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마광수의 뇌구조: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 수업』, 오늘의책, 2011.
 
지고지순한 쾌락주의자 ‘광마(狂馬)’와의 인연
 
전남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어느 날 아침 만원버스를 타고 등교 하는데 당시 유명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과 관련해 온갖 비난들이 쏟아지는 것을 듣게 됐다. 매일매일 등교할 때마다 진행자의 변함없는 목소리와 CF를 질리게 듣던 때라 무관심하게 흘러 넘길 수 있었으나, 그날따라 지나치게 흥분된 억양으로 <즐거운 사라>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주는 친절함을 베푸는 바람에 혈기불끈한 나는 귀가 솔깃했다.

 

오묘한 우연일까? 더더욱 재미있고 신기한 사실은 버스가 모 대학교 앞 정류장에 섰는데 웬 예쁜 여대생 누님이 <즐거운 사라>를 교재마냥 가슴에 품은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책 제목이 <즐거운 사랑>처럼 보였다. 아무튼 그 순간부터 라디오 진행자는 무성영화의 변사, 차창 밖 풍경은 3D 스크린, 고등학교 앞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여정은 나만의 야한 상상극장이 돼버렸다.
 
이듬해 개인사정으로 인해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재수를 핑계 삼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원비를 삥땅치며 전국을 무작정 여행하거나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인문사회분야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주변에서 맨투맨종합영어나 성문영어, 수학의 정석 또는 9급 공무원 수험서 등을 볼 때, 대학진학에 전혀 뜻이 없던 나는 마광수의 <권태>를 비롯한 그의 주옥같은 텍스트를 탐독했다.(마광수 작품만 탐독한 건 아니지만…) 이후 운 좋게도 다른 대학 정외과에 입학해 국문과 수업을 청강하는 과정에서 마광수 교수의 학위논문 주제가 ‘윤동주’라는 색다른 사실도 알게 됐고, 도서관 서고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섹스한다. 그래야만 존재한다”

 

<마광수의 뇌구조>는 비평집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와 소설 <귀족> 이후 간만에 읽은 책이지만, 독자로서 거의 20년 넘게 봐왔기 때문일까? 솔직히 지겨운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구절이 이 책에서 나왔는지 저 책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각각 비슷한 문장이 있었는지 헷갈리고 그 나물에 그 밥, 그 변태에 그 섹스 같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지고지순한 유미적 쾌락주의자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
 
책 제목에서 보여주듯 세계관, 여성관, 섹스관, 문학관(예술관) 등의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본인의 구체적 성향을 밝히고 있고, 문학인으로서 또는 지식인으로서의 솔직한 자기 진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면, 광마 선생은 “이 세상은 섹스로 이뤄져 있다”고 정의한다. 물과 섹스는 왠지 공통 속성이 있는 듯 하다. 우리네 삶의 기저에는 ‘섹스’(성욕)라는 거대한 수맥, 예술적 화두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성기 중심의 성담론을(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의학적(정신분석학)으로 다뤘다면, 광마 선생은 성기를 포함한 다양한 패턴의 성희(성적유희 또는 놀이)를 예술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한국사회에서 성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선각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낫다”

 

“인간 별거 아니다. 다른 동물처럼 태어나서 섹스하고 죽는다. 그것이 전부다” [본문19~20페이지]

 

“일을 하지 않아 고운 손보다 노동으로 단련된 투박한 손이 더 아름답다는 식으로 궤변을 떨지 마라.

노동은 고귀하지 않다.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127페이지]

 
한 사람의 성향을 명쾌하게 개념화 하기란 쉽지 않지만, 광마 선생은 본인의 이데올로기를 ‘유미적 쾌락주의에 바탕을 둔 복지지상주의’라고 천명했다. 쉽게 말하면 고루고루 각자 자유롭게 관능적 쾌락에 빠질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는 것! 예술가로서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척도는 그 만의 섹슈얼리티다. 그리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존중 받는 문화 민주주의 사회, 다양성이 보장되는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광마의 다양한 면면들

 

이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기존 도덕과 종교, 봉건적 윤리와 기득권의 위선에 도전하는 섹시한 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한결같이 펼쳐온 혁신적인 성담론은 그를 건전한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망나니, 탕아로 낙인찍히게 했다. 한마디로 왕따, 비주류, 역겨운 퇴폐분자… 등 뭐 이런 식이다.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한국사회의 못 말리는 이중성.  [69페이지]

 

 텐프로 호화 룸살롱이 넘치고 낙태율은 높다.

