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은 인간의 원초적 덕목이다. 진보가 이뤄져 온 것은 바로 불복종을 통해서다. 그렇다. 불복종과 반란을 통해서다”

“유토피아가 들어있지 않은 세계지도는 들여다 볼 가치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


“궁극적으로 아나키즘은 하나의 정치운동이나 철학 또는 예술적 감각의 측면에서 정의될 수 없다. 아나키즘은 그 모든 것이며, 그 이상이다”

-숀 쉬한, ‘우리시대의 아나키즘’에서-


“아나키즘은 학설이 아니다.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은 계속해서 혁신되고 발전하는 수많은 길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의 역사가 끝나지 않은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노암 촘스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랭보(Rimbaud, Jean-Nicolas-Arthur)-


“인간의 법률은 경멸할 수 있지만 자연법칙에는 저항할 수 없다”

-‘노틸러스’호의 네모(nemo) 선장 (해저2만리 中)-


“아나키는 무질서나 혼돈이 아니라, 여하한 형태의 지배자도, 주권자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질서하다면 자연의 질서는 회복된다.” 

-푸르동- 


“사적 개인에게 생산수단에 대한 모든 통제력을 주는 것과 전체주의적 중앙계획에 따라 생산을 통제하는 것 양자를 모두 거부하는 하나의 새로운 경제체제-모든 상품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화폐를 폐지하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공동창고에서 공동생산물을 나누어 갖도록 하는 것.”

-크로포트킨의 경제 패러다임(아나키 공산주의)- 


“어느 누구도 자기 일에 타인을 복종시키거나 예속상태에 묶어 둘 기회를 갖지 않으며,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라테스타의 다원적 아나키즘- 


“모든 아나키스트는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모든 사회주의자가 반드시 아나키스트는 아니다.” 

-아돌프 피셔- 


“아나키즘사회는 늘 성장하고 있는 욕구에 따라서 끊임없이 진보하고 항상 재조정되는 사회이다.” 

-크로포트킨- 


“나는 공유를 싫어한다. 그것은 자유의 부정이고 자유 없는 인간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국가 이익을 위해 사회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재산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시킨다. 반면에 나는 국가의 철폐를 원한다. 국가는 인간의 도덕화와 문명화를 구실로 지금까지 인간을 노예화하고 박해하고 착취, 부패시켰을 뿐이다. 나는 또 재산 상속의 철폐를 원한다. 그것은 국가 제도에 다름 아니고 국가 원리의 직접적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나는 집산주의자 일지언정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민중은 정의와 평등의 본능을 가진 본능적인 사회주의자임에 틀림없다.” 

- 바쿠닌- 


“중앙집권 하에서의 국가의 거대한 권력에 직면하고 있는 한, 개인도 집단도 솔선하여 자발적으로 독자적 행동으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프루동- 


“더 이상 꿈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

“내가 장단에 맞춰 춤출 수 있는 그런 혁명만을 원한다”

-엠마 골드먼-


“잔인한 힘으로 가난한 자의 것을 도둑질하고 그들을 노예로 몰아가는 거대한 기계가 국가의 모습이다”

-버나드 쇼-


1. 국가나 정당이 현재의 경제 노동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나아가 국가나 노동임금 체제 두 가지를 폐지하기 위해선 자유연합 또는 자유노조를 구성 실천해야 된다. 

2. 경제 사회적 독점구조는 농민 산업노동자 지식노동자 모두의 자주적인 연대에 의해서만 폐기될 수 있다. 

3. 땅과 자본의 공동소유에 의해 독립된 자주적 생산과 분배를 실천해야 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국가나 정당이 아닌 사람들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경제구조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4. 모든 지역, 지방, 국제적 연대에 근거한 자유스러운 동의에 의해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연합된 힘으로 개인의 자율과 독립을 가져와야 한다. 

5. 인종 국가를 넘어선 국제적 연대로 각자의 삶을 향상시키고 자유로운 규율하에서 공동체 이념을 강화한다. 

6. 정부의 횡포, 재벌의 독점적 경제행위를 막기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한다. 

-1992년 베를린 노동자회의-

Posted by 아나키안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김성국 외, 이학사, 2013.


