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의 기술: ‘남을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기>,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8.


고독한 늑대가 지쳤나?


한국 언론개혁 과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150여권에 이르는 책을 출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실로 ‘박리다매’의 전형이며, ‘책 쓰는 개미’라고 해도 될 만큼 지독하게 부지런한 건 인정해야 할 듯싶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壯士) 없다더니, 강준만 교수도 이젠 늙었나? 한 번 물면 끝장을 보기 전엔 결코 놓지 않는 ‘찰거머리’, ‘고독한 늑대’가 지친 걸까? 이젠 그가 ‘평온’을 논하고 있다! 생뚱맞아 보인다. 여기저기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더니 고요한 평화를 갈구하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 ‘시대정신’이 조금씩 변해 온 것 같기도 하다. 정치, 사회, 문화, 미디어, 언어, 역사 등 분야를 망라해 온 그의 텍스트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하이에나는 때를 기다린다: 김대중 정권 지역감정 그리고 조선일보>(1999년),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2000년), <이문열과 김용옥>(2001년), <노무현과 자존심>(2002년), <노무현 죽이기>(2003), <리영희>(2004) 등에서 알 수 있듯 2000년대 초기에는 정치·사회·문화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집중 공략했다. 특히, 월간으로 발행하는 <인물과 사상>은 그가 수많은 정치인과 지식인, 시민운동가, 철학자, 문화예술인 등을 조지는 ‘안방 무대’였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우리 사회의 특징을 논할 수 있는 핵심 소재들을 끄집어내 오래된 병폐나 사회문화 현상을 재치 있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물론 <안철수의 힘>(2012)처럼 똥볼(!)을 차는 경우도 다소 있지만, <갑과 을의 나라>(2013), <감정독재>(2013), <싸가지 없는 진보>(2014) 등은 그가 우리사회의 핵심코드를 짚어내고 진단하는 특유의 기자정신을 소유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내 삶의 가치는?


최근 출간된 <평온의 기술>은 이전에 나온 재기발랄하고 발칙한 책들에 비해 그다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진 않다. 종종 고리타분한 텍스트로 인해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평온의 기술>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던 강준만 교수의 새로운 문법을 발견하게 된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자유와 평등, 개인과 사회, 성공과 실패, 긍정과 부정 등의 상반된 개념들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논리가 어정쩡하고 꼰대스러운 ‘중용’의 자세인지, 기가 막히는 ‘부정과 부정의 변증법’으로 봐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직설적인 논법을 즐겨 쓴 예전의 책들에서는 쉽게 발견하긴 힘든 접근법처럼 보인다. 


‘솔직’한 것이 타인에게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고 부정적인 개념인 ‘내숭’이나 ‘허세’가 때론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용감’한 것과 ‘무모’함, ‘순수’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것인가? 나는 ‘열정’적인가, ‘욕정’에 불타고 있는 것인가? 때때로 ‘절제’는 ‘억압’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나는 ‘자기효능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가? 모든 가치의 척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일 수 있다는 논리가 텍스트 전반에 펼쳐진다. 마치 객관성을 갖추고 공정한 판단을 하고자 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되고 싶은 걸가? 아니면 내 삶이 진정 행복지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공유하고자 하는 걸까?


많은 경험을 하고 삶의 성찰이 깊어 가면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돌’의 크기가 커지고 무게도 점점 무거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흔들리는 갈대가 되지 않도록, 감정의 기복과 가치판단이 쉽사리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무거운 돌. 파도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닻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 무엇. 집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부화뇌동’의 위험성에 노출되는 최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확행이든 대확행이든, 부자든 빈자든 소비해야 만족하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용감해야만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 지위와 부, 명예의 크기가 곧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일치되는 것에 침묵하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속물로 살아가는 자본주의 쓰레기라는 걸 동의하는 것이며 ‘평온’도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Posted by 아나키안


『한국인과 영어: 한국인은 왜 영어를 숭배하는가』,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4.


“한국에서 영어는 국가적 종교이긴 하되, 그 정체는 내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복신앙이었던 셈이다.”[157페이지]


“모든 이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거듭된 선전은 상류층이 미국말 배우기에 쓸 시간과 돈이 모자라는 하류층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이데올로기라는 측면도 있다…”[184페이지]


대학생 시절 NL운동권 선배 왈 “미 제국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일제식민시대 통치술에 이용당하는 것과 똑같다.” 즉, 미 제국주의 시대에 길들여져 영어를 배우는 것은 과거 친일파들이 하는 작태와 비슷하다는 것. 근데 그 선배는 지금 강남에서 살고 있으며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말보로 담배 피웠다고 귀싸대기 맞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영어 제국주의 논리는 차라리 상식처럼 들릴 정도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영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유층·빈곤층 할 것 없이 권력을 넘어 종교수준에 이르렀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영어 가능자와 불가능자. 대체로 영어 가능자는 상부계급, 불가능자는 하부계급에 속한다. 영어 가능자는 엘리트층, 불가능자는 비엘리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영역에서 큰 소리 치는 웬만한 리더들은 대부분 영·미권 유학파들인 것도 사실.


