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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잡는 아나키 미학, 『아나키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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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07.2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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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와 예술: 파리코뮌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까지』, 앨런 앤틀리프 지음/신혜경 역, 이학사, 2015.


아나키 미학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


대부분의 미학 관련 서적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에 현학적 수사가 남발되는 경우가 많아 쉽게 읽히면서 이해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앨런 앤틀리프(Allan Antliff)가 쓰고 신혜경이 번역한 <아나키와 예술, Anarchy and Art> 역시 아나키(Anarchy)가 상징하는 대중적 코드와는 달리 조금은 난해하고 엘리트즘적이며 매우 편협하다는 느낌마저 받기도 했다. 아나키 예술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스펙트럼의 공간을 너무 협소하게 봐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제 ‘파리코뮌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까지’가 시사하듯 19세기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의 아나키 미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중간의 러시아(소비에트)의 아나키 예술은 감흥 없는 사은품에 불과하다. 상당량의 챕터가 미국을 주무대로 하고 있으며, 그 대상은 미술 분야에 치중하고 있다. 


‘Outlaw Printmakers(무법자 판화가)’의 일원이었던 리처드 모크(Richard Mock)의 작품 <스트라이크 지대 Strike Zone>가 표지 디자인으로 나와 있어 언론,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대중예술 분야에서의 아나키 미학을 발견하고 기술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진 못해 실망스럽다.


아카데믹 수준에서 끝나버린 아나키 미학 분석이 진정으로 아나키즘 미학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맨 첫 장이었다. 1871년 파리코뮌 시기 귀스타브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벌인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과 에밀 졸라(Emile Zola)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스타일(독창성)을 통한 자유’를 강조한 졸라와 사회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비판을 통한 자유’를 강조한 프루동 간의 논쟁은 아나키즘 미학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이외에도 △산업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모든 걸 빼앗긴 방랑자들의 모습을 그린 신인상주의 화파 △아방가르드 예술사조의 대표로 꼽히는 다다(dadaism)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구소련 내에서의 예술적 투쟁과정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동성애와 관련한 섹슈얼리티 해방담론 △60년대 이피(yippie)들을 중심으로 하는 저항문화 △냉전 종식 이후 90년대부터 대두된 마르크스주의와 차별화된 아나키즘적 반전주의, 생태주의 등을 관련 미술가들을 사례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아나키즘이라는 정치, 사회, 문화적 코드가 작품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갔는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보다는 예술가의 신변잡기와 사조(思潮)적 비평에 매몰된 느낌을 받는다. 


특히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말라테스타 등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투쟁가들의 사상과 실천보다는 막스 슈티르너 등의 극단적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철학자들의 (더구나) 단편적 언어를 배경으로 롯첸코(Aleksandr Rodchenko),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등의 예술세계를 규정하는 게 약간은 심기불편하다. 또한 펑크록 밴드 크래스(Crass)와 삽화가 지 보처(Gee Vaucher)의 예술세계를 논하며 펑크록의 기반을 다진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 가치를 “떠들썩한 선전 활동”, “상업 음반사와의 계약에 열심”, “반자본주의 원칙에 대한 배신행위” 등을 들먹이며 평가절하 하는 것은 오히려 융통성 없는 극단적인 매도라 여겨진다.


1장에서 프루동과 졸라의 ‘형식과 내용’ 논쟁을 얘기하며 양자의 변증법적인 융합과 발전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아나키즘 미학에 대한 스케일 규정을 임의대로, 더구나 너무나 협소한 방식으로 한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 무엇보다 아나키 미학의 미래 비전과 전망이 부재한 채 로버트 던컨의 뜬구름 잡는 아포리즘적 선언으로 치장하고, 느닷없이 투쟁심을 고양하며 마지막장을 마무리하는 옮긴이의 말은 심히 부담스럽다.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느낌. 결국 아나키 미학을 컬트스럽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인상 깊은 구절: 
“우리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가 특혜이자 불의이고,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굴종이자 야만이라고 확신한다.” 
: 미하일 바쿠닌(서문 16페이지)

   

아나키와 예술 - 4점
앨런 앤틀리프 지음, 신혜경 옮김/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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