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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속에 사는 존재 ‘비트겐슈타인’의 인생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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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10.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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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인생 노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이윤 엮음, 필로소픽.


아직까지 낯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라는 저서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고 선언한 비트겐슈타인은 왠지 까칠하고 시크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신은 죽었다”고 천명한 니체에 비해 비트겐슈타인은 아직까지도 낯설고 이질적인 철학자의 이름이다. 


오래 전, 어느 도인에게 “절대적 존재, 즉 신(神)이 있다면 그 신은 어떻게 탄생했고 그 영역 밖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기독교 신자였다면 “무조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세요”라고 했겠지만, 그 도인은 “인마!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시공의 지배를 받는 나는 그것을 초월하는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고 부연했다. 비트겐슈타인도 이와 비슷한 답변을 한다. “이 영원한 삶도 현재의 삶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가 아닌가?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삶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공간과 시간의 밖에 놓여 있다.” -『논리철학논고』에서


‘논리와 언어’라는 드넓은 대양에서 자유롭게, 때론 힘겹게 유영했던 고독한 고래 한 마리 ‘비트겐슈타인’은 2000년 초반 고 신해철이 결성한 그룹 이름이기도 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를 모티브로 했던 신해철은 한국대중음악의 비트겐슈타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어찌됐든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만큼이나 신해철 음악에서 타협하지 않는 반항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 같다. 버트런드 러셀의 제자였지만,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했던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실증주의 및 일상언어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인식되고 있다. 


시지포스의 삶을 실천한 철학자


캠퍼스에서 유유자적한 철학자로서의 삶을 뿌리치고 1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진 입대, 초등학교 교사생활, 수도회 정원사, 건축가, 케임브리지 복귀, 동성애(성정체성) 논란 및 민족정체성 혼돈, 유대인으로서 나치 경험… 등 비트겐슈타인의 다사다난한 삶을 접하노라면 카뮈가 말했던 ‘이방인’, ‘시지포스’의 표본으로 느껴질 만큼 절망과 외로움, 그리고 투쟁의 악순환을 지속하는 삶을 영위한 철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비트겐슈타인의 인생노트》는 고담준론의 철학적 내용이 아닌 일상 속 주요 화두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들을 엮은 책이다. 그가 1차대전 참전 중에 쓴 일기 및 중년에 쓴 일기를 비롯해 저서인 《논리철학논고》, 《문화와 가치》, 그에 관한 일화들이 담긴 각종 평전과 회상록 등이 참고문헌으로 사용됐다. “철학은 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는 의외로(!) 논리실증주의적 철학자보단 어느 명상가의 잔잔한 향기로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사유의 다양성


“신의 존재가 자연의 논리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게 로마 가톨릭의 도그마다. 이 도그마 때문에 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될 수가 없다. 만일 신이 나 자신과 같은 또 하나의 존재이고, 단지 나의 외부에 있는 무한히 강력한 존재라면, 나는 신에게 저항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여길 것이다.” -모리스 드루어리 「비트겐슈타인과의 대화」에서


“만일 너와 내가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려 한다면, 종교에 관해서 말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모리스 드루어리 「비트겐슈타인과의 대화에 대한 비망록」에서


상징과 비유, 아포리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솔직한 고뇌와 아픔이 가슴에 와 닿는 구절도 종종 있다. 그는 특정 교리를 믿지 않았지만 종교적인 자세로 삶을 바라본 듯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제철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상당량을 오스트리아의 예술가와 작가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논리철학논고》에서 “철학의 목표는 생각의 논리적 명료화다”고 강조하지만, 헤겔 철학처럼 절대주의로 귀착되진 않는다. “사람들은 내게 자신들이 철학을 배우지 않아서 이런저런 것들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짜증나는 헛소리다. 철학이 마치 일종의 과학인 것처럼 둘러대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또는 다윈 같은 이의 진정한 공로는 참인 이론을 발견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비옥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 것에 있다.” -『문화와 가치』에서


요컨대, 그에게 철학의 의미는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사유(생각)의 다양성에 있는 듯하다. 고착화된 사유의 편향성이 아니라 그 스타일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투쟁이야말로 철학의 의미이자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어느 분야에서든 결과보단 부단한 투쟁의 과정을 중요시 한다. “조악한 문장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문장의 씨앗일 수 있다.” -『문화와 가치』에서 


언제나 함께 했던 우울과 자살의 그림자


비트겐슈타인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자살과 죽음을 유난히 많이 경험한 불행아다. 그러한 실연과 아픔은 삶에 대한 회의, 절망감, 우울증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때로 천재와 불행은 기묘하게 달라붙는 자석처럼 숙명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지금 나를 위협하는 완전한 고립의 두려움 때문에 매우 고통 받고 있다. 이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날마다 무미건조한 슬픔만 이어지는 저녁을 두려워하는 삶일 뿐이다.” -레이 몽크 『비트겐슈타인 평전』에서


그럼에도 그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다시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려 올리는 시지포스의 굳건한 자세를 견지한다. “절망에는 끝이 없고, 자살로는 절망을 끝내지 못한다.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끝내는 수밖에 없다.”, “똥밭에 빠졌을 때 할 일은 오직 하나, 행진하는 것뿐이다. 훌쩍이다가 죽는 것보다는 분투하가다 급사하는게 낫다.” -『일기 1930-32, 1936-37』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추스르고 일어나서 다시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것이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했던 일이다.” -모리스 드루어리 「비트겐슈타인과의 대화」에서


영원한 사랑은 가능한가?


‘진정한 사랑은 영원하다?’,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유한한 존재,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존재에게 영원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에게 영원성은 지금 현재 속에 있다. “만약 우리가 영원을 시간의 무한한 지속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이해한다면, 현재 속에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또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사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현재 속에 사는 삶에는 죽음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원한 사랑도 현재 속에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재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혁명가란 자기 자신을 혁명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문화와 가치』에서


세상에 만족한 자는 오직 지금 행복한 사람뿐일 것 같지만, 누구나 세상을 개선시키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저 너 자신을 개선하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고 주장한다. “삶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삶의 형식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삶이 그 형식에 맞을 때 문제는 사라진다.” -『문화와 가치』에서


철학적 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유언은 “사람들에게 내 삶이 참 멋있었다고 전해주시오”라고 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자꾸 말하려고 시도할 때, 갈등과 불행의 씨앗은 잉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제1원리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뒤엎는 철학적 반역자일수도 있다. 세상이 어떠하다는 것에 대해서가 아닌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타우마제인)을 시종일관 강조한 그는 논리의 클리셰 또는 이성의 간지에 발목 잡힌 철학적 논리를 극복하고 삶의 논리를 구현한 철학자가 아닐까. “우리는 먼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철학을 할 수 있다.”-『일기 1930-32, 1936-3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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