하지만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없다. 아주 아이러니하다.   [70페이지]

 

 우리나라는 피임교육은 안 시키고 순결교육만 시킨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매한 짓이다. [145페이지]

 

한 사람이 미치면 정신병 환자가 되고, 다수가 미치면 종교적 신앙이 된다.  [150페이지]

 

금욕주의와 정 반대편에 서있다는 점에서 광마 선생은 반종교주의자다. 또, 개인의 쾌락추구가 권력으로부터 결코 침탈돼선 안 된다는 점에 미루어 자유주의자 또는 개인주의자다. 에피쿠로스와는 달리 육체적 쾌락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 즉 마음이나 정신을 육체 작용의 부수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철저한 유물론자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육체주의자다. 무엇보다 순수한 자연미 보다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을(화장, 성형, 네일아트 등), 삽입중심의 섹스보다는 페티시(fetish) 문화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변태며 당연히 성(性) 개방주의자다. 기득권, 특히 한국 엘리트 계층의 위선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반엘리트주의자에 가깝다.
 

빵에 대한 통제가 물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섹스에 대한 통제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생략)… 종교, 도덕, 윤리 등 각종 사회 규범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섹스에 대한 금기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에 대한 구별이 있다. [143페이지]

 

광마 선생은 비관보다는 맹목적 낙관주의가 오히려 인생을 더 고달프게 한다며, 필연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통과 있는 그대로 대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리얼리스트이며, 합리적인 허무주의자다. 
 
마광수는 OO이다?!

 

지식인이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솔직하게 표현할 때,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은 총칼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146페이지]

 

‘자유’ 앞에는 장사(壯士) 없다.  [195페이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219페이지]

 

광마 선생은 고정된 틀로는 분석할 수 없는 존재다. 유연성 있는 패러다임으로 그의 실체를 그때그때 조망해야 한다. 모든 걸 각설하고 광마 선생은 정직한 지식인이다. 진짜 용기는 솔직함에 있기에 그는 용감한 예술인이다. 그가 줄곧 부르짖었던 수많은 단어들을 문학의 맷돌로 갈아서 ZIP프로그램으로 압축한다면 아마도 ‘자유’가 아닐까. 이왕이면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운 자유, 본능(쾌락)에 충실한 자유의 추구 말이다. 

 

어떠한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DNA에 각인된 쾌락에의 열정을 당당히 예술작품으로(관능적 판타지) 승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그는 본의 아니게(!) 용맹한 지식인, 선구적 예술인이 돼버렸다.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인 ‘예술’의 고귀함을 촌티 나는 똥고집으로 분탕질 한 위대한 한국사회의 폐쇄성 덕분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세 살 버릇 여든 가듯이 광마의 논스톱 쾌락주의는 아마도 숨이 끊길 때까지 질주할 것 같다. 이 책 목차 앞 <서시>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말벌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머리를 수레바퀴 밑에 집어넣어버린 뱀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서글픈 존재로서의 자신을 한탄하며 “과연 나는 말벌과 함께 죽는 뱀의 우렁찬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사실, 광마 선생의 글이 무조건적인 진리는 아니며 절대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장르를 떠나 모든 예술은 불변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을 통해 삶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광마 선생은 수레바퀴에 머리를 집어넣은 다혈질 뱀의 극단적인 용기를 보여주기 보다는 편견과 오만으로 일관해 온 거대한 이무기 대가리를 무차별 공격하는 섹시한 땡벌이 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 마광수 공식사이트 http://www.makwangsoo.com

※ 관련 포스팅

2008/10/21 - [My Text/Book] - 마광수, '귀족'

2008/08/05 - [My Text/Book] -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2008/06/17 - [My Text/Book] -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2006/03/16 - [My Text/Book] - 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2005/11/29 - [My Text/Book] - 마광수,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Posted by 아나키안



<귀족>, 마광수, 중앙북스, 2008.


<즐거운 사라>이후 간만에 보는, 음란한 청년과 타락한 여자들의 모험을 다룬 섹슈얼 판타지 소설.