고정된 틀이 없는 아나키즘, 그 정체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부정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이자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쿠닌의 극언이야말로 아나키즘의 지향점을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형체 없는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 아나키즘(anarchism)도 실상은 고정된 틀이 없다. 교조주의적 사상은 반드시 현실의 그물에 걸리는 모순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자유’와 ‘평등’, ‘경쟁’과 ‘협동’의 두 축을 어떻게 조율하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적 아나키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참고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에서 사회적 아나키즘이 가장 왼쪽(급진)에 있다는 건 정치학적 상식. 일본식 번역으로 인해 무정부, 반국가론으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권력·지배의 속성을 갖는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막가파(?) 사상이 아나키즘이다.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칭한 최초의 인물,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사진=위키피디아]


근대 아나키즘의 선구자라 평가받는 프루동이 “재산(소유)은 도적질이다(Property is Theft)”라고 말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과도한 편중과 축적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요소를 지향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사회주의적 요소라는 것은 정부의 통제·관리에 의한 국가사회주의 형태보다는 스페인의 생산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공동체’처럼 주민이 직접참여·운영하는 풀뿌리 경제시스템, 자주적 협동조합 형태 등을 의미한다. 프루동과 더불어 아나키즘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mutual aid)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은 프티 부르주아적 발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유물사관처럼 정제된 이론이나 고정된 틀이 없다는 것이 아나키즘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과거 제1차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1864~1876)에서 마르크스와 바쿠닌이 대립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국가 및 계급 해체를 위한 중간단계인 국가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바쿠닌은 특정계급에 의한 독재, 중앙집권적 공산주의를 강력 반대했으며, 노동자뿐만 아니라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의 非노동자, 아웃사이더도 혁명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즘의 기본 상징색은 검정색(검은 깃발, black flag)이다. 이외의 대표적 상징물로 왼쪽부터 circle-A,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Anarcho-syndicalist flag). circle-A는 “Anarchy is Order”(아나키는 질서다)라는 프루동의 슬로건에서 유래됐다. 특히 펑크락 등의 대중음악가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자주 애용하기도 한다.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Red-and-black flag)은 스페인내전(Spanish Civil War, 1936~1939)에서 처음 사용됐고, 파업, 사보타주(태업, sabotage), 급진적 조합주의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black cat, wild cat, sabot-cat) 깃발도 종종 등장한다. 최근에는 “선장 없이도 항해할 수 있다” 또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선장을 수시로 뽑는다” 등의 의미에서 해적깃발(Jolly Roger, Pirate flag)도 유럽의 시위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다. 대체적으로 장난끼 넘치면서 자유로운 상징체계를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나키즘은 경제적으론 평등성을 지향하지만, 정치적으론 자유(또는 자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게 중심에 따라 사회적, 개인적 아나키즘 외에도  아나르코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자 조합 운동), 에코 아나키즘, 문화 아나키즘, 생활양식(lifestyle) 아나키즘, 아나르코 페미니즘, 심지어 톨스토이 사상에 기반한 기독교적 아나키즘 등 무지 많다. 대체로 혁신적인 의미의 단어에 아나키(anarchy)란 꼬리표만 붙이면 될 정도다. 거의 모든 진보적 개념과의 접붙이기를 통한, 잡종교배가 무궁무진한 슈퍼 유전자가 아나키즘이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나키즘이 그만큼 다양성이 존재하는, 폭이 넓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성격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을 소시민(프티 부르주아)적 낭만에 빠진 감성주의자, 공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소규모 자치공동체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자유연합체)인 것 같다. 박홍규 교수의 말처럼 ‘자유’, ‘자치’, ‘자연’이라는 3대 요소가 그 핵심이다. 자치라는 말 속에는 현재의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라는 의미보다는 직접민주정치·직접행동 개념이 농후하다. 지금의 지방자치 역시 대의제의 축소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우(衆愚)가 아닌 중우(衆優)정치


이 책에서 어리석은 민중이라는 의미의 중우(衆愚)에서 직업정치인보다 더 현명한 다수 시민들의 중우(衆優)정치로의 전환을 제시하며,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강동권(한국아나키즘학회장)의 <아나키스트 정치구상>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이른바 ‘아나키스트 정치’를 위한 3단계 로드맵 구상은 대단히 혁명적인 상상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기반을 인터넷 정보기술에 두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IT기술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제한 자유롭고 평등한 지는 따져볼 일일 것 같다. 


한편, 아나키즘은 서구사상일까?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등 일제 식민시대에 아나키즘으로 전향한 민족지도자들의 사례를 들며, 사대부 계급의 우월성을 인정치 않고 평등성을 강조한 양명학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동양의 개혁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창했던 ‘대동사회’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에 기반한 사회는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사상이 아니라 동양 고대사회에서 여러 지식인이 이상으로 삼았던 사회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서양에서 이론화되면서 아나키즘이란 용어로 정리됐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이며 사회주의 혁명가, 독립투사, 아나키스트였던 김산(金山, 본명: 장지락). 일제 식민시대 상당수 지식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아나키즘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이외에도 권위에 대한 저항, 생태주의적 세계관, 무집착의 논리 등으로 불교와 아나키즘 간에도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개인적으론 지배층의 통치 헤게모니 역할을 맡았던 유교 이념 중 하나인 양명학이나 노장사상, 불교보다는 허례허식과 계급, 사욕(재산축적)을 타파하고 겸애를 주장한 묵자 사상이야말로 아나키즘에 한층 더 가까워 보인다. 묵가는 공자사상에 반발해 하층민을 주체로 하는 정의론와 행복론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사상 조류에서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은 적자생존이 아닌 상호부조라는 원리에 의해 인류가 진보(진화)한다는 아나키즘이었고, 본능적으로도 끌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을 꿈꾸자!  


