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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런 진실, ‘국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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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06.2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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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믿습니까? 아멘!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당시 해군 대령이었던 지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진짜 북한의 소행인가요?”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북한이 아니면 누구겠어?” 그 말 속에는 ‘설마 국가가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겠냐!’는 강한 믿음이 묻어있었다. 심지어 그 믿음이 신앙의 경지에 이른 자들도 꽤 있다. 가끔은 ‘아멘’이 나올 정도다. 나는 국가에 의심을 품고 있는 반국가주의자일까? 한편으론, 우리는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하는 우를 종종 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전공시간, 교수님이 학생들을 한명씩 지목하며 질문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99.9%는 “영토, 국민, 주권으로 구성된 공동체”라는 막스 베버의 ‘국민(민족)국가론’에 기반한 답변 일색이었다. 뭔가 개성 있는 답변을 해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위한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라고 생각합니다.…(침묵) 칼 마르크스가 그러던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객기 어린 그 답변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최강소수의 최대행복


근대국가의 정당성을 구축하는 수많은 논리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제레미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일 것 같다. 과연 대한민국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리주의 원리가 적용되는 국가인가? 도현신의 <국가의 배신>을 읽다보면 혹시 우리는 ‘최강소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오늘 인터넷뉴스에서 수많은 청춘들이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갈 계획을 품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지금의 현실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도무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비전을 찾아 떠나는 것이 현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배신>은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이승만 정권의 배신 행각을 까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의 폭압을 지나 YS의 IMF사태, MB의 4대강 삽질, 최근의 세월호 참사 등을 사례로 들며 국가의 무능으로 끝을 맺는다. 국가의 온갖 거짓 행위를 ‘배신’, ‘폭력’, ‘무능’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나눠 시대별로 대표적인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 아주 버라이어티한 국가의 배신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국가의 배신>이 주장하고자 한 것은 모두가 반국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닐 것이다. 다만, 좀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보다 건설적인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해석된다. 좋은 국가란 원래부터 존재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노력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배신 - 8점
도현신 지음/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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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22:34 신고
    국가 정책을 평가할 때에도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무조건 비판하는 게 옳은 태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건은 정부가 잘못한 것이 맞다고 생각되어요. 보수진영이 종북좌빨 얘기하면서 특히 중요시했던 가치가 사실 국가의 치안과 국민의 안전 이었죠. 물론 그런 사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안전 문제가 우선순위 따져봤을때 중요한 건 당연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