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문제로 수년동안 몸살을 앓던 동네.

공격적이고 살벌한 구호가 새겨진 현수막, 벽보 등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무심코 걷다가 아나키즘 문양을 발견했다. 느낌이 참 새롭다.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이 첨예화 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는 사실.

그러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아나키즘 상징을 통해 분노를 표출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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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나키안

『아나키와 예술: 파리코뮌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까지』, 앨런 앤틀리프 지음/신혜경 역, 이학사, 2015.


아나키 미학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


대부분의 미학 관련 서적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에 현학적 수사가 남발되는 경우가 많아 쉽게 읽히면서 이해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앨런 앤틀리프(Allan Antliff)가 쓰고 신혜경이 번역한 <아나키와 예술, Anarchy and Art> 역시 아나키(Anarchy)가 상징하는 대중적 코드와는 달리 조금은 난해하고 엘리트즘적이며 매우 편협하다는 느낌마저 받기도 했다. 아나키 예술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스펙트럼의 공간을 너무 협소하게 봐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제 ‘파리코뮌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까지’가 시사하듯 19세기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의 아나키 미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중간의 러시아(소비에트)의 아나키 예술은 감흥 없는 사은품에 불과하다. 상당량의 챕터가 미국을 주무대로 하고 있으며, 그 대상은 미술 분야에 치중하고 있다. 


‘Outlaw Printmakers(무법자 판화가)’의 일원이었던 리처드 모크(Richard Mock)의 작품 <스트라이크 지대 Strike Zone>가 표지 디자인으로 나와 있어 언론,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대중예술 분야에서의 아나키 미학을 발견하고 기술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진 못해 실망스럽다.


아카데믹 수준에서 끝나버린 아나키 미학 분석이 진정으로 아나키즘 미학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맨 첫 장이었다. 1871년 파리코뮌 시기 귀스타브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벌인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과 에밀 졸라(Emile Zola)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스타일(독창성)을 통한 자유’를 강조한 졸라와 사회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비판을 통한 자유’를 강조한 프루동 간의 논쟁은 아나키즘 미학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이외에도 △산업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모든 걸 빼앗긴 방랑자들의 모습을 그린 신인상주의 화파 △아방가르드 예술사조의 대표로 꼽히는 다다(dadaism)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구소련 내에서의 예술적 투쟁과정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동성애와 관련한 섹슈얼리티 해방담론 △60년대 이피(yippie)들을 중심으로 하는 저항문화 △냉전 종식 이후 90년대부터 대두된 마르크스주의와 차별화된 아나키즘적 반전주의, 생태주의 등을 관련 미술가들을 사례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아나키즘이라는 정치, 사회, 문화적 코드가 작품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갔는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보다는 예술가의 신변잡기와 사조(思潮)적 비평에 매몰된 느낌을 받는다. 


특히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말라테스타 등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투쟁가들의 사상과 실천보다는 막스 슈티르너 등의 극단적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철학자들의 (더구나) 단편적 언어를 배경으로 롯첸코(Aleksandr Rodchenko),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등의 예술세계를 규정하는 게 약간은 심기불편하다. 또한 펑크록 밴드 크래스(Crass)와 삽화가 지 보처(Gee Vaucher)의 예술세계를 논하며 펑크록의 기반을 다진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역사적 가치를 “떠들썩한 선전 활동”, “상업 음반사와의 계약에 열심”, “반자본주의 원칙에 대한 배신행위” 등을 들먹이며 평가절하 하는 것은 오히려 융통성 없는 극단적인 매도라 여겨진다.


1장에서 프루동과 졸라의 ‘형식과 내용’ 논쟁을 얘기하며 양자의 변증법적인 융합과 발전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아나키즘 미학에 대한 스케일 규정을 임의대로, 더구나 너무나 협소한 방식으로 한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 무엇보다 아나키 미학의 미래 비전과 전망이 부재한 채 로버트 던컨의 뜬구름 잡는 아포리즘적 선언으로 치장하고, 느닷없이 투쟁심을 고양하며 마지막장을 마무리하는 옮긴이의 말은 심히 부담스럽다.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느낌. 결국 아나키 미학을 컬트스럽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인상 깊은 구절: 
“우리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가 특혜이자 불의이고,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굴종이자 야만이라고 확신한다.” 
: 미하일 바쿠닌(서문 16페이지)

   

아나키와 예술 - 4점
앨런 앤틀리프 지음, 신혜경 옮김/이학사
Posted by 아나키안

△영화: 더 퍼지, 거리의 반란(The Purge: Anarchy, 2014)

△감독: 제임스 드모나코(James DeMonaco)


스토리 전개, 인성론의 확장?