이문창(자유공동체운동자연합 준비위원장)은 남북통일을 민족의 의미보다는 “민중 삶의 자유를 탈환하는 과정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민중 스스로 삶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유공동체 운동과 통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자유공동체 통일은 정치지도자들에 의한,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부터 위로, 주변에서 중앙으로’의 통일전략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자유공동체·자유연합에 중추적 매개자로서 세계 170여개국에 산재한 700여만의 해외동포들과 국내 다문화구성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러한 자유공동체 운동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에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창언(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은 “아나키즘 차원의 민주성은 관리가 아닌 자율적 참여와 소통을 지향하며 소수성의 보장을 중시한다”며,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키 위해 전략적 계획,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국가정책의 변화, 국제협력을 위한 공동행동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김성균(성결대 지역사회과학부 겸임교수)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성향이 다분히 아나키즘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주관리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문화 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871년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 파리코뮌은 그동안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록 국가권력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지만 국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 역사적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출처: 위키피디아]


또, 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은 지역공동체와 생태계를 살리는 ‘지역통화’의 역할을, 정중규(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는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립생활운동과 아나키즘으로의 확대 당위성을, 이소영(고려대 연구교수)은 전반적인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 그 삶을 통해 아이들을 키워가는 에코토피아 실천사례들을 제시한다. 임해수(한국염소협회장)는 정부주도의 협동조합보다는 농협을 해체하고 농민조합원을 해방시켜 자유, 자주, 자치적 농민연합공동체 협동조합의 탄생과 아나키즘적 협동조합공동체 운동방향을 제안한다. 김민정(환경사회학회 총무이사)은 낭만적이거나 유토피아적 방식만으로는 원하는 대안사회를 실현할 수 없다며, 오히려 “중앙 집중적인 민중권력”이라는 이색적인 제안을 시도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상계의 흔한 논리적 사고법이 돼버린 헤겔식 변증법을 차용한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양한 변증법적 결과가 혹시 아나키즘이 아닐까? 사회구성체 논쟁에 따른, 민족 또는 계급에 의존하는 NL-PD의 고정된 패러다임은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역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생활문화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나키즘은 아닐까? 진정한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소유하고 속박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데올로기,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아나키즘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상징한다. 감성과 낭만이 죽어버린 현실에서 오히려 불가능을 꿈꾸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 10점
김성국 외 지음/이학사
※아나키즘 관련 서적

※관련 포스팅:

2005/12/09 - [My Text/Book] - 반역아 미하일 바쿠닌/ E.H.카

2005/11/30 - [My Text/Book] -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Posted by 아나키안

 

영화: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스페인/영국/독일)
감독: 켄 로치(Ken Loach, 영국)

 

스페인 내전의 숨은 영웅들과 위대한 정신을 발견하다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은 뼛속까지 좌파인 감독, 일관된 신념으로 꾸준히 행동하는 예술가 ‘켄 로치’의 성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936~1939년의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던 <랜드 앤 프리덤>은 최근에 읽은 책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과도 유사한 감동을 선사했다.

 

영국 리버풀의 허름한 주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노인이 응급후송 도중 앰뷸런스에서 사망한다. 임종을 지켜봤던 손녀(Suzanne Maddock)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도중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잡다한 스크랩 자료들과 편지뭉치, 붉은 스카프로 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흙 등을 발견한다. 영화는 이를 모티브로 스페인내전 당시 민병대 활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과거 행적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으로 전개된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좌파 인민전선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파시스트 프랑코파에 대항하자며 유럽 노동자들의 참전을 독려하는 스페인 시민군의 연설을 들은 영국 공산당원, ‘데이빗’(Ian Hart, 할아버지 젊은 시절)은 애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스페인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스페인노동자당(POUM) 민병대 활동을 하며 깊은 동료애를 키우며 자신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데이빗은 ‘블랑카’(Rosana Pastor)라는 아나키스트 기질이 다분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 중반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파시스트가 장악한 마을을 탈환하고 난 후, 민병대원들이 관객으로 지켜보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마을 운영 방침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토지를 집단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과 땀 흘러 얻은 개인 재산은 존중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토론을 진행하는 주민이 민병대원에게 의견을 구하자 “당신들 마을이니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결국 모든 주민들이 동참해 다수결로 최종안을 확정 짓는 모습은 자유로운 연대 속에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듯 했다.
 
