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바이어던’ 속에 숨은 은밀한 혁명론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5. 4. 19. 23:07

본문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정치철학에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을 해석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정치권력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는 당시 카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으로 거론된다. 홉스는 이른바 정교분리, 종교를 국가권력의 하부구조로 둠으로써 절대주권의 확립을 지향했다. 홉스는 로크와 더불어 사회계약론, 즉 근대정치학의 이론을 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리바이어던은 수많은 개인(인민)들의 자연권을 양도받은 군주(절대권력), 또는 국가를 의미한다. 국가는 전체 인민들이 모인 산술적·기계적 집합체(조합)가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거대 괴물 ‘리바이어던’처럼 제3의 생명체와 같다. 최소한 홉스에게 있어, 국가로부터 자연권을 다시 거둬들이긴 불가능하며, 평화와 안전을 위해선 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홉스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와 더불어 독재정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악명을 안고 있는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어쩌면 토마스 홉스가 그리던 이상적인 ‘리바이어던’은 세상에 없거나 앙상한 뼈대만 남은 고래 뼈처럼 화석으로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리바이어던’에 그려진 2개의 궤적


평범한 일상에서 오묘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감독의 영화 ‘리바이어던’에서 비치는 부조리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타원을 그리며 공전하고 있다. 작은 타원은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영화 속에서의 자연상태는 일상에서 겪는 미시적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가족 대대로 살아온 땅을 부패한 시장 ‘바딤’에게 뺏길 위기에 놓인 ‘콜랴’, 그의 아내와 아들, 이들을 돕고자 모스크바에서 달려온 변호사 친구 ‘디마’, 그리고 가족 같은 이웃들. 


▲영화에서 판사가 랩퍼 뺨치듯 속사포처럼 판결문을 읽는 장면은 권력의 명령을 감히 거부한 인민들을 채찍질 하는 고문마냥 몹시 따갑다.  


이들은 거대한 부조리 덩어리를 상징하는 바딤 시장에 대항하는 안티-리바이어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한 번 양도한 자연권은 두 번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해야 하거나 가까스로 탈출(이탈)할 수 있을지언정 리바이어던을 결코 해체시킬 순 없다. 이러한 점에서 홉스의 권력 법칙은 열역학 제2법칙 또는 엔트로피의 법칙과 유사해 보인다. 한번 방출(양도)된 에너지(자연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직 ‘관망’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에서 리바이어던의 현실은 몹시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보드카처럼 지독한 부조리 


바딤 시장과 콜랴 및 변호사의 관계(대결)가 거시적 부조리라면 작은 궤의 부조리는 콜랴 가족들을 비롯한 변호사 디마, 이웃들 간의 다층적인 불신이다. 불신은 중첩되면서 거시적 부조리보다 더 큰 비극을 낳는다. 마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각 존재들의 얽히고설킨 감정과 왜곡이 혼돈의 아노미(anomie) 상태로 확대·발전된다. 사회적 가치관과 규범이 붕괴돼 나타나는 개인의 불안정한 상태 ‘아노미’는 개인보다는 사회적 원인이 더욱 크다. 그런 점에서 리바이어던에 나타나는 크고 작은 두 개의 궤적은 독립된 별개가 아니라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처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나름대로 법적 테두리에서 엄포를 놓고자 했던 바딤 시장을 결정적으로 자극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종교인(신부)이었다. 리바이어던은 대놓고 정치와 종교의 야합을 비꼬고 있다.


무력함 속에서 혁명은 태동한다


리바이어던은 러시아라는 특정 지역뿐만 아니라 그 유형(민주·독재)에 상관없이 ‘국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또, 영화에서 부패한 시장 바딤이 러시아 정교회 신부로부터 무언의 팁(Tip)을 얻고 힘없는 시민들에게 광폭한 짓을 벌이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종교와 정치권력이 야합하고 있는 또 다른 부조리한 현실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흔히들 리바이어던을 무너트리는 방법 중 하나로 ‘혁명’을 얘기한다. 물론 혁명이 또 다른 리바이어던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혁명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하며 자꾸 꺼내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영화 <리바이어던>은 우울하고 절망적이며 지루할 정도로 지극히 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혁명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드리워져 있다고 믿고 싶은 영화이다. 무기력한 허무 속에서 피어나는 게 진짜 혁명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처럼…



리바이어던 (2015)

Leviathan 
8.2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출연
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 옐레나 랴도바, 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 로만 마드야노프, 안나 우코로바
정보
드라마, 가족 | 러시아 | 140 분 | 2015-03-19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