1편 <더 퍼지 The Purge, 2013>는 집안에서 살육전을 벌이는 아담한(?) 스릴러였다. 반면, 2편 <The Purge: Anarchy, 2014>에서는 그 무대가 도시 밤거리로 확대되고, 무자비한 숙청(purge)이 자행되는 무법지대를 펑키(funky)하게 그리고 있다. 규모 및 공간의 확대만큼이나 이야기 초점이나 주제도 확장된 느낌이다. 

▲더 퍼지(The Purge , 2013) 포스터.


1편이 인간의 본성, 즉 인성론(성악·성선설 따위)에 기초를 뒀다면, 2편은 인성론에 더해 자본과 국가권력의 부조리를 보다 구체화 시킨 듯하다. 예를 든다면, 1편에서 쫓기던 낯선 흑인남자를 동정심 많은 아들 녀석(맥스 버크홀더)이 집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 남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무리들을 상대하는 아버지(에단 호크)의 태도 변화, 그리고 평소에 상냥하기 이를 데 없던 이웃들이 갑작스레 주인공들을 숙청하러 달려드는 모습은 ‘퍼지 데이’(숙청의 날)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양면적 본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 안정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비윤리적인 퍼지 데이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모순적 원리도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보안회사의 잘 나가는 임원으로서, 자본가로 상징되는 부자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평범한 이웃들의 분노를 유발한다는 컨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스러운 날, 퍼지 데이


1편과 2편에서 묘사되는 퍼지 데이는 12시간 동안 살인을 비롯한 어떠한 범죄도 허용되는, 국가권력이 공인한 국경일과 다름없어 보인다. 심지어 독립기념일보다 유서 깊고,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보다 신성해 보일 정도다. 퍼지 데이는 1차적으로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실업률과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잠재된 폭력 및 공격(사냥) 본능을 표출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자기정화, 사회정화라는 퍼지 데이의 명분은 정치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숭고함으로까지 승화된다. 사회계약론의 기초를 제공한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저서를 통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종식시키는 승인된 절대권력체가 ‘국가’라고 천명했다. 그 국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제도적으로 단 하루만 서비스하는 배려(?)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나키(Anarchy)의 다의적 의미


2편에서 주목할 점은 스토리 공간의 확대 외에도 부제가 아나키(Anarchy)라는 점이다. 미국 대도시가 한순간에 무정부상태, 무법지대, 아노미 상태로 빠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퍼지 데이에 저항하는 반란 무장조직을 고려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나키’가 상징하는 다의적 의미가 영화에 대한 해석의 폭을 더욱 넓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편에서도 1편처럼 인성론에 대한 성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주인공 레오(프랭크 그릴로)가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살인자를 찾는 과정 자체가 스토리 전개의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편처럼 2편도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지만 왠지 개운치는 않다. 미시적 권선징악은 완성되지만 거시적 차원의 권선징악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3편에서 이를 완결시킬 모양이다.

모든 범죄를 허용하는 퍼지 데이에도 부자들의 유희는 멈추지 않는다. 돈을 받고 사냥감을 무작위로 잡아다가 부자들의 클럽에 갖다 바치는 무리들, 마치 골프클럽 모임마냥 사냥감들을 숙청하는 상류층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은 몇 년 전 월스트리트 점거시위 와중에도 발코니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시위자들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날리던 금융가들을 떠오르게 한다. 


반란과 저항의 아나키


2편의 부제 아나키가 부정적 의미의 무정부 상태가 아닌 권력에 저항하는 ‘반란’의 아나키로 이해되는 결정적 이유는 퍼지 데이에 민간인이 아닌 제도권 권력이 참여해 시민들을 학살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한 완전무장한 숙청 집행자들은 경찰조직이나 군인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찰로 보이는 두목 녀석이 쓰러져 있는 레오를 향해 지껄인다. “불행하게도 시민들이 퍼지 데이에 성실히 죽이지 못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모자란 부분을 우리가 메꿔야 한다.” 퍼지의 관리자, 주체는 결국 NFFA라 불리는 국가권력이다. 퍼지 데이로 유지되는 그곳의 평화와 번영은 국가권력의 자기기만과 학살에 의해 조작되는 허상일 뿐이다. 만약, 3편이 제작된다면 그 아나키의 의미, 정체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


더 퍼지 : 거리의 반란 (2014)

The Purge: Anarchy 
7.4
감독
제임스 드모나코
출연
프랭크 그릴로, 자크 길포드, 키일리 산체즈, 카르멘 에조고, 저스티나 마차도
정보
공포, 스릴러 | 미국 | 103 분 | 2014-08-27
글쓴이 평점  


더 퍼지 (2013)

The Purge 
5.1
감독
제임스 드모나코
출연
에단 호크, 레나 헤디, 맥스 버크홀더, 토니 올러, 아델레이드 케인
정보
공포, SF, 스릴러 | 미국 | 85 분 | 2013-11-06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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