민중과 혁명을 배반한 붉은 파시즘

 

빈약한 무기와 위계 없는 비군대식 조직으로도 민중의 지지 속에서 상당한 전적을 올리고 있던 POUM 민병대는 소련(스탈린)의 지원을 받는 국제여단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발렌시아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며 외로운 전투를 펼치지만,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데이빗은 ‘스탈린은 혁명을 배신했고, 사회적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블랑카와 크게 싸우며 국제여단으로 들어간다.

 

히틀러와 비밀리에 불가침 조약을 맺은 스탈린의 반혁명적인 작태, 독일의 잔인한 게르니카 폭격, 소비에트 지시를 받는 국제여단으로부터 동지들이 고문당하고 처형 당하는 것을 목격한 데이빗은 공산당원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다시 민병대로 복귀한다. 하지만 POUM민병대를 불법단체로 지정하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온 국제여단에 민병대원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블랑카가 총격으로 죽자 데이빗의 민병대 활동도 끝을 맺는다.

 

혁명정신을 고취하는 다양한 미장센

 

영화를 유심히 보면 다양한 프레임과 쇼트에서 영화의 주제 또는 메시지를 넌지시 보여주는 소소한 미장센(Mise-en Scene)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초반 응급대원들이 할아버지를 후송하기 위해 아파트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그려진 아나키즘 상징문양, 민족주의(Racism)에 반대하는 포스터 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을 미리 보여주는 힌트다.

 

또한, 당시 실제 영상을 보여주는 초반 부분에서 내전이 아닌 ‘스페인 혁명 이야기’(A Story From the Spanish Revolution)라는 부제를 당당히 붉은 글씨체로 각인한 것은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강력한 파시즘 정권과 싸운 민병대의 역사가 단지 실패한 혁명, 죽은 과거가 아닌 현재도 살아 숨쉬는 숭고한 정신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취지로 보인다.

 

유쾌한 부비트랩, 스크린 속 유머와 풍자

 

내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곳곳에 배치된 재치 있는 유머와 야담 섞인 풍자는 지루함을 극복하는 유쾌한 부비트랩이다. 데이빗이 피레네 산맥을 도보로 가로 질러 스페인으로 가는 기차를 몰래 타고 가며 퉁퉁 부어 오른 발을 살펴보기 위해 신발을 벗었을 때 풍기는 지독한 발 냄새를 맡은 민병대원들이 “당신 발을 프랑코에 대항할 무기로 써도 되겠군~”이라고 말하거나, POUM과 아나키스트 민병대가 프랑코 진영이나 국제여단 진영에 내뱉는 욕설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블랑카가 땅에 묻히는 장면에서 할아버지(데이빗)가 묻히는 현재시점으로 오버랩되는 마지막 순간은 진한 여운이 남는 연출이었다. 장례식에서 손녀는 유품에서 발견한 월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시를 낭독하고, 사랑했던 여인 블랑카가 묻힐 때 할아버지가 가져왔던 붉은 스카프에 담긴 흙을 뿌린다. 이어 할아버지의 옛 동료들로 추측되는 노인들과 함께 불끈 쥔 주먹을 수줍게 치켜 올리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윌리엄 모리스 <The day is coming> 중에서

 

◎ 인상 깊은 대사

 

○ 데이빗의 편지: “군대와는 달리 대의를 위해 싸우는 평범한 남자, 여자들이야. 경례도 필요 없어. 장교를 투표로 뽑고 모든 일을 토론하고 표결하지. 사회주의가 생생히 살아 있어”

 

○ 민병대원이 프랑코 진영을 향해: “엉덩이에 총알을 박아주마! 부자 새끼들아! 빈 손으로 죽게 될 거다!”

 

○ 데이빗 편지: “우린 집단화를 이룬 땅에 블랑카를 묻었어. 그녀도 그걸 바랬을 거야. 비록 스탈린주의자들이 4주 후에 쳐들어 와서 코뮨을 해체해 버렸지만 말야. 적어도 대지는 잠시나마 그녀의 것이었지”

 


랜드 앤 프리덤 (1996)

Land And Freedom 
9.7
감독
켄 로치
출연
이안 허트, 로잔나 파스터, 프레드릭 피에롯, 톰 길로이, 폴 라버티
정보
드라마, 전쟁 |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 109 분 | 1996-05-24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낭만 고양이, 인간 세상을 탐닉하다』, 최동인 지음·정혜진 그림, 21세기북스, 2014.


그 목소리는 가장 지독한 괴로움을 잠재워준다

그리고 온갖 황홀함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길고 긴 사연을 말하는 데도,

그 목소리는 말이 필요 없다. 

