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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갈망했던 정치는… ‘쇼에게 세상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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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 8. 24.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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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에게 세상을 묻다: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G. 버나드 쇼  지음, 김일기·김지연 옮김, TENDEDERO, 2012년.


통섭의 원조, 버나드 쇼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원제: 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을 1944년에 출간됐다. 여기서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논하는 세상은 사회과학적이며 그 중에서도 지극히 정치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가장 기초적인 재산이자 권력수단인 ‘토지’의 독과점 문제에서 시작하는 그의 텍스트는 왼쪽의 마르크스사상과 아나키즘에서 맨 오른쪽의 국가주의,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투과해 정제된 격언들의 대행진이다. 


그 대행진은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는 하이에크식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제시스템에 기반한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는 “사회주의가 없는 곳에서 자유는 노예나 빈민이 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라고 말하듯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그의 정치철학적 비전은 생활양식(라이프 스타일)의 개인주의와 생산양식의 사회주의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최종 지향점은 동향 출신인 ‘오스카 와일드’와 엇비슷하다. 


거의 백세인생을 영위한 쇼는 오스카 와일드(1854~1900)처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와일드보다 무려 50여년(94세, 1856~1950)을 더 살았으며, 자신보다 50여년 늦게 태어난 아나키스트 계열의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1903~1950)과 같은 해에 사망했다. 그는 노벨문학상과 더불어 영화 《피그말리온》 원작자로서 오스카상을 거머쥔 행운아이기도 하다. 광기로 얼룩진 식민시대와 1·2차 세계대전을 두루 겪었고, 유럽의 산업화와 자본주의 팽창,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혁명과 반동의 소용돌이에서 일생을 보냈다. 19세기와 20세기를 보낸 버나드 쇼는 이 책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교육, 복지 등 인문사회는 물론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웬만한 주제들을 높은 수준으로 ‘통섭’하는 놀라운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쇼의 텍스트에서 한국사회를 엿본다


오스카 와일드만큼이나 그의 텍스트는 천부적인 촌철살인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직을 세습하자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쇼의 정치경제적 분석은 비수만큼 날카롭다. 특히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에 대한 분석은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중앙의회는 금권정치에, 지방의회는 가난(수학자들은 ‘마이너스 금권정치’라고 부른다)에 지배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중앙을 떠받치느라 파탄이 나고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지방자치체에 대한 경고를 이미 70여년 전에 하고 있는 것.


그는 정치의식 함양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학교는 감옥이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학교를 일찍 때려치운 쇼이지만 학교의 1차적인 목적을 “가난과 착취, 가정폭력, 무관심 등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또, 종교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율성도 강조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냉혹한 자본주의 논리가 학교에까지 침투하고 있으며 사학비리가 일상사가 돼버린 한국의 교육제도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다. 교육제도는 정치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된다. “특정 가문 출신의 무책임한 전제군주라든가, 설립취지가 무색하게도 금권정치를 떠받치며 교육제도를 좌우하는 비싼 사립학교가 그러한 권위를 행사한다면 전제정치로 치달을 것이다.”, “정직하지 못한 정부 아래서 정직한 학교가 허용될 리 없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고 말한 클라우제비츠처럼 쇼 역시 전쟁을 정치의 수단으로 보고 있지만 필요악으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군주나 정치인들이 민중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싶다면, 전쟁만 일으키면 된다. 어느 개혁가가 제아무리 큰 소리로 예수는 평화의 왕이라 칭송한다 해도, 단 한 발의 대포알만 발사되면 찬송가는 ‘주 예수 우리 구하려 큰 싸움하시니’로 바뀐다. 사람들은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 말고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바라보는 그의 혜안은 칼 마르크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 “과잉생산은 자본주의의 저주이며, 그 주요원인은 경쟁적인 상거래다.” 결국 불황의 악순환을 지속케 하고, 전쟁으로까지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자본이 수익률이 2.5퍼센트로 떨어지면 전쟁이 발발한다. 자본은 죽음과 파괴를 필요로 하므로 인간의 타고난 호전성을 작동시킨다.”


“우리가 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쇼는 정치인의 핵심 자질로 ‘과학적 인본주의’를 내세운다. 독선적 이념, 도그마,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합리적 이성’과 인간의 가치(존엄성)를 최우선으로 놓은 휴머니즘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와 관련해 쇼는 민중주의, 인민주의보다는 차라리 엘리트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어리석은 자들을 다스리려면 그들의 어리석음에 기대야지, 그들이 갖고 있지도 않은 지혜에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은 낭만적인 환상을 꿰뚫어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그와 같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웅주의 사관은 아니다. “영웅이 잘했다고 하는 일들을 보면 정부가 조금만 유능하거나 합리적이었어도 영웅 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일들이다.”


예술, 미학교육에 대한 접근에 있어, 부(富)의 독점만큼이나 문화예술도 독점돼 있다는 의견은 무척이나 탁월해 보인다. “지금의 노동자들은 독한 술과 담배에 절어 가난의 슬픔을 잊거나 벼락부자의 꿈에 매달려 경마와 개 경주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그도 아니면 숨기고 쉬쉬해야 한다고 배운 섹스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재미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놀거리’라고 하면 음주, 도박, 간음이나 떠올리게 되다 보니 노동자 계급은 일종의 조건반사처럼 즐거움을 죄악, 타락과 동일시하게 되었고 예술의 즐거움을 외설, 부도덕과 연관 짓는 습성이 생겼다.”


무엇보다 생물학, 유전학에 기반해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쇼의 논변은 인상 깊다. 한편으론, 쇼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당시의 유럽과 지금의 한국사회는 기묘하리만큼 닮았다. 쇼가 묘사하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사회의 풍경과 부조리한 사회현상이 현재 우리의 일상과 절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사법제도(사형존속문제), 교육과 의료서비스, 양심적 병역거부, 정당정치와 선거제도, 소득불균형 심화, 여가문제, 종교의 세속화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광기의 19~20세기를 겪은 철학자의 긴 유서


지금에 와서 쇼의 철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정치를 정치로만, 경제를 경제로만, 교육과 예술 등을 그 자체의 영역에서만 보는 협소한 (전문가적) 패러다임을 과감히 해체했다는 것에 있다. 앞서 말했듯, 그의 미래 비전은 ‘경제적 사회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로 압축된다. “모두에게 문화와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소득평등화’를 실현하지 않는 한, 민주공화국은 가짜 위엄으로 치장한 사람들 때문에 부패할 것이다.” 요컨대, 올바른 사회주의 실현이야말로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발전시키며 개인의 자유도 신장하는 필요조건이라는 의견이다.


이 책은 쇼가 말한 것처럼 ‘정치 안내서’이다. 그는 정치가 낭만적인 이상주의를 극복하고 명실상부 사회생활의 과학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장르별 분야별로 얽히고설킨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재치 넘치는 글귀를 새기도록 했다. 책 속에는 죽음을 가볍게 받아넘기는 듯한 장난기도 섞여있지만, 가장 뜨거웠던 유럽의 격동기를 보낸 유러피언이 세상 사람들에게 남긴 아주 긴 유서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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