법전 위에 서서 윤리와 도덕을 부르짖는 자들이 이 소설을 보고 또 어떠한 굴레를 뒤집어씌울지 심히 걱정되기도...


마광수는 본능에 충실한 마조히스트이자 사디스트, 탐미주의적 소설가이며 시인, 문학계에서 왕따당하는 아웃사이더, 일상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없는 솔직한 지식인이다.


보수주의자들로부터 풍기문란죄, 페미니스트에겐 변태교수라는 질타를, 급진세력들로부턴 쁘띠적인 건방짐과 철딱서니 없는 똘아이라는 취급을 당하는 마광수.


현대 한국사회의 성담론과 성문화를 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절대변인(變因), 마광수!


마광수는 그저 자유로운 상상과 성적 판타지를 꿈꾸는 유쾌한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재미있는 구절:


요즘은 가문이 신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돈'이 신분을 결정한다. 돈이 많으면 귀족이고 돈이 없으면 천민이다. 자기 힘으로 번 돈을 가지고 신분 계급이 달라지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된다. '자수성가'라는 말은 이제 물 건너갔다. (P.9)

못생긴 연놈들의 어거지 궤변 중의 대표적인 것은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어떻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외모를 보고 사랑이든 성욕이든(때론 우정까지도) 생겨나는 게 아닌가. 속담이 맞다. '겉볼안'이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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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나키안
 TAG 귀족, 마광수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 10점
마광수 지음/새빛에듀넷(새빛인베스트먼트)


마광수는 전체보다 개인, 질서보다 자유의 가치가 더 중시되는 사회를 바란다. 모난 돌이 정으로 맞기보단 개성으로서 대접받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다. '야(野)한 마음'이란 자기의 본능과 욕망에 솔직할 수 있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온갖 가식과 허영으로육체와 정신을 감싼 채 어설픈 귀족주의와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원한다.


진짜 속물은 개인의 욕망을 숨긴채 이타적인척 하는 지식인 계층, 권력자들이며 저질·짝퉁 변태는 '모럴moral 테러리즘'으로 무장한 채 모든 예술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촌티 나는 자칭 문화인들이다. 겉은론 공익과 질서를 위해 희생하는 척 하지만 오히려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전체주의자들, 바른사회를 위해 윤리와 도덕, 전통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히지만 실상은 기득권,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발악하는 권력주의자들과 다름 없다.


본의 아니게 마광수는 위선적인 도덕관과 이중적인 윤리관으로 무장한 빅브라더에게 홀로 맞짱 뜨는 투쟁가 대접을 받고 있다. 마광수가 성담론이나 표현의 자유가 훨씬 투터운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그의 작품은 그저 평범한 에로티시즘 문학이 되었을 거고, 본의 아니게 처절한 그의 저항적 작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적이며 탐미주의적인 그의 문학관은 독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슈티르너(Max Stirner)와 비슷한 점이 많은 듯하다. 슈티르너는 개인을 초월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적 실재란 없다고 주장했다. 절대정신,절대자 등의 절대주의의노예로 전락한 기존 철학을비판하며 모든 행동의 근원은 참된 자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된 자아는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이타적 자아가 아니라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자아이다.


독일의 관념론에 치명타를 날린 슈티르너나 온갖 도덕주의로 중무장한 채 절대윤리를 강조하는 촌티 나는 한국사회에 발칙한 에로티시즘 문학들을 발표하는 마광수나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우선시했다는 측면에서 비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생각~


☆인상깊은 구절:


육체적으로 체화되어 있지 못한 머리 만의 민주의식은 곧바로 마각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은 곧장 보수 반동적인 관료주의로 변하여 독재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킨다. (45페이지)


진짜 전통을 따지려면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시대까지 소급해서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다만 조선시대의 유교적 원리가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를 관류하는 오직 유일한 진짜 전통 사상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56페이지)


사랑은 언제나 비밀스러운 것이고, 개별적인 것이고, 또한 동시에 본능적인 것이다. 어설픈 정신분석이론이나 사회학적 이론이 거기엔 통용되지 않는다. (33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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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에이원북스, 2008.