언어도 넓게 보면 문화에 속한다.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배운다는 순진한 발상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아주 옛날에는 중국, 근세에 들어와선 일본, 해방정국 이후론 영어가 대세가 됐다. 또다시 어떤 언어로 바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뜬다고 말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국어가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들 간 경쟁 속에서 차별화 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들 중에 영어실력이 가장 효과적이며 그 서열도 계량화하기 쉽다. 토익 점수대로 분류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어학연수, 심지어 혓바닥 수술, 토익 대리시험 꼼수, 외국인 강사들의 천국이란 비아냥… 이유야 어찌됐든 영어 불가능자는 루저(loser)로 취급받는 잔혹한 세상이 됐다. 


뭔가 획기적이고 쾌도난마의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저자가 제시하는 마지막 답변은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는 다소 맥 빠진 주문. 그냥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자는 것과 다름없다. 학벌, 지연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영어 광풍에 대처하는 합리적인 해결책이란 애당초 없다는 논리처럼 들린다. 어쩌면 대학서열화의 중심축, 서울대를 해체하는 것이 훨씬 쉬울 지도 모르겠다. 


외국이라곤 독일과 중국 한 번 갔다 온 게 전부이며, 밥벌이 하며 영어를 써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음에도 영어는 스트레스이자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짐짝처럼 느껴진다. 배워도 스트레스, 안 배워도 스트레스라면 그냥 안배우고 돈 안 쓰고 대충 스트레스 받는 게 편안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대로 쓰는 것도 나는 가끔 힘들다. 거기다가 사투리까지 쓴다고 비웃음 당하기 일쑤다.


반면, 복거일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영어공용화’를 통해 가진 자든 못가진 자든 영어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하자며, 그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나름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나는 반대일세다. 국민 모두 영어를 잘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영어 잘한다고 국민들이 현재보다 행복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영어를 대체하는 또다른 강력한 차별화 수단이 나올 것이 뻔하다.


영어를 잘해야 잘 살 수 있는 나라보다 영어를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아닐까.


Posted by 아나키안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4.1.9(초판3쇄).


이성은 결론을, 감정은 행동을 낳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평론가, 강준만 교수의 텍스트가 매력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섹시’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의 저작들에는 셀 수 없는 각주와 참고문헌들이 들어가 있지만 극도의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구슬을 잘 꿰어 맞추는 테크닉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지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해되는 것은 특유의 글쓰기 솜씨도 있겠지만, 관련 콘텐츠가 피부에 와 닿는, 시의적절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차원을 떠나 무진장 부지런한 대학교수인 것 같다. 그의 텍스트는 단지 뒷북치는 평론에 끝나지 않고 한국사회에 암암리 영향을 끼친다.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룸살롱 공화국>, <안철수의 힘>, <갑과 을의 나라>, <강남 좌파> 등의 저서는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갑과 을의 나라>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지적했다면, <감정 독재>는 공간을 넘어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사고와 행동패턴을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의 이론과 결부시켜 흥미롭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계기도 제공할 수 있을 듯 하다.  


저자는 신경학자 도널드 칸의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정을 행동을 낳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일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감정적 행동 패턴에 “왜?”라는 질문을 통해 거기에 맞는 50개의 관련 이론을 끄집어낸다. 앞으로 시리즈로서 50개가 아닌 수백 개 이론과 유사이론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희생번트는 감독의 면피용 작전?!


소개되는 50개 이론 중에는 경향(bias)과 영향(effect)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많다. 즉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방향성을 갖고 있는 존재며, 벡터공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 같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이론, 행동편향(action bias)과 부작위편향(omission bias)은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야구를 사례로 들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 희생번트는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고교야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야구팬들은 번트를 자주 지시하는 소극적인 감독을 상당히 혐오한다. 보기에도 짜증나기 때문이다! ※참고사진: 2006년 8월 18일 오후 5시경 동대문구장, 제36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충암고VS안산공고/ 사진: 아나키안)


통계적으로 무사 1루 상황이 1사 2루 상황보다 득점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특히 한국야구에서 주구장창 희생번트가 나오는 이유는 ‘똑같은 결과, 아니 더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행동하는 게 낫다는 믿음’, 이른바 ‘행동편향’ 때문이라는 것. 특히 강공을 펼쳐 병살이 되면 감독이 욕먹지만, 희생번트를 실패하면 선수가 욕 먹는다. 감독직 유지에 안정적 역할을 해주는 면피용 작전이라는 지적이다. 


