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잔인한 이웃(Frygtelig lykkelig/Terribly Happy, 덴마크, 2008)

○감독: 헨리크 루벤 겐즈(Henrik Ruben Genz)


부조리는 공동체의 자양분?


모래알 같은 부조리들이 서로 뭉쳐 돌처럼 견고하게 굳으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식이 돼버린다. 그 상식체계는 구성원들이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 기반을 무너트리거나 그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사회적 왕따 또는 마녀사냥을 당하기 마련이다. 덴마크 영화 《잔인한 이웃》은 모래들이 돌로 변하고,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는 기묘한 화학적 작용을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보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대도시 코펜하겐에서 한적한 시골로 발령을 받은 경찰 로버트(배우: Jakob Cedergren)는 공동체에 달라붙은 이물질 같은 존재, 즉 아웃사이더다. 반면, 평화로운 마을의 정적을 수시로 깨트리는 죄르겐(Kim Bodnia)과 그의 아내 잉거리즈(Lene Maria Christensen)는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는 눈엣가시, 내부의 적으로 간주된다.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로버트는 불안과 욕망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파편화된 개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잉거리즈의 존재성은 로버트의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감정(욕망)을 스스럼없이 노출하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로버트의 연민은 경찰이라는 직업적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사사로운 욕망으로 변질된다. 바로 그 시점부터 등장인물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의 묘미는 이물질 같은 로버트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극적으로 편입되는 절묘한 과정에 있다. 로버트의 욕망이 불러온 잉거리즈와 죄르겐의 죽음은 오히려 공동체에겐 절호의 기회로 작용한다. 부조리한 공동체는 때때로 개인의 불안을 잠식하지만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마을 구성원들이 마녀사냥터로 늪지를 이용하듯, 로버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조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녀사냥을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선봉에 서 있는 부조리의 극단적 현상이다. 부조리한 공동체와 공범관계를 맺고 나서 보이는 로버트의 구토는 마치 장 폴 샤르트르가 묘사했던 《구토》가 연상된다.

빼도 박지도 못한 처지에 처한 로버트의 당황스러운 모습은 잠시뿐, 진짜 부조리는 그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마을 사람들의 카드놀이에 동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더 큰 부조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내리기가 몹시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Frygtelig lykkelig’, ‘Terribly Happy’라는 점, 우리말로 의역하면 ‘지독한 행복’쯤 될 것 같다. 로버트는 자의반 타의반 지독한 행복에 빠져든 것일까? 그는 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의 존재가 돼버렸다.


한편으론, 부조리의 공동체에도 그 임계점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우리 사회 임계점의 적정수준은 어디까지일까? 그 임계점을 넘는 순간, 과연 견고한 돌은 산산조각이 나고 모래알로 흩어질까?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유럽을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인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대상(2008년)을 수상한 《잔인한 이웃》은 자정작용 능력이 있는 공동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부조리와 그 한계점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몹시 지독한 작품이다.



잔인한 이웃 (2015)

Terribly Happy 
9
감독
헨리크 루벤 겐즈
출연
야콥 세더그렌, 킴 보드니아, 르네 마리아 크리스텐슨, 라스 브리히만
정보
드라마 | 덴마크 | 99 분 |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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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나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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