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Hidden, 2015, 미국)

○감독: 맷 더퍼(Matt Duffer), 로스 더퍼(Ross Duffer)


인간과 좀비, 괴물을 판별하는 경계선은?


뱀파이어 소재 영화로는 스피어리그 형제가 만든 《데이브레이커스, Daybreakers, 2009》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혈액이라는 희소가치를 둘러싼 인간과 뱀파이어 간의 권력구도가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과정이 사회경제학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에 나온 좀비 영화로는 키아 로취-터너 감독의 《웜우드, Wyrmwood, 2014》가 독특했다. 인간과 좀비라는 대립을 넘어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수 있다는 묵시록적 스토리와 더불어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 자체가 천연자원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도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Hidden, 2015》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 The Others, 2001》만큼이나 등장 캐릭터의 정체성을 순식간에 뒤바꿔놓는 반전을 가진 좀비 영화다. 아빠, 엄마, 딸 3명은 300일 넘게 지하 벙커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아마도 벙커 밖에는 무자비한 괴물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미구엘 엔젤 비바스 감독의 《익스팅션, Extinction, 2015》에서 좀비 바이러스로 세상이 멸망하고 소녀와 아버지 등 몇 명만이 숨어 지내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벙커에 비치된 통조림으로 연명하던 어느 날, 몰래 들어온 생쥐 한마리가 비상식량을 훔쳐 먹었고 이 쥐를 잡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화재가 발생한다. 환풍기 역할을 하는 통로를 통해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자 일가족들은 괴물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챘을 거라는 극도의 불안감과 결국 그들이 찾아올 거라는 공포감에 휩싸인다. 드디어, 그로테스크한 기계소음을 내며 찾아온 괴물들. 그들은 가족들 입장에선 괴물이었으나 좀비는 아니었다. 무장한 인간, 즉 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가족들이 살았던 지역에서 미지의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되고 좀비로 변하자 정부는 해당지역을 초토화시켰던 것. 벙커에 숨어 지내던 가족들이야말로 생존한 괴물, 곧 좀비였다.

《히든》이라는 영화의 특징은 좀비가 인간들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인간들이 소수의 좀비를 사냥한다는 역발상, 요컨대 좀비는 약자이며 여전히 인간이 강자라는 적자생존의 구도를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또한, 좀비라고해서 해괴망측한 외모로 변하는 건 아니며 마치 뱀파이어처럼 극한의 한계상황에서 분노를 폭발할 때만 좀비의 야수본성이 나온다는 컨셉이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아웃사이더)로 전락한 신인류가 지하세계에 모여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점, 어둠속에서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듯 이야기의 실마리가 조금씩 노출되도록 설계한 감칠맛 나는 연출력 등이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들도 이들을 제거하러 온 인간들만큼이나 인간본래의 고유성, 인격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약한 좀비이든, 무자비한 괴물과 다름없는 인간이든 과연 인간과 괴물을 구별 짓는 경계선,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자꾸 맴돈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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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함정(Deep Trap, 2015)

△감독: 권형진


뱀의 꾐에 빠진 아담과 이브


일차적으로, 영화 《함정》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존심 강한 페미니스트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을 소지도 있어 보인다. 이브가 뱀의 꾐에 넘어가 아담을 끌어들이고, 모두가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듯 《함정》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주체성도 자존감도 없는 수동적인 욕망덩어리로 비치기 때문이다. 

남도 외딴 섬에서 가히 후레자식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의붓오빠 성철(마동석)과 함께 영혼 없는 존재,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민희(지안), 아기를 잃어버린 유산의 트라우마에 허우적거리다가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줄 거라는 희망에 함정 속으로 빨려 들어간 소연(김민경)이 바로 그렇다. 


영혼을 잠식하는 욕망


하지만, 부부금슬의 복원을 기대하고 남편에게 이른바 ‘오입질’을 시키는 소연이 자존감 없는 욕망덩어리라면, 남편 준식(조한선)은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의지박약의 욕망덩어리다. 무엇보다 결혼 5년째 아이가 없는 준식과 소연은 예측하지 못한 함정에 빠져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에 처한 무고한 주인공들처럼 보이진 않는다.

준식과 소연은 욕망에 눈이 멀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간과한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고, 후레자식 성철은 이를 능청스럽게 악용하는 ‘야차’ 같은 캐릭터다. 언제나 그렇듯 악마는 인간의 욕망을 미끼로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 《함정》은 각자의 욕망들이 거칠게 부딪치며 피가 낭자하는 질펀한 카니발이다.


마동석=처키의 능청+악마의 잔혹함


자칫 무자비한 호러물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이 나름대로 스릴러의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된 데에는 마동석의 역할이 커 보인다. 영화 배경이 바다로 가로막힌 섬이라는 것 일뿐, 여느 농촌풍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무대를 몹시 낯설게 보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동석의 얼굴에서 처키의 능청스러움과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의 잔혹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마동석과 더불어 재발견된 배우는 역시 벙어리 민희역을 맡은 지안이다. 눈빛과 몸짓으로만 감성을 표현해야 하는 민희라는 인물에서 왠지 김기덕 감독의 <섬, 2000>에서 ‘서정’이라는 여배우가 연기한 ‘희진’이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물론 희진의 아우라가 너무나 강해 민희의 포스가 묻혀버리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치미 속에 숨은 팜므파탈의 향기, 상식을 넘어선 맹목적 집착과 광기가 묘하게 겹치며 어른거린다.


