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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격정적인 질주…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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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10.2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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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유형지에서(외)》, F. 카프카 지음/박환덕 옮김, 범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7.3.~1924.6.3)의 텍스트를 접하노라면 팀 버튼(Tim Burton)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기괴함, 요컨대 그로테스크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하지만 팀 버튼의 그것에는 (설령 비극적이더라도) 동화에 등장하는 낭만적 요소가 강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에는 악몽적 현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때로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급속히 팽창하는 기구처럼, 순식간에 대기권을 뚫고 상승하는 로켓처럼 그 극단까지 치고 올라가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파열되고 소진돼 감정의 찌꺼기마저 남아있지 않게 되는 허무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그의 텍스트에서는 격정적으로 질주하는 엔진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고독한 질주는 ‘내러티브’마저 파괴한다. 대부분 미완성으로 끝난 카프카의 작품에서 오히려 ‘창조적 파괴’를 엿본다.


카프카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에는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고립)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설명한다. 대체로 우울하고 어두운 공기를 내뿜는 작품들이 많지만, 은근히 위트와 표현의 기발함을 맛볼 수 있는 것들도 꽤 있다. 한국 카프카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박환덕 박사가 번역한 이 책은 카프카의 단편들과 그가 쓴 서신(아버님께 드리는 편지), 서평(청년 오스발트의 이야기), 작품론(역자) 등을 엮은 것이다. 


외판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충격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가족들도 눈치를 채버리고, 기상천외한 에피소드가 집안에서 펼쳐진다. 《변신》은 마치 팀 버튼의 단편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연상될 정도로 엽기적이고 악몽처럼 섬뜩하며, 동화처럼 흥미로우면서 결국에는 비극적이어서 서글프다. 


기능주의적 존재들의 부조리한 대행진


《변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기능주의적 존재들이다. 즉, 분업체계에 최적화된 대량생산의 자본주의적 존재들이다. 존재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소통은 부재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 그레고르의 ‘변신’은 그 안정된 시스템을 깨트리는 요인이 된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별의별 행동을 통해 발악을 해도 더 이상 기존 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다. 기능과 소속을 잃었기 때문이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기능성이 존재의 고유성, 본래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조리한 비극이다.


카프카에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는 쓸모없는(無用의) 존재들이란 도무지 없다.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역할에 몹시도,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마당에 출근과 직장생활을 걱정하는 주인공, 《시골의사》에서 세찬 눈보라를 뚫고 왕진하는 의사, 서커스 곡예사, 경마장 기수 등 각자 맡은 임무나 직업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러한 충실함이 전혀 ‘유의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늦은 밤까지 글을 썼던 카프카, 완전한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니었던 그는 아웃사이더, 이방인의 숙명을 짊어진,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존재’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실용주의, 그리고 각자 분담한 역할(직업·노동)이 존재의 고유성을 오히려 박탈하고 소외시킬 수 있다. 카프카는 직업상 그 누구보다도 인간이 물화(物化)적 존재로 변신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존재성을 잃어버린 자의 극단적 행태를 작품 《유형지에서》가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교는 죄수를 처형하는 고문기계를 통해 자기존재의미를 재확인한다. 죄수에게 진짜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 처벌이 합당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교-고문기계-죄수’의 3자 구도는 견학자로 등장하는 탐험가의 존재로 인해 무참히 깨진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분석하며 ‘유럽-비유럽’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는 구도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정작 죄수가 아닌 장교가 기계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져 자기처형을 시도할 때다. 장교에게는 고문기계야말로 정의-부정의, 합리-불합리의 기준을 초월해 자기정체성을 증명하는, 단순기계를 넘어 아이텐티티가 이입된 상징체가 아니었을까? “그(죽은 장교) 눈길은 평안하면서도 깊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프카 방식의 집념


“모든 사람은 반드시 법을 추구합니다.”하고 사나이가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입니까? 이 오랜 세월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 문을 찾아와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법 앞의) 문지기는 그 사나이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희미해져 가는 그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포효하듯 외쳤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소. 왜냐하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까. 이제 나는 가서 이 문을 닫아 걸겠소.” 《법 앞에서》중에서

 

이민족이 침입했는데도 궁성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황제와 위병대, 오직 노동자와 상인들에게 조국의 수호 임무가 맡겨져 있는 이상한 나라의 현실을 그린 《낡은 페이지》, 법(法)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평생 동안 간청해 온 어느 사나이의 이상한 절망을 그린 《법 앞에서》 등은 짧은 분량만큼이나 상당히 인상 깊었다. 


사회적 풍자로 다가올 수도 있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냉소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텍스트에서는 절망보단 어떤 집념, 좌절의 악순환에서도 굴하지 않는 오기가 느껴진다. 아버지(헤르만 카프카)와의 끊임없는 불화에 고뇌했던 그가 직접 쓴 편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항의에 의해서 그것을 정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일일이 관철할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로는 그것을 정정하면 역시 훨씬 진실에 가까워질 수가 있으며 그 결과 우리 두 사람의 기분도 다소 안정되어서 삶과 죽음을 좀 더 마음 편하게 맞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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