: 보들레르 「악의 꽃들」, ‘고양이’(LE CHAT) 중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은 무지 많다. 그 중에서 슬픔과 공포에서 비롯된 인간의 광기를 절묘하게 묘사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고양이를 연인만큼이나 끔찍이 사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샤를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들’(Les Fleurs du Mal)에서 ‘고양이(LE CHAT)’, 고양이를 통해 인간사회를 기발하게 풍자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이름은 딱히 떠오르지 않은 어느 법대 교수의 언급이 생각난다. “진정한 예술가는 모두 자유주의자이며, 필연적으로 속박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배(-archy)를 거부(an-)하는 아나키즘의 상징이 검은색(Black flag), Circle-A()등 외에도 ‘검은 고양이’(Black cat)인 것은 오묘한 우연이다. 왠지 불온한 사상을 갖고 있을 것 같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존재, 마녀만큼 재수없는 음산한 짐승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아나키스트들에게 더 환영 받는 요소로 작용한지도 모르겠다. 


<낭만 고양이, 인간 세상을 탐닉하다>라는 카툰 에세이에는 본의 아니게(?) 자유로운 신세가 된 ‘단지’라는 이름을 가진 얼룩무늬 길고양이가 평범한 이웃들을 바라보는 정감 어린 시선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취업준비생,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 소통의 문을 닫아 버린 어느 여성,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지쳐버린 샐러리맨, 공원에서 사는 ‘몽룡’이란 고양이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숨은 이야기들을 꺼내는 다양한 이웃들(비록 몽룡이는 냐옹~으로 응답할 뿐이지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은퇴할 때가 돼서야 젊었을 때의 약속을 실천하는 노부부, 갑자기 시선공포증에 시달리는 개그맨, 골목길 고양이와 꽃과 사람을 찍는 외로운 사진가, 떠나버린 아내를 무작정 기다리는 치매 노인… 그 모든 소소한 일상 속에 “사람들의 삶이란 때론 나보다 쓸쓸해 보인다”고 말하는 고양이의 따듯한 시선이 존재한다.

[##_1N_##]


이 책 첫 페이지 목차 부분에는 옥탑방 지붕 꼭대기에서 동네를 아늑히 관망하는 주인공 고양이 ‘단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길고양이는 종종 우리를 조롱하는 듯 하고, 때론 매섭게 경계하는 눈빛과 동작들을 선보인다. 또, 담장너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도시를 산책하는 자유로운 여행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담장 위 고양이를 발견해도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가벼운 손 인사를 건네는 책 속의 그림처럼,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길고양이들에게 ‘냐옹~’하며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면 당신도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첫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오렴, 내 예쁜 고양이, 사랑하는 내 가슴 위로

날카로운 발톱은 감추고,

그리고 나를 잠기게 해다오, 금속과 유리구슬 뒤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 한가로이

내 손가락이 어루만질 때,

그리고 전율하는 네 몸 만지는 쾌락에

내 손이 도취해 올 때,


나는 기억 속 내 여인을 보느니, 그녀 눈길은,

네 눈길처럼, 사랑스런 짐승,

깊숙하고 차가와, 투창처럼 찌르고 꿰뚫어,


그리고, 발 끝에서 머리까지,

미묘한 기운, 고약한 향기가

그녀 갈색 육체 주위에 떠 있어. 

: 보들레르, 고양이(LE CHAT), 「악의 꽃들」에서


[시인과 촌장 : 고양이]


※ 관련 포스팅



Posted by 아나키안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글)·킴(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역, 길찾기, 2013. 


소외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그림편지 

 

단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단 한 소절의 노랫가락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과 감격을 경험할 수 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단 한 권의 만화책이 삶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어떤 인생이든 말 못할 사연과 깊은 회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헤아릴 수 없는 그 수많은 인생들 중에서 우리에게 진실로 감동을 주는 삶은 무엇일까?

 

각종 매체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다뤄지는 감동 인생은 온갖 시련을 겪고 그 분야에 우뚝 서게 된 인물의 성공 스토리가 대부분. 적자생존의 논리가 판치는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정글 속에서 경쟁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린 ‘지존’에게 우리는 한없는 존경을 보내며, 승리자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성공CEO들을 인터뷰하고 그 영웅담을 다루는 잡지만 수십여 개, 자서전 전문작가를 통해 별 감동도 없는 인생을 화려하게 포장하기도 하고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긁어모으기도 한다. 

 

흔히 세계 5대 자서전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루소의 <고백록>,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를 꼽는다. 덴마크의 비평가, 게오르그 브란데스(1842~1927)는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기존의 자서전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크로포트킨)는 자신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일이 없는 혁명가였다… 이 사람은 단순함 그 자체였다. 그는 성격 면에서 어느 나라의 자유의 전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보다 청렴하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한다.(『크로포트킨 자서전』 서문에서, 김유곤 옮김, 우물이 있는 집) 

 

굳이 아나키스트(anarchist)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던 크로포트킨의 자서전까지 거론하는 이유는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읽다 보면, 마치 크로포트킨 자서전 <어느 혁명가의 회상>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뜨거운 감동이 가슴 속에 저며 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은 주인공인 안토니오의 아들이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킴(KIM, Joaquim Aubert i Puig-Arnau)이 그림을 그린 만화책이다. 

