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나는 공산주의를 몹시 싫어한다… 공산주의는 사회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켜 그것들을 국가로 흡수시키기 때문이며 나는 국가가 폐지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데, 그것은 불가피하게 국가의 수중으로 재산의 집중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감독의 권위주의적 원리의 완전한 근절을 바라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도덕화하고 문명화한다는 구실 아래 사람들을 항상 종속 시키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퇴폐시켜 왔다. 나는 집합된 또는 사회화된 재산과 그러한 체제의 사회가 어떤 종류의 권위에 의해서이건 간에 꼭대기에서부터 밑바닥으로 향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결사(free association)를 통하여 맨 밑바닥으로부터 조직되어 올라갈 것을 원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집산주의자(collectivist)이지 결코 공산주의자(communist)가 아니다.  

[다니엘 게렝(하기락 역), ‘현대아나키즘’(도서출판 신명, 1993) p.68~69 ]


그때까지도 지식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 나는 정치경제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 뿐더러 형이상학적 정신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사회주의는 단지 본능이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그는 이미 무신론자였고, 유물론자, 그리고 박식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오늘날 지지 받고 있는 사상 체계를 정교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났다. 비록 자만심과 뒤섞여 있었지만 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대한 그의 지식과 열정적인 헌신을 진심으로 존경하였다. 나는 언제나 유익하고 재치가 넘치는 그와의 대화를 무척 좋아했지만 슬프게도 사소한 감정이 종종 서로에게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이에 솔직히 터놓는 친밀성은 없었다. 우리의 기질은 그것을 허용치 않았다. 그는 나를 감상적인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나는 그가 자만심이 강하고, 남을 잘 속이며, 교활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옳았다. 

[출처: http://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bakunin/works/various/mebio.htm]


푸르동(Pierre-Joseph Proudhon)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후에도 국가는 존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국가, 권력, 권위, 그리고 정부를 훨씬 더 강화하면서 존속시킨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명칭을 변경하는 것뿐이다. 흡사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사물을 변화시키는 데에 충분하거니 한 것처럼…

[방영준, '아나키즘의 정의론에 관한 연구'(서울대 대학원 박사, 1990), p.111에서 인용]


Posted by 아나키안

 

“이론 따위는 불 속에 던져 버려라. 이론 같은 것은 인생을 망쳐놓을 뿐이다”

 

“민중은 정의와 평등의 본능을 가진 본능적인 사회주의자다”

 

“파괴는 새로운 창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은 남을 것이다”

 

“밤낮으로 혁명가는 하나의 사상, 하나의 목적, 즉 무자비한 파괴만을 생각해야 한다”

 

- 바쿠닌 (Bakunin,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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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나키안



칼 마르크스의 최대의 적은 부르주아, 귀족, 왕 계급이 아니라 인터내셔널 내부의 '바쿠닌'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에 있어 바쿠닌은 혁명노선을 샛길로 빠지게 하는 불순분자 또는 인터내셔널 내부에서 자신(마르크스)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아나키즘이라 불리는 바쿠닌식 혁명노선을 침투시키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위험한 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러시아 영역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에서 혈혈단신 탈출하여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다시 유럽으로 혁명을 위해 뛰어든 영원한 방랑자, 반역아 바쿠닌의 일생은 누구도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장편 서사시다.


젊어서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늙어서도 좌파이면 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칼 포퍼식 명제는 바쿠닌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그는 늙어갈 수록 혁명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랐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할수록 끝까지 신념을 지켜낸 근대의 마지막 돈키호테였는지도 모른다.


현대 테러리즘의 왕초이자 시조, 소수 정예의 혁명 전위대의 창안자, 목적(혁명)을 위해 수단은 언제든지 정당하다는 비도덕적 반역자...등등의 불명예는 바쿠닌의 부정적 모습만을 왜곡시켜 확대한 오류이다. 자유를 축소시키거나 억압할 소지가 있다며 마르크스식 엘리티즘적인 위로부터의 혁명을 강력히 부정하며 농민, 노동자 등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운동이 진정한 혁명을 이끌어낸다고 본 바쿠닌은 끝까지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로 남아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기계적인 평등보다는 자유를 미치도록 숭상한 바쿠닌의 사상적 원류는 슈티르너의 극단적 자유주의이다.


러시아 아나키스트 바쿠닌의 전설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이데아는 다름 아닌 자유다!


