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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15 함정, 욕망덩어리들의 잔혹한 카니발

△영화: 함정(Deep Trap, 2015)

△감독: 권형진


뱀의 꾐에 빠진 아담과 이브


일차적으로, 영화 《함정》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존심 강한 페미니스트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을 소지도 있어 보인다. 이브가 뱀의 꾐에 넘어가 아담을 끌어들이고, 모두가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듯 《함정》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주체성도 자존감도 없는 수동적인 욕망덩어리로 비치기 때문이다. 

남도 외딴 섬에서 가히 후레자식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의붓오빠 성철(마동석)과 함께 영혼 없는 존재,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민희(지안), 아기를 잃어버린 유산의 트라우마에 허우적거리다가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줄 거라는 희망에 함정 속으로 빨려 들어간 소연(김민경)이 바로 그렇다. 


영혼을 잠식하는 욕망


하지만, 부부금슬의 복원을 기대하고 남편에게 이른바 ‘오입질’을 시키는 소연이 자존감 없는 욕망덩어리라면, 남편 준식(조한선)은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의지박약의 욕망덩어리다. 무엇보다 결혼 5년째 아이가 없는 준식과 소연은 예측하지 못한 함정에 빠져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에 처한 무고한 주인공들처럼 보이진 않는다.

준식과 소연은 욕망에 눈이 멀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간과한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고, 후레자식 성철은 이를 능청스럽게 악용하는 ‘야차’ 같은 캐릭터다. 언제나 그렇듯 악마는 인간의 욕망을 미끼로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 《함정》은 각자의 욕망들이 거칠게 부딪치며 피가 낭자하는 질펀한 카니발이다.


마동석=처키의 능청+악마의 잔혹함


자칫 무자비한 호러물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이 나름대로 스릴러의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된 데에는 마동석의 역할이 커 보인다. 영화 배경이 바다로 가로막힌 섬이라는 것 일뿐, 여느 농촌풍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무대를 몹시 낯설게 보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동석의 얼굴에서 처키의 능청스러움과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의 잔혹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마동석과 더불어 재발견된 배우는 역시 벙어리 민희역을 맡은 지안이다. 눈빛과 몸짓으로만 감성을 표현해야 하는 민희라는 인물에서 왠지 김기덕 감독의 <섬, 2000>에서 ‘서정’이라는 여배우가 연기한 ‘희진’이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물론 희진의 아우라가 너무나 강해 민희의 포스가 묻혀버리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치미 속에 숨은 팜므파탈의 향기, 상식을 넘어선 맹목적 집착과 광기가 묘하게 겹치며 어른거린다.


최고의 스릴러… 낮은 평점과 관객수는 안습


언제 터질지 모를, 최대한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을 만지는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함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성철이 던져준 닭 모가지를 날렵하게 채가는 산고양이의 연기력은 탄성을 자아낸다. 지저분한 공포물로 끝날 수 있는 스토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연출력도 돋보였다. 근데 비평가 평점과 누적관객수가 의외로 신통치 않아 아쉽다.   



함정 (2015)

Deep Trap 
7.6
감독
권형진
출연
마동석, 조한선, 김민경, 지안, 강승완
정보
범죄, 스릴러 | 한국 | 96 분 | 2015-09-10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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