감성에 솔직하고 쾌락에 대한 상상력을 문학의 場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는 마선생의 글발은 어설픈 계몽주의에 전도된 여타 꼰대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권위의 가면을 쓰고 권력의 속내를 감춘채 성인군자인양 행세하는 짝퉁 시인과 소설가들보단 성적 취향은 좀 틀리지만 솔직하다 못해 용감하기까지한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사랑은 투쟁과 갈등, 그리고 지배와 복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복잡하고 비도덕적 탈선심리에 그 토대를 둔다. 아름다운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63페이지)


사물의 이미지를 통하여 궁극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 또는 실체를 직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할 일이다. (254페이지)


설렁탕을 먹다가 비빔밥으로 바꿨다고 해서 죄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만은 그것이 죄가 된다. (345페이지)


인생이란 원래 어렵고, 더럽고, 외로운 것이다. (3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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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오늘의책, 2005.


마광수, 운명론의 정체를 섹시하게 까발린다


마광수의 솔직한 색욕(!)과 박학다식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 


"기득권층에겐 천부의 권력이나 의지의 승리요 민중들에겐 오직 운명이나 팔자일뿐이었던 도덕과 권력의 음험한 야합의 결과물인 '피지배층 길들이 수법'으로서의 운명론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 듯. 


동서고금를 넘나들고 정치, 사회, 철학, 종교 분야를 자유자재로 애무하는 마광수의 저돌적고 섹시한 텍스트들이 머릿 속에서 고리타분한 도덕과 윤리로 가득찬 불쌍한 중생들을 대오각성케 해주는, 불후의 색경(色經)이라 할 만하다.


마광수 교수가 유럽 특히, 북유럽 같이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고 정치문화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았다면 결코 지금처럼 유명인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광수라는 인물이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로 작용한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봉건윤리에 얽매여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다지 섹시, 터프하게 보이지 않는 외모와는 달리, 그 어떤 시련과 중상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색정, 변태(?) 코드에 맞춘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그 어떤 진보적 인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투쟁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강준만 교수의 말처럼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다 동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시대를 앞선 간 지식인으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마광수 교수가 시종일관 내세우는 화두는 자유다. 국가권력이나 기득권이 민중의 자유 향유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그것 자체를 잊게 하도록 만드는 데에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기제는 성억압, 운명결정론이라고 마광수는 보는 것 같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식욕(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충족된 사회는 결국 성욕(놀이문화) 충족을 위한 몸부림을 거치게 마련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올바른 수단을 갖지 못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지극히 수구 봉건윤리에 길들어진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지극히 순결하고 완전무결의 윤리의식을 내세우면서 음지에서는 온갖 추잡한 악질 변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매스꺼운 이중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중적 도덕주의와 율법주의를 무기로 민중들의 진솔한 쾌락 추구권을 박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의 교활한 속물 근성이 이 사회를 가학(세디즘)과 자학(마조히즘)으로 가득찬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철학의 제1원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육체적 쾌락을 존중할 줄 아는 야(野)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야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전투적인 열혈 색마, 마광수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인상깊은 구절


수구적 봉건 윤리는 권력과 야합하여 자유보다 통제가 아름답고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며 쾌락보다 금욕이 의미있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윽박지른다. (4페이지)


나는 민주냐 반민주냐, 또는 자유냐 굴종이냐의 문제는 결국 운명론에 대한 승복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내가 당한 반지성적 테러 행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20페이지)


말하자면 유대민족 특유의 선민의식과 로마제국에 대한 적개심이 한데 뭉쳐 '요한계시록'투의 종말론이 나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56페이지)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사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긴머리털로 발을 닦아주었다. 관능적 페티시로서의 '긴머리카락'이 갖는 고혹적인 염정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진솔한 페팅 장면이다. (63페이지)


이 시조는 곧장 '소 치는 아이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로 이어져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 갈려 하느니'로 끝난다 자기는 늦도록 방안 이불 속에서 누워 뭉그적거리면서 어린 종에게만 빨리 일어나 밭을 갈라고 다그치는 모습은 조선조 유생들의 뻔뻔스런 민중 폄하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09페이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계산(또는 포부)은 반드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결국 그를 커다란 절망감과 무력감이 구렁텅이 속에 몰아넣고 만다. (203페이지)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우산을 쓰니까 비가 온다. (214페이지)


