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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반항자, 카뮈의 ‘시지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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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10.06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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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 책세상. 


부조리 세계와 자살의 유혹… 시지프는 반항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부조리의 개념을 추론하는 첫 장 첫 구절에 대뜸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논리를 펼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초장부터 자살의 화두를 던진 카뮈는 ‘희망의 바다(환상세계=비약의 세계)’와 ‘죽음의 사막(현실세계=부조리 세계)’을 거쳐 신의 노여움을 산 덕분에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의 투쟁으로 부조리에 관한 긴 여정(텍스트)을 마무리한다.  


‘부조리’와 ‘반항’의 아이콘,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과 더불어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그의 부조리 철학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어쩌면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이란 애매모호한 수수께끼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어사전은 부조리를 철학적 차원에서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세계 속에 처해 있는 인간의 절망적 한계상황이나 조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상대로 카뮈의 텍스트는 실존철학과 깊은 공범관계를 맺고 있다.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의 철학자들을 비롯해 부조리의 창조물(예술)로서 샤르트르,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등의 작품이 집중 거론된다. 카뮈는 “부조리란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 사이의 대면에서 생겨난다.”고 운을 뗀다. 즉, 서로 대립되는 항이 존재함으로써 부조리가 성립되지만, 자살 또는 죽음은 그 등식을 순식간에 무화(無化)시켜버린다. 죽음은 곧 무의미다. 


인간의 기대심리, 욕망 또는 희망, 비전이나 가치 등의 다양한 긍정적 요소와는 사뭇 다른 현실세계, 그것은 뒤틀림의 세계이며 부조리의 시공간이다. 바위를 힘겹게 밀어내는 시지프처럼, 인간은 부조리라는 피할 수 없는 동반자와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골병 드는 와중에도, 죽음의 그 순간까지! 카뮈는 그 부조리를 일종의 이혼, 낯설음, 시간 속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의 다양한 개념을 통해 기술한다. 


특히, 카뮈가 부조리 세계를 ‘사막’으로 비유할 때쯤이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바윗돌을 힘겹게 굴려 올리는 고독한 시지프와 모래뿐인 황량한 곳이지만 어딘가에 감추고 있는 우물 덕분에 사막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어린왕자는 왠지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그 우물이 상징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신기루는 아닐터. 카뮈가 말하는 열정일지도 모르겠다.    


경험상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문득 찾아오는 권태와 대면할 때, 시간이 흘러 결국 언젠가는 파괴(죽음)될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할 때, 내가 기대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목격하고 나도 모르게 소외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부조리의 감성이 찾아오는 듯하다. 


어쩌면 돈이 곧 신으로 숭상되고, 무한소비를 통해 위로를 받는 지금의 소비 자본주의 체제만큼 부조리한 세계를 대표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지만, 소비야말로 진정한 아편이며 부조리의 악순환이다.  


부조리를 체감(각성)한 후, 부조리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로 자살이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자살은 부조리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기피하거나 거부(부정)하는 꼴이 돼버려 의미가 없다. 한편, 카뮈는 자살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형수를 등장시킨다. 이는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를 연상시킨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나는 오직 살아있을 때만이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후세계(내세)에 대한 (강요된) 희망 역시 도피와 다름없다. 카뮈는 이를 투쟁의 기피, 비약, 철학적 자살 등으로 표현한다. 


시지프처럼, 또는 어린왕자처럼 사막이라는 부조리의 공간에서 버티고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결론이다. 카뮈의 말대로 그 투쟁은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며, 이는 ‘반항’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일시적인 반항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지속적인 반항이다. 


역자(김화영)는 《시지프 신화》에 대한 해설로 반항에 ‘자유’와 ‘열정’을 추가한다. “자신의 삶, 반항, 자유를 느낀다는 것, 그것을 최대한 많이 느낀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며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다.… 주어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소진하겠다는 결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카뮈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명철(명증)한 의식과 반항의 열정이었다. 나는 반항하는 존재인가, 부조리의 톱니바퀴 속으로 회귀하는 자기기만의 존재인가? 흔히 부조리의 담론을 펼칠 때, 사회현상으로서의 거시적인 부조리를 얘기한다. 카뮈의 부조리는 그러한 거대담론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나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는 아르튀르 랭보의 영원한 자기변혁론과 닮아있다.       


카뮈의 철학에 의하면, 부조리에 대한 인식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이문열의 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그해 겨울」 편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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