반대로 ‘개입하지 않음을 최선으로 삼는 태도’ 부작위편향 역시 야구장 심판들에게 흔히 일어난다. ‘최고의 심판은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라는 논리 때문에 관습적으로 심판 콜(아웃 또는 세이프)이 일어난다. 부작위편향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얻는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여자 피겨 논쟁에서 친콴타의 ‘허수아비 오류’


길거리에서 싸우다 불리해지면 “너 몇 살이야!”라며 화제를 바꿔버리는 ‘주의전환의 오류’(red herring fallacy)와 상대방의 주장을 적당히 왜곡해버리는 ‘허수아비 오류’(straw man fallacy)는 일상에서 너무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어린이가 혼자 길가에 나다니게 하면 안된다”는 주장에 “그럼, 애를 하루 종일 집안에 가둬 두란 말이냐”로 받아치는 것이 일종의 허수아비 논쟁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요즘 나오는 뉴스에서 허수아비 오류를 나름대로 발견해봤다. 최근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불공정한 점수책정 논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협회 회장 부인(알라 셰코프체바)이 자신이 판정했던 같은 국적의 선수(소트니코바)를 안고 있는 모습 등 심판자격 및 자질과 관련해 많은 의혹들을 언론들이 제기하자, 친콴타 ISU(국제빙상연맹) 회장은 “빙상연맹 관계자와 이해관계가 있다고 해도 멍청한 사람이 심판 하는 것을 바라냐?”, “이해관계보다 훌륭한 심판이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무식한 발언을 쏟아냈는데 이야 말로 최고의 허수아비 논법인 듯 하다.


감정독재를 극복하는 방법, 타협?


이외에도 지역감정이 실제 이상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다원적 무지 이론’, 박근혜 정부의 무차별 공약 파기를 설명할 수 있는 ‘승자의 저주’, 기업들의 교묘한 마케팅으로 사용되는 ‘넛지’, 독립적 비판사고가 결여된 엘리트 집단이 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집단사고 이론’, 게임 강제 셧다운제 비판에 적용될 수 있는 ‘갈라파고스 신드롬’, ‘세상은 다 도둑놈’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공공선택 이론’ 등은 개인 일상을 넘어 정치, 경제사회까지 확장할 수 있는 이론들이다.


저자는 감정에 휩쓸리는 행동경향, ‘감정독재’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감정독재와 싸우는 법은 사실상 타협하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정면 승부 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감정과 이성이 정확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과 싸우는 합리적 방법으로 “사안과 때를 가려 대응하는 타협의 예술”을 제시하고 있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게 있어서 그게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합리적 이성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감정은 내 피부, 내 몸 속에서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 인상깊은 구절

"낙관적 감성을 비관적 이성으로 보완하거나 견제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과유불급의 철칙을 믿는다면 말이다" (본문 198페이지)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믿는다. 당신의 고객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시오. 단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하시오" (본문 213페이지/ 다비트 보스하르트 <소비의 미래: 21세기 시장 트렌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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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선샤인 지식노트>, 인물과사상사, 2008


"전제정치는 질서를 가장한 무질서다." (23페이지)


"도덕은 자신을 향하지만 도덕주의는 남을 향하기 때문이다. 남을 단죄할 땐 도덕주의의 칼을 쓰고, 자신의 처신은 도덕을 초월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다." (24페이지)


"1천만이 1년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보다는 10만씩 골고루 분포한 관객이 저마다 100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가 훨씬 예술적이다" <안정효> (90페이지)


"스타에겐 이들에게 얼굴 보여주기가 노동이고, 스캔들도 경제행위가 된다." (92페이지)


"예술이란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피카소> (135페이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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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는 지식인의 표상(?) 강준만 교수의 정치학 사전.


사전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고 무미건조한 사전은 아니고, 저자만의 독특한 저널리즘적 시각으로 신조어를 포함한 정치용어들을 분석한 좀 두꺼운 비평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 인상깊은 구절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틀림'을 '다름'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5페이지)


권력감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아나키스트는 '그렇다'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뻔히 타락할 줄 알면서도 '권력'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현실적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자세를 취한다. 누군가는 꼭 리더 노릇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22페이지)


"독재에 익숙한 사람들을 자유로 향하게끔 인도하는 것이 어렵다" -마키아벨리 (35페이지)


근시안적 유권자에게는 근시안적 정책이 제격이다. (314페이지)


세계 최고 부호 세 명의 자신이 가장 덜 개발된 국가 48개국의 국민 총생산을 합한 금액보다 많으며 세계의 억만장자 358명의 재산이 세계 23억명(세계인구45%)의 부를 합친 것과 같다. (511페이지)


신자유주의는 핵폭탄이나 중성자 폭탄보다 더 강력한 금융폭탄을 개발했다. -마르코스 (542페이지)


아시아에서 5달러 60센트에 만들어지는 나이키 신발은 서구에서 70달러 이상에 팔렸다. 마이클 조던이 받는 2000만 달러의 광고 협찬료는 신발을 만드는 인도네시아 공장들의 연간 전체 임금을 합친것보다 많았다. (614페이지)


"이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소수의 몇몇 부자들의 손아귀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IMF총재 캉드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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