 

작가 안토니오는 아나키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과 직접 쓴 글들을 토대로 그의 90년 인생을 기술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아버지의 1인칭 시점으로, 즉 아버지와 하나의 존재가 돼 이야기를 리얼하게 풀어냈다. 작가 안토니오는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작품 안에서 보는 것들이 완전히 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진실이자,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아버지와 나는 작품 안에서 그리고 실존적으로도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갔다”고 설명한다. 


혹자는 비아냥조로 ‘대부분의 자서전은 비(非)자서전’이라고 비판한다. 자서전에 삶의 온갖 치부는 감춘 채, 말하고 싶은 것만 자랑조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는 스페인의 굴곡진 현대사 한 가운데를 훑고 지나간 주인공의 삶이 여과장치 없이 생생한 그림으로 펼쳐지며, 독자는 시간을 거슬러 만화책 프레임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주인공 안토니오(작가의 아버지)는 스페인 북동부의 아라곤 지방 사라고사 주의 페나플로라는 지역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대아들로 태어났다. 페나플로[Peña(바위)+Flor(꽃)]라는 뜻과는 달리 그의 고향은 아름다운 꽃은 피지 않는 척박하고 농부들의 편협한 이기심과 욕망만이 자라는, 바위만이 무성한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결국 희망 없는 고향을 등지고 도시 ‘사라고사’로 홀로 도망치지만 그를 맞이하는 것은 제2공화국 스페인의 혼돈 정국. 

 

농촌 생활만큼이나 고된 노동과 착취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하숙집에 함께 거주하는 ‘루시오 아로요’라는 아나키스트로부터 아나키즘을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파시즘 정당 ‘팔랑헤’를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집권하자 이에 대항해 범진보진영 연합인 인민전선(사회당·아나키스트·공화파·공산당 등)이 1936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인공은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만, 기쁨도 잠시 아프리카 모로코로 좌천됐던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이 파시스트 및 보수정당과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스페인은 내전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안토니오는 팔랑헤 당원들의 권력남용(독재)과 비인간적인 횡포를 몸소 겪고 나서 ‘피의 혁명보다는 착한 화합이 더 좋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180도 바꾸며 한층 열성적인 아나키스트로 변모한다. 본의 아니게 프랑코파 군대에 끌려가지만 구사일생 탈출해 아나키스트 의용군에 합세해 수많은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의용군 진영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진영과 합쳐지면서 군대식 체계로 개편이 되지만 프랑코의 강력한 군대로부터 패배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프랑스 국경까지 밀리게 된다. 


갖은 고생 끝에 프랑스 난민 수용소에서 탈출해 어느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지만 프랑스는 독일나치에게 점령을 당하고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 안토니오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다. 이후 파리가 해방되고 독일군이 물러나면서 마르세유에서 옛 동료였던 파블로와 사업을 시작하지만, 온갖 부정과 비리, 욕망과 타락의 협주곡이 빚어내는 배신과 불행의 악순환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돈’과 ‘권력’에 굴복하는 옛 동료들의 변절 과정을 지켜보는 안토니오 역시 패배감과 함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젠 아내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년을 양로원에서 보내게 된 안토니오는 어느새 90세 노인이 되고, 어릴 적 꿈꿔왔던 비상,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실존적 선택은 자유를 향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영혼의 ‘최후의 날갯짓’이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권위적이고 오만한 민주주의가 휘두르는 횡포 속에서 이상사회를 꿈꾸던 사람들이 사상과 자존을 어떻게 내팽개치게 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돈은 인간의 사랑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진다.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인생은 돈이나 권력을 쟁취한 이들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 보다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향해 영혼을 불사른 삶이다. 비록 그것이 실패한 삶이 되었을 지라도… 그리고 그러한 삶을 공유함으로써 흘리는 감동의 눈물은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작품에 주목하는 세상의 반응과 이 작품으로 형성된 유대의식이다. 조밀하게 엮인 그물과도 같은 그 유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서 서로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본문 214페이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등장하는 배경은 스페인이지만 한국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아픔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반제국주의 투쟁, 이데올로기 대립, 한국전쟁, 군사독재, 학살, 이상사회를 꿈꾸는 숭고한 열정들의 죽음, 그리고 죽음보다 우울한 짙은 패배감… 


이 책은 소외된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패배자들에게 헌정하는 위로의 선물이자, 힘이 닿는 그 순간까지 다시 한 번 비상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희망의 그림편지이다.


