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중운동의 불편한 진실…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My Text/Book

by 아나키안 2015. 10. 8. 02:40

본문

《맹신자들-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 


“나는 증오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의 《맹신자들》에서 다루는 대상은 ‘종교운동’뿐만 아니라 사회혁명, 민족운동 등 이른바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50년대 초반에 쓰인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시대의 맹신자들’은 주로 공산주의자, 나치주의자, 파시스트, 일본인, 가톨릭교도 등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을 충격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는 집단 IS(이슬람국가)를 보고 있노라면 맹신자들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긍정적인 대중운동이 있고, 부정적인 대중운동이 있을 수 있다. 에릭 호퍼는 옳고 그름을 통한 대중운동 평가가 아닌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생태계, 작동원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는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의 ‘열정’을 지속시키는 도구로써 ‘종교화 기술’을 거론한다. 그 종교화 기술의 핵심은 신념(이념)이나 노선이 아닌 ‘증오’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복하자면 무언가를 파괴하거나 변혁하고자 하는 ‘열정적 증오’가 대중운동의 생명력을 좌우한다. 


아울러 열정적 증오로 쉽게 무장될 수 있는 세력은 다름 아닌 역사의 루저(loser). 즉 좌절의 쓴맛을 본 패배자, 불평분자, 사회부적응자들이다. 요컨대, 대중운동은 개인의 좌절된 희망을 대체한다. 그 희망은 이성적 판단을 넘어 메시아를 고대하는 맹신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결국 맹신자들은 자기희생을 불사하는 피 흘리는 순교자, 광폭한 테러리스트가 될 개연성이 크다.


맹신의 심리,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빈민층의 보수성은 특권층의 보수성만큼이나 뿌리 깊다는 저자의 논변은 매우 탁월하게 느껴진다. 특히, 개인의 자율성,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나치당원 등이 되고자 맹신자들의 심리분석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만큼이나 논리적, 체계적이다. 


에릭 호퍼에 따르면, 대중운동은 증오로 똘똘 뭉친 패배자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개인의 독립성이나 개성을 말살하고 단결과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은 극좌와 극우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서로 통한다는 말이 나온 듯하다. 이러한 맹신자들은 어찌됐든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달려야만 불안한 영혼을 진정시킬 수 있다. 그들이 신봉하는 대의는 수단에 불과하다. 대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비슷한 그들이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몸담을 수 있는 조직과 나치가 유대인을 적으로 만들 듯 그들의 증오심을 과감히 행동으로 표출할 수 있는 대상(주적)이 있으면 족하다. 집단적 증오를 표출하고 열정적으로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하는 맹신자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일베현상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137페이지) 


여기서 악마는 비이성적 증오를 표출할 수 있는 이방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방인은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 전라도, 성소수자, 여성… 등으로 맹신자들의 주 타깃이 될 수 있다. 호퍼에 의하면, 대중운동은 생명을 갖고 있다. 열역학 제1법칙처럼, 대중운동의 에너지(열정)는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쳐 다른 대중운동으로 옮겨간다. 이런 점에서 대중운동은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질병이자 부활의 도구


예전에 우리나라 메이저급 시민단체 사무총장께서 말했던 “시민운동을 하려는 자는 가슴 속에 깊은 분노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격언(!)이 문득 떠오른다. 에릭 호퍼의 텍스트를 읽다보니 그가 말했던 분노는 부조리, 기득권에 대한 합리적 적개심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세계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성적 증오, 파괴본능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의 격정기, 즉 맹신자들이 활개하는 기간이 끝나면 대중운동의 주체는 ‘행동가’의 손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격정적인 시기가 지난 운동은 성공한 자들에게는 권력의 수단이요 좌절한 이들에게는 아편이 된다.” 


나치나 파시즘처럼 유해한 대중운동도 있겠지만, 정체된 사회를 각성시키고 혁신하는 대중운동도 있다. 대중운동은 세계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될 수도 있지만, 죽어가는 세계를 소생, 환골탈태시키는 묘약일 수도 있다. 


“광신주의는 유대기독교의 발명품이었다. 세계가 이 영혼의 질병을 얻으면서 사회와 국가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의 도구-부활의 도구-도 함께 얻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마지막 페이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

  • 프로필 사진
    2015.10.08 22:50 신고
    갠적으로 유대기독교가 사회와 국가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의 도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유대기독교와 그 종교에서 파생된 것이 치명적인 인류 영혼의 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갠적으로 인류가 망한다면 유력한 원인 중에 하나가 기독교와 이슬람 때문일거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