학교교육(특히 군대식 기숙학교)이 정착되고 나서부터 학교는 오직 인내력을 배양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226페이지)


성적욕구를 도덕적 명예욕과 신앙욕 등으로 대체시켜야만 하는 사회는 오히려 병든 사회고 왜곡된 사회다. (249페이지)


지금까지 당연시된 운명적 결정론은 오직 민중을 권력에 순응하는 연약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기득권자들의 심리적 전술에 불과했다. (343페이지)


운명은 야하다 (3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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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나키안


유미적 쾌락주의자 마광수 선생의 섹쉬한 에세이!!


한국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왕따당하는 지식인들 중에 가장 개성있고 매력적인 인물이 바로 마광수 선생이 아닐까.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으로 하이에나와 카멜레온 종족들이 왕성하게 번식하는 한국이라는 살벌한 밀림 속에서 마광수같은 솔직ㆍ쌈박ㆍ섹시ㆍ자유로운 개체는 후텁지근한 여름날의 시원한 청량음료보다 가치 있는 존재성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공자, 석가, 예수보다 더 고답적이고 깨끗한 성인군자처럼 행세하면서 음지에서는 상상초월의 변태적 작태를 서슴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는 지배자들에게 구더기보다 더한 혐오를 느끼고, 원시적이고 관능적이며 육체적이며 쾌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을 소망하는 평범한 속물들에게 마광수의 글은 위트있고 색깔있는 그러나 결코 천박하지 않은 촌철살인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글은 두가지 종류 뿐이다. 즐거운 글과 고통스러운 글! 마선생의 글은 고통스럽다 못해 권태롭기까지 한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21세기 한국의 몇 안되는 국보급 문화재이다.


인상깊은 구절


자유가 너희를 진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 (p.6)


이성은 각성을 주고 감성은 황홀을 준다. (p.30)


예술작품은 리비도(libido:인간 행동의 바탕이 되는 근원적 욕구)의 승화에 의해 이룩된 인류문화의 자랑스런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쌓아놓은 여러가지 이념과 편견의 벽안에 갇혀서 스스로의 욕구 충족을 위해 할 수 없이 만들어 놓은 불유쾌한 부산물일 뿐이다. (p.42)


아름다움과 쾌락을 바탕으로 하는 복지국가 건설이 21세기를 맞이한 우리의 새로운 지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p.43)


손톱을 길게 기른 여인은 대개 본능적이다. 백치미와 관능미가 있다. 착하다. 그 여인에게 긁히고 싶다. (p.70)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짬뽕되어 가지고 이루어진 '문화적 이중 시각'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한국문화는 '촌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p. 110)


정신적 행복감이란 권위의식에 가득찬 은폐일 뿐이며 구체적인 행복감은 역시 육체적 쾌락에서만 온다. (p.147)


가장 변태적인 놀이를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p.155)


육체가 민주화되지 않고서 정신이 민주화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민주화라는 말은 자유화라는 말로 바꿔놓아도 될 것이다...정신적 또는 관념적으로 자유화되기는 쉽다. 그러나 자유정신이 육체적으로까지 체화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p. 173)

더이상 우리의 육체를 정신의 노예상태로 방치해 두지 말자. (p.176)


섹스는 창조와 생산, 그리고 행복의 원동력이다. (p.179)


술집에 가서 제일 지저분하게 노는 사람은 학교 선생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럴듯한 얘기다. 낮에 하도 거짓말만 해댔으니 밤에라도 그 스트레스를 거칠게 풀어버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p.195)


어떤 재야 지식인은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데, 그것도 꼭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닌다. 요즘 검정 고무신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벽촌에 사는 사람이라도 다 알것이다. 진짜로 돈이 없어서 값이 싼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닌다면 별문제겠지만, 그 사람은 자기의 민중애를 과시하기 위해서 그런 조잡스런 쇼를 벌이고 있으니 문제다. (p.197)


못생긴 여자가 여권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p.215)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사도마조히스틱한 성격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복종함으로써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얻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잔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디스틱한 쾌감을 얻는다.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섬기며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맛보고 민중들 위에 지도적 지식인으로 군림하며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본다. (p.218)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 10점
마광수 지음/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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