[인상깊은 구절]


나는 단순히 놀기만 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존재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괴테 파우스트 中 본문76페이지)


보통선거는 반혁명이다. : 프루동 (본문127페이지)


"프랑스, 러시아, 프러시아의 전제군주가 자유라는 지고의 원리를 질식시키기 위해 근년에 발명한 국민성이란 이 그릇된 원리를, 우리는 단호히 일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 247페이지)


"나는 공유를 증오합니다. 공유는 자유의 부정이고 자유가 없는 휴머니티란 내게는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란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의 모든 힘을 한데 집중시켜 그걸 통째로 집어삼켜 버리기 때문이며, 또한 필연적으로 모든 재산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시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는 국가의 폐지, 즉 국가에 따르기 마련인 권위나 은인인 체하는 것들을 완전히 근절시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란 지금까지 인간의 도덕화, 문명화를 구실로 인간을 노예화하고 박해하고 착취하기만 해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회적 혹은 집산체적 소유가 자유로운 결합에 의하여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여 조직되는 사회를 보기를 원하는 것이지, 어떤 권위에 의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조직되는 사회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폐지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그와 동시에 개인적인 상속 재산의 폐지도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국가의 제도, 즉 국가의 원리의 직접적인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집산주의자인 것입니다" (본문 254페이지)


"혁명가는 여하한 형식과 동기를 불문하고 현재의 사회적 도덕성을 경멸하고 증오한다. 혁명가는 혁명의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도덕적이라고 간주한다....우정, 사랑, 감사, 그리고 심지어 명예 등 모든 부드럽고 인간을 나약하게 하는 감정들은 혁명의 이상을 위한 냉정한 정열로 자기 자신 속에서 눌러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밤낮으로 혁명가는 하나의 사상, 하나의 목적, 즉 무자비한 파괴만을 생각해야 한다" 「혁명가의 교리 문답」 (본문 282페이지)


"모든 것은 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도 파멸할 것이다. 그러나 교향곡 9번은 남을 것이다!" (본문 36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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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1814~1876)


바쿠닌은 러시아의 트베리(지금의 칼리닌) 지방 소지주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목가적인 전원생활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바쿠닌은 1840년에 독일로 떠나 청년 헤겔 학파에 매료되었다. 러시아 정부 의 귀환명령을 거부해 여권을 회수당한 바쿠닌은 프랑스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프루동, 마르크스 등 당대의 저명한 사회주의 사상가들과 교분을 쌓았는데 이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과 슬라브 민족해방운동의 연계를 구상하게 되었다.


바쿠닌은 1848년 2월 혁명 동안 정치 투쟁에 동참한 후 독일의 한 지방에 은거하면서 최초의 혁명강령 선언인 [슬라브 민족에 고함 Aufruf an die Slaven]을 작성했다. 부르주아 계급을 소멸해 가는 반혁명세력으로 간주한 그는 이 책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전복시켜 중부 유럽에 슬라브 민족의 자유연방을 결성할 것을 촉구했다. 바쿠닌은 농민계층, 특히 무력저항의 전통을 지닌 러시아의 농민계층을 다시 다가올 혁명의 중추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소극적인 도피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1849년 5월의 드레스덴 봉기를 주도했으나 검거당해 러시아 정부에 인도되었다. 1851년 5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 요새에 유폐된 바쿠닌은 이 곳에서 [고백록Confession]을 집필했다. 1857년, 마침내 석방된 그는 영국을 거쳐 이탈리아로 갔다. 이 곳에서 그는 평생을 헌신하게 되는 아나키즘 원칙들을 정립했으며, 다양한 비밀 결사들로부터 일부는 실제이고 일부는 가공적인 혁명조직망을 조직하기도 했다.


바쿠닌의 만년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은 카를 마르크스와의 이념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에 정착해 있던 그는 제1인터내셔널 즉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했는데 그 내부에 비밀혁명전위대인 '사회민주주의 동맹'을 둠으로써 인터내셔널 내부에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바쿠닌과 마르크스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거물 사이에서 제1인터내셔널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이 대립은 결국 1872년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에서 바쿠닌주의자들을 축출하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졌다. 그러나 양 세력 사이의 불화는 향후 여러 해 동안 유럽의 혁명운동을 분열시켰다.


바쿠닌이 저술한 '압제의 제국 독일과 사회혁명 L' Empire Knouto-germanique et la revolution sociale'(1871) 및 '아나키즘 사회 Staat en anarchie'(1873)는 마르크스와의 논쟁을 다룬 것들이다. 폭력을 통한 기존 질서의 파괴를 역설했던 바쿠닌은 정치적인 통제, 중앙집권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과 같은 마르크스의 원칙들을 거부하고 러시아 농민계층에 구현된 저항의식을 내세웠다. 바쿠닌의 아니키즘은 이처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대립명제로서 비로소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궁핍한 말년을 보내던 바쿠닌은 건강이 약화되어 친구들의 보조금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러한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아나키즘의 신념이 약화된 적은 결코 없었다.


바쿠닌은 프루동과 함께 19세기 아나키즘의 주창자로 평가되고 있다. 논리적인 이론체계가 마련된 것도 아니고 의욕에 찬 방대한 저술들은 미완성인 경우가 많았지만 바쿠닌의 명성과 매력은 유럽 곳곳에 숱한 추종세력을 형성시켰다. 영국, 스위스, 독일에 적은 수이지만 아나키즘 조직이 구축되었으며, 프랑스에서도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들이 세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 및 스페인에도 바쿠닌주의적 무정부주의 운동은 계속 융성했으며, 특히 1936년까지 스페인의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바쿠닌의 후예들이었다.


인용: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에서 (pp1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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