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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유토피아를 꿈꾼 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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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 10. 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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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유와 예속의 원류》, 박홍규 지음, 필맥.


배부른 아리스토텔레스… 거지를 자처한 디오게네스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 앞에 서서 “나는 대왕인 알렉산드로스다”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나는 개(犬)인 디오게네스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왜 개로 불리느냐고 묻자 “무엇인가 주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짖어대고, 나쁜 자들은 물어뜯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무엇이건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라”고 대답했다. 


어릴 적 텔레비전, 만화 같은 데서 얼핏 본 듯한 장면이다. 현재,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저서는 한 권도 존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박하고 자족적인 생활, 권력이나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참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화폐 폐지를 주장했는데, 아마도 자연과 함께 하며 자족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적 이상사회와 깊이 연결돼 있는 듯하다.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디오게네스’를 입력해보니 그의 철학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설명한 책은 오직 한 권뿐이었다. 아나키스트 박홍규가 쓴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유와 예속의 원류》였다. 물론 《디오게네스는 왜 행복할까?》라는 책도 있었는데 어린이를 위한 그림 동화책이다. 박홍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반대편에 바로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자유, 자족, 무욕의 철학이 있다고 분석한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과도 깊이 연결시킨다.


즉, 노예출신 디오게네스야말로 자율주의(자유주의, libertarianism),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누구로부터의 억압을 거부하고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한 자율주의, 한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전체 세계의 시민이라는 세계시민주의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인종적 우월의식, 제국주의 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의 철학, 초창기 기독교의 메시지와도 부합된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은 자타의 차별을 없애고 사람을 널리 서로 사랑(겸애)하라고 전파한 묵자(墨子)의 사상과도 비슷해 보인다. 


박홍규의 말대로 홈리스, 거지, 개와 같았던 디오게네스에 비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을 잇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대학에서 철학과 수업뿐만 아니라 정치학과 전공수업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정치사상가들이 이들이다. 박홍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야말로 현재의 신보수주의, 네오콘(Neo-conservative)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리즘, 또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그들의 사상은 시장질서, 자유로운 자본이동, 다양성과 상충되는 문화통합을 강조한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늘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론 “돈이 곧 정의”


이른바 인민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철인정치를 부르짖은 플라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을 자처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엘리트정치, 귀족정치, 소수의 지배를 강조한 꼴통들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정치를 줄기차게 강조한 성리학자들과 묘하게 매칭된다. 박홍규는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분배·교환적 정의)은 돈이 최고, ‘돈이 곧 정의’라는 결말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들의 사상은 초인을 외친 니체, 나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칼 슈미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네오콘을 거쳐 한국의 꼴통들에게도 주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계승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박홍규는 미덕 중심의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 자율적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라고 지적한다. 샌델의 저서가 불티나게 팔린 데에는 이명박의 공로가 지대하다. MB가 국정지표로 공정사회를 내걸며 샌델의 저서를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정의론과 별반 다른 게 없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현상은 정의에 굶주리고 공동체 파괴에 허탈감을 느낀 한국인들의 허기를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박홍규는 자유와 평등, 무욕과 평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디오게네스 철학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자연과 함께 하는 자치사회를 지향했다고 결론 맺는다. ‘가난한 유토피아’가 사실은 진짜 풍요로운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사회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이를 위해 희생한 빈곤과 굴종의 사회가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부(富)와 힘(권력), 그것이 곧 선이고 평화이며, 전문가·엘리트들이 정치사회(공동체)를 지배하는 사회가 좋은 국가라는 것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참모습이다. 


권력가, 자본가들이 흔히 주장하는 이론 중 하나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이다. 이는 민주주의, 복지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허상이며, 부자들의 아전인수, 조삼모사의 간계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철인정치, 이데아 사상과 비교되는 철학자로서, 민주주의자이며 고대 원자론을 완성했던 데모크리토스의 말은 엘리트주의자, 국가주의자, 인종우월주의자, 심지어 부자가 정치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권력지향형 자본가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반박처럼 들린다.


“시민정(민주정) 하에서의 가난이 엘리트정이나 군주정에 보통 수반된다고 하는 번영보다 낫다. 그것은 자유가 노예보다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자는 모든 국가에 속한다. 왜냐하면 위대한 영혼의 집은 전 세계이기 때문이다.” (본문 13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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