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옛 원고에서
소주 오장육부를 모두 토악질한다 해도, 삶은 소주만큼 능글맞게 독하다. 두 번 다시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사랑은 소주만큼이나 유혹적이다. 어젯밤 소주에 넉다운 되어도, 오늘밤 또 퍼마시는 소주나 사랑의 아픔에 고통스러워 해도, 또다시 갈구하는 사랑이나 지독한 것은 마찬가지. 첫 잔, 자극적인 첫사랑처럼 흥분된다. 둘째 잔, 아픈 이별처럼 쓰디쓰다. 셋째 잔, 그리움에 못 이겨 속이 울컥거린다. 넷째 잔, 사랑의 허망함에 힘이 빠진다. 다섯째 잔, 모든 사랑을 의심해 광폭해진다. 여섯째 잔, 정답을 알 수 없어 정신이 몽롱해지다가 막잔에는 결국 生死가 귀찮다. 소주잔 속에, 생노병사의 애증과 사단칠정이 가득차 있으니 그 모든 걸 비워버린 빈잔에 무위(無爲)의 자유가 넘실거린다.
My Text/Essay
2006. 10. 24.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