


최근에 본 <버드맨>이 연상될 만큼 절제력 있는 연출력과 개성 있는 카메라 기법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더 스크리블러

The Scribbler 
5.5
감독
존 수츠
출연
케이티 캐시디, 가렛 딜라헌트, 미셸 트라첸버그, 마이클 임페리올리, 지나 거손
정보
미스터리, SF | 미국 | 88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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