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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명작의 아우라, ‘해저 2만리’

My Text/Cine

by 아나키안 2015.08.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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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저 2만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 1954)

△감독: 리처드 플레이셔


1954년에 개봉한 영화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를 보며 명작의 아우라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영화가 명작이라는 말이 아니라 원작 소설이 명작이라는 의미다. 고전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끄집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도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말을 살았던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무한 상상력은 《해저 2만리》뿐만 아니라 《지구속 여행》에서도 소름끼칠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특히 《해저 2만리》가 주목받는 건 전기, 잠수함 등의 과학적 선견지명뿐만 아니라 당시 지식인의 사회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신비적 캐릭터로 나오는 네모선장, 당대 아카데미 지식인을 대표하는 듯한 아로낙스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누군가 실연을 당하거나 좌절과 절망, 실패를 겪을 때 ‘잠수를 탄다’고 하는데 《해저 2만리》의 주인공 ‘네모선장’과 선원들도 인간세상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고 분노와 환멸을 느껴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한 은둔자처럼 보인다. 그가 이끄는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상처 입은 영혼들의 안식처이자 최후의 도피처이다. 노틸러스호는 마치 무덤처럼 안락하고 세속을 벗어난 깊은 산사(山寺)나 오래된 성당처럼 성스럽기까지 하다.  


네드 랜드가 주인공인 해저 2만리?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이며, 명작 《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 1956》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역을 맡는 등 할리우드의 전설 중 한명으로 꼽히는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가 감칠맛 내는 ‘네드 랜드’로 출연했고, 《사막의 여우 롬멜, 1951》에서 비운의 주인공 ‘롬멜’을 맡았던 제임스 메이슨(James Mason)이 네모선장으로 나온다. 원작에 비해 영화는 커크 더글라스의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리처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의 《해저 2만리》는 같은 해 제작된 마리오 카메리니(Mario Camerini) 감독의 《율리시즈, Ulisse Ulysses, 1954, 이탈리아》만큼 정제된 기술력과 다이내믹한 연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생생한 묘사력을 갖고 있는 원작의 뛰어난 텍스트를 영상으로 재현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원작에 내포된 작가의 세계관을 충분히 소화하진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에서 네모선장은 미치광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폐쇄적이고 의구심이 많으며 사회에 대한 적개심도 무척 큰 캐릭터로 그려진다. 네모선장의 안티테제로 보일 만큼 상당히 개방적이고 지적 호기심도 가득한 아로낙스 박사는 사람을 신뢰하고 휴머니즘적 정서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네모선장에 비해 낙천적이다. 네모선장이 전후(戰後) 유럽인의 우울한 정서를 보유하고 있다면, 네드 랜드와 아로낙스 박사는 경쾌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한편으론 원작 자체가 제국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찌됐든 영화는 네모선장 vs 네드 랜드, 네모선장 vs 아로낙스, 노틸러스호 vs 해군전함 등 양자의 대립구도만 어지럽게 나열할 뿐 이를 뛰어넘는 변증법적 발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으며, 원작처럼 미완성의 여운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원작에 드러난 네모선장의 아니키스트적 면모, 개인주의적 지향성, 세상을 등졌으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한 모순적 패턴을 간과했다. 네모선장에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팔방미인 커크 더글라스의 스타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이름도 ‘노틸러스’라고 한다. 과학적 상상력에 기폭제 역할을 한 쥘 베른의 작품들은 로봇물의 시조(始祖) 역할을 한 ‘아이작 아시모프’만큼이나 큰 영감을 불어 넣었으며, 각종 영화, 애니메이션에도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적(!)으로 재해석해 더욱 세련된 컨셉으로 탄생시킨 노틸러스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새로 업그레이드된 노틸러스호를 구경하고 싶다. 


[해저 2만리 영상]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 
9.7
감독
리처드 플레이셔
출연
커크 더글라스, 제임스 메이슨, 폴 루카스, 피터 로리, 로버트 J. 윌크
정보
어드벤처, 가족, SF | 미국 | 127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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