=관련글=


 [아나키즘] 크로포트킨에 관하여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Posted by 아나키안



장석원, 『아나키스트』, 문학과 지성사, 2005.


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


1


토요일 밤 9시 '리빠똥'에서
우리는 소진되었고. 문은 오로지
패배한 자를 위해 열려 있어.
10년이 지났을 뿐인데


크레모아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
우리의 만남. 부자연스런 체위. 시와 혁명.
술과 사상, 노동자와 시인.
우리와 그들의 사랑은 소도미야.
소돔 성이 소도미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어.
사랑의 힘 때문이야. 서풍이 분다.


혁명이 뭐겠어. 우리 결혼할래.
헬로와 헬로와 꽃들이, 헬로와 헬로와 우리들에게,
청첩을 돌린다면. 너와 나의 결합.
오래된 진리와 형체 없는 유행의 결합.


내 삶은 recycled life. 폐기해줘. 철폐해줘.
모든 법칙들을, 모든 용기를, 사랑의 만용을.
질풍노도의 시대. 그 시대의 아들이.
헤이 걸. 큰 젖을 가진 아가씨. 날 위해 울어줘.
이봐. 웨이트리스. 천 하나 더.


지하철공사 노동자들. 술을 마시고 있어.
파업 철도. 강철의 힘이란 옛날의 추억이라구.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아름다운 여인 메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 역에 멈춰서면
차량 기지엔 햇빛이 가득했네.
투쟁하는 노동자의 눈동자.
그런 시대. 그런 아득한 날들 앞에
항복하고 싶다.


사랑은 어째서 고독하고,
나는 어쩌라고 약한가.
유일한 동력. 유일한 실존.
달콤한 알콜과 마리화나. 플라워 무브먼트.
살아 있는 무뇌아. 정주를 거부한 nomade에게
치욕의 힘, 생존 본능의 아름다움이 무늬 진


창 너머 도시의 어둠에
꺼지지 않는 불빛의 술렁임 첫 파정의 현기증처럼
퍼져 오르고 늦은 사랑의 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잊었던 어둠이 흐르고
그 어둠 속엔 긴 겨울 끝
새 봄 기다리는 마른 희망들
忍冬하고 있고 숨어 죽는 나뭇가지
끝에는 순백의 희망이...


2


창밖의 뚜렷한 현실. 거대한 뿌리의
숨막힘 멀리 떨어져 있는. 언제나. 어둠.
은유의 시대는 끝났다. 여기
명확한 언어라는 모조품.
친구여. 혁명이 아름답던 은유의 날들을
내게 돌려줘. 청춘을. 부서진 내 청춘을. 꽃다운
우리 청춘 술잔 위에 떨어지는 불빛, 불빛.
불멸하는 이름. 사랑의 짝짜꿍으로.
낫과 해머. 핀란드역의 블라지미르.
역사의 기관차. 계급의 두뇌.
무너진 사랑탑에


눈이 내린다


너와 나 사이 폐허에
우리를 지켜보는 투명한 눈이


-끝-


★인상깊은 구절


나의 목표는 혼돈의 힘을 이용하여 응축된 의지를 해체하고 숨어 있는 아나키를 조직하여 평정을 획득하는 것이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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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1756∼1837·英)


영국의 비국교도(非國敎徒)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드윈은 유럽에서 아나키즘을 최초로 이론화(理論化)한 사상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골학교 여러곳을 다니다가 11세때 독립 교회파 목사인 사무엘 뉴튼의 제자가 되면서 기독교 산데만 파(派)와 접하게 된다. 로버트 산데만(Robert Sandeman·1718∼1771)장로가 지도자였던 이 교파는 초대교회의 복귀와 공동생활을 주장하며 스코틀란드에서 창설되었다.


산데만 파 사람들은 교회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들은 신앙에 따르는 인간은 국가와 아무런 관계도 안가진다고 주장하였으며, 임명된 목사가 한사람도 없는 독립적인 집회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재산 공유(共有)를 바람직한 이상으로 믿고 남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하며, 화폐를 저축하는 일은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고드윈은 10대초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이 교의(敎義)에 충실했다. 23세때 혹스턴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는 산데만 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이 고드윈에겐 두고두고 그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으며, 37세때인 1793년에 내놓은 대표적 저서 『정치적 정의(正義)』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윌리엄 고드윈은 "정치의 악폐는 아마도 끝나지 않겠지만, 범죄의 역사를 참된 자유와 평등의 사회로 바꿔놓을 가망은 희미하나마 한번 추구함직한 가치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을 이론적으로 펴낸 저서가 바로 『정치적 정의』이다. 이 책에서 그는 4가지 기본적인 명제(命題)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고드윈의 사상을 압축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고드윈이 밝힌 명제는 첫째 인간의 도덕적 성격은 지각작용의 산물이며, 인간이 태어날 때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모든 수단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정부(권력)인데, 인간 정신은 간섭하지 않으면 저절로 잘못을 알아내고 진리에 접근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정부(政府)는 원리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실천에 있어서도 악(惡)이라는 것이다. 