최고의 스릴러… 낮은 평점과 관객수는 안습


언제 터질지 모를, 최대한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을 만지는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함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성철이 던져준 닭 모가지를 날렵하게 채가는 산고양이의 연기력은 탄성을 자아낸다. 지저분한 공포물로 끝날 수 있는 스토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연출력도 돋보였다. 근데 비평가 평점과 누적관객수가 의외로 신통치 않아 아쉽다.   



함정 (2015)

Deep Trap 
7.6
감독
권형진
출연
마동석, 조한선, 김민경, 지안, 강승완
정보
범죄, 스릴러 | 한국 | 96 분 | 2015-09-10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영화: 미결처리자(Kvinden i buret, The Keeper of Lost Causes, 2013)
△감독: 미켈 노르가드
 
덴마크 작가 Jussi Adler-Olsen의 소설 《Kvinden i buret》에 기반해 제작된 영화. 어렴풋한 잔상이나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또는 원한으로 각인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느낀다.

범인과의 총격으로 동료 경찰을 잃은 칼(배우: 니콜라이 리 카스)은 미결 사건들을 정리하는 부서 ‘Q’(DEPARTMENT Q)로 좌천된다. 5년 전 발생한 여성 정치인 메레테(소냐 리히터) 실종사건을 우연히 발견해 아랍계 형사 아사드(파레스 파레스)와 함께 본격 파헤치게 된다. 그는 이미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니 손을 떼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끈질긴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미결처리자》는 대체로 평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특히, 탄탄한 연출력과 더불어 배우들이 보여준 섬세한 감정선이 인상 깊다. 마치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를 보는 것 마냥 감압실에 수년간 감금된 메레테가 직면한 존재의 처절함과 한계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사실, 메레테가 납치 감금 당한 이유는 어릴적 끔찍한 교통사고를 유발한 본인의 과실치사에서 기인한다. 과실치사든 미필적고의든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결코 면책될 수 없는, 잔인한 숙명처럼 인식된다. 동일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상이한 삶을 사는 가해자와 피해자, 두 인물 간에 놓인 부조리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미결처리자》에서는 덴마크의 축축한 공기가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독특한 느와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추리소설의 스릴러 뿐만 아니라 견디기 힘든 실존주의의 묵직함도 체감할 수 있는 영화다.


[미결처리자 예고편]



미결처리자

The Keeper of Lost Causes 
7.8
감독
미켈 노르가드
출연
니콜라이 리 카스, 파레스 파레스, 미켈 푈스가르드, 소냐 리히터, 에릭 에릭손
정보
범죄, 미스터리 | 덴마크 | 100 분 | -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영화: 미스터 브룩스(Mr. Brooks, 2007)

△감독: 브루스 A. 에번스


내 안의 부조리를 목격할 때…


성공한 사업가인 미스터 브룩스(케빈 코스트너)의 또다른 자아는 살인중독자.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사이코패스에 가까워 보인다. 대체적으로 사이코패스는 충동적인 경향이 짙다고 하지만 브룩스는 상당히 냉정하고 치밀할 뿐만 아니라 감수성도 꽤 많아 보인다. 

유전 탓인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보이는 딸을 걱정하고 눈물 흘리며 희생적(?) 살인을 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심히 당황케 하지만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에서 부조리한 존재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브룩스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각에 대해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이코패스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하지만, 잔혹무도하고 질펀한 피의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들과는 달리 브룩스는 극도의 절제 속에서 자행되는 살인을 통해 유미주의적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가 있다면, 《미스터 브룩스》에서는 앳우드 형사역으로 ‘데미 무어’가 등장한다.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앳우드 형사의 강인하고 지적인 캐릭터 뒤에는 깊은 ‘트라우마’가 웅크리고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적 요소는 살인에 중독돼 있는 브룩스와 묘하게 중첩되며, 보이지 않는 자력을 통해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앳우드의 역할은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의 아우라만큼 인상 깊진 못했다.

마치 악마가 사람을 꼬드기듯 브룩스 옆에서 시종일관 맞장구를 쳐주는 가공의 존재 마샬(윌리엄 허트)은 브룩스가 자기방어기제로써 창조해낸 제2의 자아처럼 보인다. 분열된 자아의 파편일 수도 있는 ‘마샬’과 ‘브룩스’의 평행적 관계가 앳우드 형사에 비해 상당히 흥미롭다. 


그 경계가 애매하긴 하지만 브룩스가 사이코패스이든 소시오패스이든, 피라미드 사회구조의 최상부에 있는 미국 상류층의 은밀하고 부조리한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까발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존재자는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환경을 목격할 때, 강한 저항과 더불어 자유를 향한 의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운명처럼 거스를 수 없는 존재 자체 속의 부조리를 체감할 때, 저항은 순응으로 자유의지는 무책임한 악순환의 늪에서 침식될 소지가 있다. 《미스터 브룩스》에서는 자기 부조리와의 대면에서 패배하고 침몰하는 존재를 목격할 수 있다.  


[예고편]


미스터 브룩스 (2015)

Mr. Brooks 
7.1
감독
브루스 A. 에번스
출연
케빈 코스트너, 데미 무어, 데인 쿡, 윌리엄 허트, 마그 할렌버거
정보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120 분 | 2015-08-27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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