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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혁명마저 팔아치워… ‘저항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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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키안 2015.11.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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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주식회사: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피터 도베르뉴·제네비브 르바론 지음/황성원 옮김, 동녘.


기업화 되어 가는 시민운동


“민간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세계최대의 비영리조직인 유나이티드웨이는 2011년 51억 4,000만 달러를 모았다. 같은 해 해비타트 인터내셔널의 후원금과 수입은 15억 달러였고, 국제자연보호협회는 11억 7,000만 달러였으며, 월드비전은 10억 6,000만 달러, 세이브더칠드런 미국 지부는 6억 1,900만 달러, 수잔 코멘 유방암 재단은 4억 3,900만 달러였다. 여기에 이들 조직들은 투자, 부동산, 토지 소유 등의 형태로 수백만 달러(때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도 보유하고 있다.”(175페이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단골 이슈가 되어 왔다. 쉽게 말해 기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는 논리다. 대체적으로 환경보호나 개발원조, 복지분야에서 CSR이 활성화 돼 있고, 관련기관·단체(NGO)들과의 협력을 통해 추진되기도 한다. 


사실, 환경운동조직이나 개발원조단체들과 기업 간의 동반자 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회적 책무 이행 차원에서 비영리기관, 복지단체 등에 상당한 자금을 후원하는 유명기업들과 기업인들도 언론보도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미국, 유럽지역, 다국적기업 등에 비해 자주 목격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한국기업들도 재단설립 및 후원, 또는 NGO들과 손을 잡고 각종 ‘착한일’ 벌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참여기업은 기업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출향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NGO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펀드조성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고 확대할 수 있다. 


“나이키 ‘걸 이펙트 네트워크’의 대답은 분명하다. 빈민에 대한 투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게 아니라 영리한 경제행위’이다. 간단히 말해 이런 활동은 기업의 권력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개척을 가능케 한다.”(73페이지)


피터 도베르뉴(Peter Dauvergne,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국제관계학)와 제네비브 르바론(Genevieve LeBaron, 셰필드대학교 정치학과)이 공동 집필(번역 황성원)한 《저항 주식회사, PROTEST, INC.》에서는 비영리기구들이 대기업과 손을 잡고 추진하는 착한사업들의 정체를 신랄하고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치고 변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처럼 NGO들도 기업화·관료화 되어가고 풀뿌리운동을 잠식해버린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투하다 보니 NGO들 간의 경쟁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기업의 홍보 에이전시로 전락했다는 비난마저 듣는다. 사회 시스템을 변혁하기 보단 기존 질서에 동화되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져버렸다는 것.


소비에 침식되는 대의


“오늘날 국가는 빈곤 같은 문제의 책임을 정치 및 경제 시스템에서 개인의 선택과 소비자 의사결정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35페이지)


공동브랜드 개발, 공정무역, 친환경마크 등은 길거리나 마트 등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념이다. 저자들은 이를 ‘대의명분 마케팅’이라고 일컫는다. 대의명분과 소비를 결합한 영업기법(공정무역, 윤리적 구매, 지속가능한 쇼핑…)이라는 것이다. (착한)소비자들은 북극곰이 새겨진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대체로 비싼 공정무역 상품을 소비하면서, 환경마크가 인쇄된 제품을 구매하며 흐뭇해한다. 정부의 감시를 받거나 경찰의 곤봉과 물대포를 피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대의명분 동참이다. 자신이 대의를 위한 행동(소비)에 참여했다는 보람도 느낀다. 요컨대, 소비자본주의라는 괴물은 대의, 혁명까지 팔아치우는 식성을 과시한다. 그러한 소비 카니발에 NGO들도 대거 동참하며 대의를 위한 소비를 호소하고 있다. 


“기업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운동가들은 결국 자본주의 교리를 사실상 문제 삼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나 유명인사의 모금활동, 레드 같은 로고는 의미 있는 사회적 기여를 하기 보다는 소비를 부추기는 효과가 더 크다.”(89페이지)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국제엠네스티, 국제자연보호협회, 월드비전 등은 기업후원 등을 통해 다국적NGO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대규모, 국제적으로 진행하는 이런 캠페인이 무의미하다고는 볼 수 없다.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의 기업화’, ‘기업과의 동반자 관계’는 사회 하부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급진성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또, 프로젝트 중심사업, 이를 위한 자금 확보 과정에서 기업의 이해관계에 얽매일 소지도 있다. 무엇보다 시민운동진영 내에서 시장질서, 규제완화, 사유화 가치 등 자본주의 핵심논리를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건만, 조직을 유지하고 운동가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순수회비로 운영되는 운동이 몇이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기업들을 상대로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고 기업·기관들을 대상으로 착한일(프로젝트) 프리젠테이션도 해야 한다. 운동가들의 기업형 모금활동, 브랜드화 추진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대안은 도대체 어디에…


“기업화된 비정부기구와 소비자운동은 지금의 세계질서 구조를 안정화·합리화하면서 반자본주의·반세계화운동가들 일부는 길들이고 일부는 환멸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주류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래도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는 이들은 군사화된 경찰과 정보기관이 맡는다. 이로 인해 풀뿌리 운동은 약화되고 기업의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209페이지)


한층 유연화 된, 자본논리에 순응하는 운동에 대해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운동에 대해선 철저히 탄압한다. 저자들은 자본질서에 복종하는 세력은 후원하지만 저항하는 자들은 철저히 짓밟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NGO든, NPO이든 그 정체가 무엇이든 운동단체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 활동내용을 들어다보면 다양성 차원에서는 오히려 협소해진듯하다. 심지어 기업, 정부, 로비단체, 자선재단, 비정부기구로 구성된 ‘비영리산업복합체’라는 말까지 사용된다. ‘군산복합체’ 개념과 마찬가지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데올로기와 안전,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엘리트 내에서의 공생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한때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계급전쟁이죠. 맞아요.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건 우리 계급, 부유한 계급이에요. 승리하는 것도 우리죠.”(234페이지)


오늘 국제뉴스에서 세계적 갑부 빌게이츠가 “사회주의만이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발언한 기사를 봤다. 환갑을 맞이하는 빌게이츠가 드디어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자본주의 시스템은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으로부터 지구를 결코 지킬 수 없다, 민간부문의 이기심으로 인해 대체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잠재적인 탄소세 부과,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기술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요지다. 솔직히, 빌게이츠가 진짜 사회주의자로 전향해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파멸로 치닫고 있는 세계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한 빌게이츠 방식의 화법일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이 운동의 기업화 경향에 경종을 울려, 운동가들 내에서 논의를 촉발시키고, 풀뿌리 운동을 옭아매는 공공정책들을 재평가할 기회를 마련하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기업과 자본주의 체제의 안녕을 가장 중시하는 현 질서를 정당화해버리게 되는 ‘운동의 기업화 방식’이 아닌 자본주의를 변혁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대안)은 책 속에 없다. 사실 그러한 대안은 그간 수많은 혁명가, 사상가 등이 이미 제시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존재했던 대안을 망각한 채 안락한 편의주의에 도취되어 적과의 동침을 자행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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