그는 입법도, 법의 운용도 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실제로 특정개인에게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부(富)는 탁월한 것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것이 정치제도의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고드윈은 재산과 권력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최초의 한 사람으로써, 이러한 지적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의 적(敵)이 되었으며, 또한 자본주의의 적이 되었다. 넷째의 명제는 인간의 완전가능성에 대한 언명이다. 완전가능성은 인류가 가진 가장 명백한 특성의 하나이며, 따라서 인간의 지적(知的)상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상태도 또한 전진적인 개선의 과정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고드윈은 그후 프루동이나 바쿠닌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러시아의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에게는 상당한 감명을 주었으며, 후대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자신들의 선구자중 한사람으로 평가되었다. 고드윈은 『정치적 정의』이외에 『세미나리 설명서』(1783), 『연구자』(1797), 『영국공화제사』(1824), 『인간고』)(1831)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출처 : 인터넷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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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동 Proudhon, Pierre-Joseph 1809~1865


프랑스의 가난한 선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보냈다. 그에게 이상사회란 자기 아버지와 같은 수공업자나 농민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뜻한다. 총명했던 그는 브장송에 있는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부유한 상인 아이들로부터 가난뱅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집안의 경제적 파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인쇄 견습공이 되었지만 향학열을 식지 않았다. 그는 인쇄소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라틴어, 그리스어, 헤브라이어를 독학하는 한편 여러 지역의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과 사상의 토대를 쌓았다.


그는 1838년 브장송 아카데미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할 수 있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최초의 저서 '재산이란 무엇인가? (1840)를 발표해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여기서 프루동은 '나는 아나키스트'라고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산은 도둑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공격 대상으로 삼은 재산은 일반적인 의미의 재산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 취득한 재산이었다. 반면에 다른 의미의 재산, 즉 농부가 자기가 일할 토지를 소유할 권리나 장인이 도구나 작업장을 소유할 권리는 자유라고 생각했다. 프루동이 공산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공산주의가 개인으로부터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자유를 파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842년 '재산이란 무엇인가?'의 후속편인 '소유자에 대한 경고'를 출간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판사가 그의 주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유죄를 모면했다. 1843년 프루동은 리옹과 파리를 방문해, 카를 마르크스와 미하일 바쿠닌 같은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프루동은 곧 마르크스와 대립하게 되었다. 프루동이 '경제적 모순 또는 빈곤의 철학'(1846) 를 발표하자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1847)으로 프루동의 견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 간의 역사적 대립의 시작이었다.


1848년 초, 파리로 가서 '인민의 대표자'를 비롯해 모두 네 종류의 신문을 편집했는데, 네 신문 모두 정부의 검열에 의해 차례로 폐간되었다. 프루동은 1848년 혁명기에 정치투쟁에 나섰다가 제2공화정의 대통령인 루이 나폴레옹을 비판한 죄로 1852년까지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신문을 편집했고, '혁명가의 고백'(1849), '19세기의 혁명관'(1851) 등의 주요 저서를 집필했다.


1852년에 석방된 프루동은 경찰의 항상적인 감시 때문에 활동하기가 어려웠으나 1858년에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를 위하여'(3권)를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모두 몰수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벨기에로 망명한 후 열린 궐석재판에서 그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1862년에 파리로 돌아온 뒤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상호부조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파리의 수공업자들은 1865년 그가 죽기 직전에 창립된 제1인터내셔널의 주된 세력이 되었다. 프루동의 마지막 저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대하여'(1865)는 그의 임종 직전에 완성되었다. 그는 이책에서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과업이라고 주장했다.


프루동 이전에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 등이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아나키즘(정부 없는 사회), 상호부조주의(신용은행 설립을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 연방주의(중앙집중주의적 정치 조직의 부정) 같은 사상은 프랑스 혁명사상을 개인적 경험으로 재해석한 결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루동은 자기가 하나의 사상체계를 정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당을 건설하려는 사상을 혐오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제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후에 그를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 바쿠닌과 러시아의 작가 페테르 크로포트킨이 발전시킨 아나키즘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러시아의 인민주의, 1860년대 이탈리아의 급진 민족주의, 1870년대 스페인의 연방주의, 프랑스에서 발전하여 나중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큰 세력을 형성한 생디칼리슴 등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에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초까지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의 급진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용: 이덕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웅진닷컴, 2001, pp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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