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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후 한국의 아나키즘

My Text/아나키즘

by 아나키안 2015.07.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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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이후 동아시아 3국의 사상계의 지형은 비슷하였다. 한국에도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1880년대부터 아나키즘을 비롯한 사회주의가 소개되어 개인적 차원에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을 전후하여 한국 사상계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던 사회진화론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을 비롯한 사회주의가 민족주의, 대동사상과 함께 민족해방운동 이념으로 수용되었다. 아나키즘 수용은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내세운 명분론과 대동사상 및 사회개조/세계개조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러시아 혁명, 3.1운동의 발생 등 차례의 계기를 맞아 점차 확산되어 갔다. 


한말에는 온갖 조류의 사회주의가 소개되었지만, 192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주의계의 주류는 아나키즘이었다. 그 후 사회주의계는 아나키스트계와 공산주의계로 분화되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정치운동과 정치혁명을 부정하고 사회혁명을 강조하였다. 이들의 아나키스트 사회 건설 방법론은 테러적 직접행동론(재중국 아나키스트 중심으로, 의열단: 신채호), 혁명근거지건설론(크로포트킨 근거, 이회영의 신흥무관학교 등), 경제적 직접행동론과 일상투쟁론(아나코 생디칼리스트, 각종 태업, 노동자선동 등) 등이 있었다.


20세기 아나키즘이 제3의 사상으로서의 위상을 상실케 된 내적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나키즘이 지닌 관념성이다. 사상의 순수성에 치우친 나머지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 자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둘째, 아나키즘의 조직론의 한계이다. 사상의 민중성을 강요하지만 그 힘을 조직화하는데 등한시 했다. 

셋째, 국가와 정부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사상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출처: 이호룡, 『한국의 아나키즘』, 지식산업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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